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비닐앞치마에 빨간 비닐장갑 차림으로 커다란 도미를 치켜든 채 위풍당당하게 표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할머니 모습이 범상치 않다. 아니나 다를까 막두라는 이름의 이 할머니, 초반부터 응대하던 손님에게 눈을 있는 대로 흘겨가며 “안 살라면 그냥 가이소, 마!” 소리를 버럭 지른다. 손님이 꾹꾹 눌러보기만 하면서 싱싱하지 않다는 둥 트집을 잡다가 그냥 가버린 도미를 손질하는 분노의 칼질에 비늘이 회오리치며 날린다. 동료들과 호탕하게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커피 아주머니 궁둥이를 향해서는 발길질을 날릴 자세다. 부산 자갈치시장을 배경으로 60년 장사 경력을 자랑하는 이 할머니의 질펀한 경상도 사투리와 거침없는 몸짓에서 에너지가 폭발한다.

이 에너지가 마냥 흥겹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보여주는 할머니의 지난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다 보면 가슴이 저민다. 난리통에 피란 내려오다 부모를 잃어버린 열 살 막두. 헤어지게 되면 영도다리로 오라는 엄마 말에 죽을힘을 다해 부산까지 왔지만, 아무리 헤매도 엄마 아빠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마주하게 된 것이 다리가 “그그그그” 육중한 소리를 내며 올라가는 무시무시한 광경. ‘거대한 벽 하나가 우뚝’ 서 있는 게 ‘어찌해볼 수 없는 괴물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만’ 같아 숨이 멎을 정도로 무섭다. 하늘로 솟아오른 반쪽짜리 다리가 화면을 꽉 채운 이 장면에서는 막두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모든 이의 트라우마가 보이는 것 같다. 먹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굵직한 검은 선들이 핏빛으로 느껴진다. 그 뒤로 막두는 영도다리에 갔다가도 다리가 올라갈 시간이면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달아나야 한다.

대단하게 살아낸 대단한 사람들

그래도 막두는 공포와 절망에 지지 않는다. 아지매가 되고 할매가 되기까지 자갈치시장을 떠나지 않는다. 우는 아기를 등에 업고 주변의 악다구니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생선 함지박을 부여잡고 앉아 있는 막두. 숟가락 꽂힌 소주병을 마이크 삼아 한 곡조 뽑아내는 할매 막두 앞에도 여전히 함지박은 놓여 있다. 그 일련의 흑백 그림들 속에서 유일하게 막두의 윗도리는 붉은색으로 도드라진다. 두려움에 부여잡은 심장이 쿵쾅거리며 밀어내는 피의 색, 막두의 존재를 확인하게 해주는 생명의 색이다.

한동안 멈췄던 영도다리가 다시 올라가는 날, 할매 막두는 그 현장에 선다. 한때는 마주볼 수 없었던 거대한 벽이었지만 이제는 ‘눈을 크게 뜬 채 끄덕끄덕 올라가는 다리를 똑바로 쳐다’보는 그녀의 얼굴이 화면을 꽉 채운다. 온통 붉은색인 이 장면은 흑백의 다리 장면에 정확히 대응하면서 저미던 마음을 쓸어내려 준다. “막두도 저만치로 대단하게 살았심더”라는 그의 독백에는 그래그래, 고개가 끄덕여진다. 난리통이 아니더라도, 자갈치시장 생선 장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는 그런 세월을 그렇게 대단하게 살아낸 대단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들의 등을 도닥도닥, 도닥여줄 일이다.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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