지난 5월24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튜버 위고 트라베르와 인터뷰를 했다. 대통령은 인터뷰를 하는 이유에 대해 “젊은 유권자들에게 한 가지를 설득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는 “여러분 자신, 유럽, 그리고 우리나라를 위해 이틀 뒤에 치를 유럽의회 선거에 투표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여론조사로는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었다. 경제 일간지 〈레제코〉의 5월16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의 지지율은 24%였다. 여당인 ‘전진하는 공화국(LREM·앙마르슈)’의 지지율(22%)보다 2%포인트 앞선다. 5월24일 프랑스 공영방송 ‘라디오 프랑스’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연합은 24.5%, 전진하는 공화국은 23%였다.

“마크롱이 르펜과 대결을 시작했다”

1979년 첫 선거 이후 유럽의회 선거의 투표 참여율은 계속 줄어들었다. 62%에 달했던 투표율은 2014년 42%까지 하락했다. 프랑스도 비슷한 양상이다. 〈르몽드〉 조사에 따르면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 국민 43%만이 투표에 참여하겠다고 응답했다. 특히 젊은 유권자(18~34세)의 70%가 기권 의사를 밝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참여도가 낮은 이유 중 하나는 유럽의회의 효용성에 대한 의심이다. 2018년 10월 유럽의회가 유럽연합 산하 여론조사 기관인 유로바로미터를 통해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 중 20%만이 유럽의회에 긍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낮은 투표율과 극우 정당의 선전이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Reuter마린 르펜(위)이 이끄는 국민연합이 프랑스 유럽의회 선거에서 22석을 얻어 1위를 차지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유럽의회 선거 투표율은 50.12%로, 예상보다 더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았다.

국민연합은 득표율 23.31%로 22석을 얻었다. 전진하는 공화국(LREM)이 민주운동(Modem)과 함께 구성한 중도정당연합(일명 ‘르네상스 연합’)은 22.41%로 21석을 차지했다. 프랑스 녹색당(EELV)은 13.47%로 13석을 얻어냈다. 반면 기성 정당이던 공화당(LR)과 사회당(PS)의 득표율은 각각 8.48%, 6.19%로 8석과 6석에 그쳤다. 급진 좌파 정당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프랑스 앵수미즈)’의 득표율은 6.31%였다.

주요 지지 정당은 지역별로 크게 나뉘었다. 파리에서는 중도정당연합(LREM-Modem)의 득표율이 33%로 가장 높았다. 국민연합의 파리 득표율은 7%에 불과했다. 반면 프랑스 동부 지역은 바랭을 제외한 9개 지역에서 국민연합이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해외 프랑스령인 마요트에서도 국민연합은 압도적인 득표율(45.56%)을 자랑했다. 정치학자 크리스티안 라피디나리보는 5월27일 〈프랑스 앵포〉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연합이) ‘이민과 불안정으로 인한 위기’를 강조하고, ‘해외에 있는 국민들이 가장 고통받고 국가에게 버려졌다’고 주장한 것이 효과를 봤다”라고 분석했다.

선거 다음 날 프랑스 일간지 헤드라인의 대세는, 중도정당연합과 국민연합의 대결이었다. 〈르피가로〉는 “마크롱이 르펜과 대결을 시작했다”라고 제목을 달았다. 〈르파리지앵〉은 마주 보고 있는 마크롱 대통령, 르펜 의원의 사진과 함께 “빅뱅은 계속된다”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그러나 높은 투표율에 비해 극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평도 나온다. 정치학자 브뤼노 코트레스는 〈프랑스 앵포〉와의 인터뷰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패배가 총리직을 바꿀 만큼 심각한 정치적 결과는 아니”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투표 결과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의 사임을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재신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진하는 공화국’ 파스칼 캉팽은 “정부 출범 2년차에, ‘노란 의원조끼’로 인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기반이 탄탄하다”라고 주장했다.

녹색당, 34세 미만 유권자 득표율 1위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으나, 프랑스 녹색당(EELV)의 선전도 이번 유럽의회 선거의 큰 이슈다. 녹색당이 세 번째로 높은 지지율을 차지하면서 좌파 성향 정당에서는 가장 높은 투표율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리베라시옹〉은 “희망과 같은 녹색, 이번 유럽 선거의 가장 분명하고 안심되는 특징”이라고 평했다.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의 정치부 대표인 스테판 줌스테크는 5월28일 〈프랑스 앵포〉와 인터뷰하면서 “야니크 자도 녹색당 대표의 지지율을 과소평가했다”라며 녹색당의 선전에 놀라움을 표했다. 당일 오후 투표 결과를 접한 야니크 자도 대표는 “국민들이 환경을 정치의 중심으로 두고자 하는 뜻을 확실히 전달해줬다. 전 유럽에 이 메시지가 전해졌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내무부 공식 집계에 따르면 녹색당은 34세 미만 유권자에게 가장 높은 득표율(18~24세 25%, 25~34세 28%)을 얻었다.

 

 

 

ⓒEPA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가운데)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총리를 바꿔야 할 정도로 패하지는 않았다.

 


녹색당이 여론조사 기관의 예상을 깨고 높은 득표율을 얻어낼 수 있었던 반면 기성 정당인 공화당(LR)은 이번 선거로 큰 패배를 맞았다. 2014년 20석을 차지했던 이 정당은, 12%에서 14%에 이르는 예상 득표율보다도 낮은 8.48% 득표에 머물렀다. 선거 당일 오후 〈프랑스 앵포〉와 인터뷰한 공화당 의원 에리크 시오티는 “마크롱 대통령의 마린 르펜 의원과의 대결 전략 탓”에 패배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의도한 양자 구도에 밀렸다는 설명이다. 선거 참패 이후 공화당 의원들은 로랑 보퀴에즈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기존 양당 구도가 깨지며 차기 유럽의회 집행위원장 선출 또한 중요한 쟁점이 되리라 보인다. 제1당의 대표 후보가 집행위원장 후보 1순위가 되는 ‘슈피첸칸디다텐’ 제도에 마크롱 대통령이 반대하는 의견을 표해왔기 때문이다. 유럽국민당(EPP)의 만프레트 베버가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차기 집행위원장이 될 수 있는 가운데 주요 정치 집단인 유럽국민당(EPP)과 유럽사회당(S&D)의 의석수는 과반을 넘지 못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오랜 기간 이어져왔던 양당 체제가 깨진 만큼 중도 성향의 새로운 정치 집단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보였다. 그는 5월28일 브뤼셀에서 진행된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오랜 습관을 반복할 게 아니라 유럽 국민이 선택한 이미지에 맞는 새로운 계획을 짜야 한다”라고 말했다. 집행위원장 선출은 본래 6월 말로 예정되어 있으나, 몇몇 회원국 정상들이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등 기존 방식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가을까지 미뤄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