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좋아해 게임회사에 들어갔다. 취미가 일이 되고 나니 문제가 보였다. 프로젝트가 중단될 때마다 직원들이 전환배치나 권고사직을 당했다. ‘크런치 모드’라 불리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류호정씨(27)는 처음엔 혼자서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해 4월 네이버에 노동조합이 생기자 동료들과 노조 설립을 준비했다. 그런데 류씨 소속 팀이 갑자기 없어졌다. 휴대전화를 빼앗긴 채 이뤄진 대표이사와의 면담 끝에, 노조 출범을 2주 앞둔 지난해 8월 권고사직을 당했다.

류씨는 지난해 12월부터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화섬노조)에서 일을 시작했다. 화섬노조는 네이버·넥슨·스마일게이트·카카오 등 20~30대가 주축인 IT 노조들이 2018년 연이어 가입한 산업별 노조다. 원래 화섬노조는 40대 중·후반 제조업 노동자들이 주축이었다. 여기에 IT 업계 출신으로 20대이면서 콘텐츠 기획 경험이 있는 류씨가 ‘선전홍보부장’으로 합류했다. IT 노조들을 지원하며 화섬노조의 SNS 홍보를 담당한다. 게임회사 직원이 노조 상근자가 된 것이다.

ⓒ시사IN 조남진
류씨는 학생운동도 해본 적 없다. 그래서 노조에 대해 아예 모르는 사람을 기준으로 생각한다. 류씨는 화섬노조의 콘텐츠 슬로건을 ‘우리의 일상이 되는 노동조합’으로 정했다. “기존 홍보물은 ‘노조 탄압 규탄’ ‘민주노조 사수’처럼 20~30년 전 구호를 그대로 썼다. 사람들은 노조 자체도 어려워한다. 중학교 2학년도 알 수 있는 일상적인 용어를 써서 어떻게든 쉽게 설명한다.” 이미지에도 변화를 더했다. “구글에서 민주노총을 검색해보니 조끼 입고 머리띠 두르고 피켓 든 사진만 뜨더라. 읽어보면 하나하나 절박하지 않은 사연이 없는데, 사진이 다 똑같으니 대중은 ‘민주노총이 민주노총하는구나’ 하고 지나가버린다. 조끼 입은 사진을 게시물의 첫 이미지로 쓰지 않는다. 대신 일상적인 이미지를 많이 활용한다.”

류호정씨가 들어온 후 ‘민주노총 화섬식품’ 페이스북 페이지(facebook.com/sns.kctf) 팔로어가 40명에서 2300여 명으로 늘었다. 페이지에 ‘섬식이’라는 친근한 별명도 생겼다. LG생활건강 손자 회사인 한국음료 노조 파업 100일 때 만든 영상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류씨는 말했다. 이곳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코카콜라나 미닛메이드 따위 음료수와 병뚜껑을 이용해, 8년간 노조를 인정받지 못하고 파업에 나선 과정을 풀어냈다. “보는 사람도 같이 화날 수 있도록, 파업이라는 ‘결과’가 나오기 전의 ‘과정’을 설명하려 했다. 조합원들이 가족이나 지인에게 보여주기 좋았다고 말해 보람을 느꼈다. ‘노조는 대중적인 콘텐츠를 만들기 어렵다’는, 노조 스스로도 갖고 있는 편견을 깨고 싶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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