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어느새 서른 살이 되어버렸다. 나는 08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했던 해에 새로운 ‘경제’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에 대한 당시 내 시각은 모호했다. “알아서 잘하겠지, 뭐.” 반면 막 임기를 마쳤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관점은 달랐다. 공부만 하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그에 대한 생각은 다소 명확했다.

‘일 못하고 성깔 더러운 대통령.’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그는 희화화의 대상이었고, 나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댓글을 수도 없이 달았다. 당시 그는, 적어도 내겐 그런 존재였다. 누군지도,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지만, 욕은 해도 괜찮은 대상.

그가 퇴임 후 봉하마을에 내려가면서 그에 대한 이미지는 한결 나아졌다. 손녀와 자전거를 타고, 동네 주민들과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 시골 아저씨 외투를 입은 채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고 있던 그의 모습에선, 이전에 본 적 없었던 한 정치인의 소탈함과 솔직함이 묻어났다. 나는 어쩌면 ‘자연인 노무현’에 먼저 빠졌는지도 모른다.

대학 새내기 시절은 빠르게 흘러갔다. 광화문광장엔 촛불 시민들이 모이고, ‘명박산성’이 설치된 날이 많았지만,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때 내게 중요한 건 단 한 가지였다. ‘오늘은 술을 누구랑 마실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2009년 봄이 한창이던 어느 날, 아침부터 텔레비전이 시끌벅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 모든 매체를 뒤덮었다.

ⓒ시사IN 포토2008년 4월13일 봉하마을을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손을 들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문득 세상이 궁금해졌다. 적어도 퇴임 후에는 편해 보였는데, 잘 지내고 계신 것 같았는데, 무엇이 그를 떠나보낸 것일까. 무심코 댓글을 달았던 나도 잘못이 있던 건 아닐까. 그와의 제대로 된 인연은, 그가 이 세상을 등지고 난 뒤에야 시작된 셈이다.

나는 찬찬히 그의 흔적을 돌아보았다. 그의 국민장에 모인 수백만 시민들의 눈빛을 헤아리기 시작했고, 그가 남긴 말과 영상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어느새 10년이 흘렀다. 이제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만 봐도 눈물이 고인다. 실로 놀라운 점은, 그의 모든 공식적인 언행에는 내가 파악했던 ‘자연인 노무현’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그토록 진실되고, 성실했던 정치인 노무현. 부정과 불성실이 당연시되는 정치 현실에서 스러져간 자연인 노무현. 그를 떠나보내야 했던 이 역사의 비극을, 나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 무관심, 퇴임 후 큰 난관에 처했을 때 무관심, 주변 세상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 내가 학창 시절 아무 생각 없이 그를 향해 달았던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는 댓글. 늦었지만 이제는 “이게 다 노무현 덕분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삶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속죄 중인지도 모른다. 내 나이 스무 살 때 망연히 떠나보냈지만, 서른이 되도록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 오늘도 무척이나 그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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