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전화를 받는다. “어디냐?” 물어보는 소녀. “집.” 대답하는 소년. 그때 전화기 너머로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소년이 핀잔을 준다. “너, 또 똥 싸면서 전화하냐?” 열네 살 여학생이 아무렇지 않게 똥 누면서 남학생에게 전화할 때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사정.

“아주 더운 여름날, 화곡동의 한 산부인과에서 4.4㎏의 우량아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머리가 너무 커서인지 아이의 엄마는 출산 중 사망하였고, 아이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오던 아버지는,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과 푸른 잎사귀를 보고는, 아이의 이름을 ‘녹양’이라 지었다. 같은 날 같은 산부인과 옆 병실에선,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로 직행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소년은 가녀린 체구만큼이나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아이의 이름을 보희로 지었다(영화 속 녹양의 내레이션).”

단짝인 소녀와 소년의 아빠 찾기


‘소녀 같은 소년’과 ‘소년 같은 소녀’는 그때부터 줄곧 단짝으로 살았고, 지금은 같은 중학교 같은 반 앞뒤 자리에 앉아 수업 시간에 함께 딴청을 피운다. 녹양(김주아)에겐 엄마가 없고 보희(안지호)에겐 아빠가 없다는 점 때문에 아마도 더욱 가까워졌을 두 사람. 같이 성취해야 할 공통의 목표를 막 정한 터였다. 다름 아닌, 아빠 찾기. 죽은 줄 알았던 아빠가 어쩌면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보희의 의심이 녹양의 추진력을 만나 일을 벌인다. 그러나 아빠 찾기 여정은 점점 미궁으로 빠지고, 아이들 앞에 차례로 새로운 어른들이 나타난다. 보희의 배다른 누나, 그 누나의 남자친구, 아빠를 안다는 아빠 친구들….

〈보희와 녹양〉을 보는 내내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제법 웃기는 장면이 많기도 했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다. 참 잘 만든 성장영화를 만났다는 반가움이었다. 제법 어른스럽지만 너무 조숙하지는 않은, 딱 그맘때의 아이다운 말과 행동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영화만이 줄 수 있는 흐뭇함이기도 했다. 어두운 현실을 줄곧 어둡게만 그리는 최근의 한국 독립영화에 조금 지쳐 있던 나는, 따뜻한 태양과 푸른 잎사귀를 닮은 이 영화의 ‘녹양스러움’이 좋았다. 피식 웃으며 보다가 찔끔 눈물을 흘리게 되는, 어딘지 모르게 ‘보희스러운’ 마무리도 마음에 들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장면 하나. 다큐멘터리를 찍겠다며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이대는 녹양에게, 한 어른이 코웃음을 치며 묻는다. “야, 너, 다큐 그런 거 찍어서 뭐 하려고?” 그때 녹양의 대답. “아저씨. 꼭 뭐 해야 돼요? 그냥 찍고 싶으니까 찍는 거지.” 그러게. 나도 꼭 뭘 해야 할까? 조금 서툰 구석이 있더라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영화라면, 그냥 마음에 쏙 든다고 쓰면 되는 거지. 지금처럼.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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