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과 원더걸스는 하반기 대중음악계의 아이콘이다. '거짓말'과 '텔 미'로 각각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음악적 방향을 따지면, 빅뱅은 일렉트로니카 계열이고, 원더걸스는 레트로(복고)이다. 빅뱅은 YG, 원더걸스는 JYP 소속이다. 사진은 빅뱅.
하반기 한국 대중음악계의 열풍을 둘만 꼽으라면? 답은 금세 나온다. 빅뱅과 원더걸스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거짓말’과 ‘텔 미’다. 빅뱅의 ‘거짓말’은 최근 두 달이 넘도록 온라인 인기 차트 1위를 내놓지 않았다. ‘텔 미’의 춤은 온갖 UCC로 제작되며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들의 인기는 온라인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길거리의 휴대전화 판촉 행사에서 ‘거짓말’과 ‘텔 미’는 어김없이 흘러나온다.

동방신기 이후 아이돌(idol)계에 절대 지존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폭발적 인기는 낯설다. 빅뱅과 원더걸스에게 공통적 코드는 없다. 성별도 다르고, 음악적 방향도 다르다. 빅뱅이 일렉트로니카 계열이라면 원더걸스는 레트로(복고)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 모두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이 아니라는 점이다. 빅 뱅은 양현석이 이끄는 YG, 원더걸스는 박진영이 이끄는 JYP가 만들어냈다.

YG와 JYP 모두 아이돌 그룹과는 인연이 없던 회사다. YG의 주력은 휘성, 세븐 등 대부분 솔로 가수였다. 원타임과 지누션이 있긴 하지만 이들은 정통 아이돌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즉, 기획사 시스템에 의해서 만들어진 ‘보이 밴드’라기보다는 스스로 곡을 쓰고 프로듀싱을 하는, 1990년대 초까지의 댄스 그룹 시스템에 가깝다. 오디션을 통해 10대를 모으고, 몇 년간 트레이닝을 시킨 후 멤버마다 캐릭터를 부여해 데뷔시키는 SM식 아이돌 시스템과는 달랐던 것이다.

JYP도 마찬가지다. 박진영이 프로듀서로서 가장 먼저 성공시킨 가수는 박지윤이었고, 가장 크게 성공시킨 가수는 비다. 모두 솔로다. 역시 정통 아이돌이라 할 수는 없지만 몇 년 전 JYP가 비와 함께 야심차게 준비했던 ‘노을’은 사실상 실패했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게다가 현재 JYP 소속 가수 중 원더걸스를 제외하면 그룹 형태의 팀은 없다.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가장 높은 팬 충성도와 소비 집중력을 보이는 아이돌에 관한 한 두 회사 모두 취약했던 것이다.

반면 근래 몇 년 동안 SM은 사실상 아이돌계를 독점해왔다. 1996년 H.O.T.를 성공시키며 이 땅에 기획사 시대를 열었던 게 SM이다. 뒤이어 S.E.S가 등장했고 신화도 데뷔했다. 그 때는 음반 시장의 전성기였다. 찍었다 하면 무조건 10만 장은 나간다는 얘기가 정설처럼 통했다. 눈먼 돈이 앞다퉈 가요계로 몰려들었다. 게다가 아이돌은 황금시장이었다. 당연히 다른 기획사들이, SM 혼자 이 엘도라도를 차지하게 보고만 있지 않았다. 그래서 1990년대의 아이돌에게는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다. SM의 첫 번째 라이벌은 대성기획(현 DSP)이었다. H.O.T가 ‘캔디’로 절정의 인기를 누린 얼마 후 대성기획에서는 젝스키스를 데뷔시켰다. 그 뒤 SM이 S.E.S를 내놓으며 걸 그룹의 시대를 열자 기다렸다는 듯 핑클이 등장했다. SM이 남성미를 부각시키며 신화를 내세우자 이번에는 싸이더스가 박진영의 프로듀서하에 G.O.D.를 내보냈다. H.O.T.와 젝스키스만큼의 구도는 아니었으되, 2세대 아이돌의 대표격인 이들 역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아이돌 전성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아이돌이 독점하는 시장에 대한 반감, 게다가 급격히 보급된 mp3의 영향으로 음반 시장이 급격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성공률도 낮은 데다가 유지 비용도 적지 않은 아이돌은 더 이상 매력적인 아이템이 아니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은 어디까지나 시장이 안정적일 때 얘기다. H.O.T, 젝스키스가 해체한 것도 그 무렵이다. 떨어지는 시장 가치 때문이었다. 더 이상 한국에서 아이돌 그룹의 등장은 불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신드롬을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의 아이돌은 단 몇 년 만에 옛날 얘기가 됐다. 비, 세븐 등 혼자 노래와 춤을 다 소화하는 가수들의 시대가 열린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빅뱅과 원더걸스, SM 가수들과 창법 등 달라

그런 와중에 SM은 동방신기를 성공시켰다. 애초에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기획한 동방신기가 국내에서 대박을 터뜨렸다는 사실은 여전히 아이돌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걸, 아이돌이 태어나는 이상 새로운 10대들이 계속 새로운 소비자가 되어 시장에 유입된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하는 일종의 사건이었다. 그때는 아이돌에 대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회사들이 이미 다른 쪽에 전념할 때다. DSP는 이효리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었다. 싸이더스는 음악에서 손을 턴 지 오래였다. 박진영이 세운 JYP는 비를 제외한 다른 가수들의 성과가 좋지 않았다. YG는 아직 본격 아이돌 시장에 진입한 경험이 없었다.

원더걸스
SM의 독주가 시작됐다. 슈퍼주니어가 동방신기의 뒤를 이었다. 하지만 양날의 칼이었다. 동방신기는 어느 순간 새로운 팬 층을 늘려가지 못했다. 비록 그들이 10대부터 40대 여성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팬 층을 보유하곤 있었지만 데뷔곡인 ‘HUG’를 제외하면 진정한 의미의 ‘유행가’가 없는 게 사실이다. 기존 팬뿐만 아니라 새로운 팬들을 포섭할 수 있는 히트곡 말이다. 슈퍼주니어는 애초에 엔터테인먼트 전 영역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팀이다. 따라서 음악은 시장에 손쉽게 진입하는 일종의 명함 같은 수단이다. 게다가 SM의 독점이 지속되고, 일부 극성팬들이 사회 물의를 빚으면서 그들의 팬이 아닌 대중의 반감을 샀다. 독점은 필연적으로 반대 세력을 낳는 법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최근 몇 년간 세븐을 제외한 이렇다 할 히트 상품을 내놓지 못한 YG, 비와의 계약을 끝낸 JYP가 사활을 걸고 아이돌 시장에 뛰어든 건 당연하다. 말하자면 SM이 독점하고 있던 아이돌 시장은 한 후보가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되, 대항마를 기다리는 계층 또한 만만치 않은 지금의 대선판과 비슷했다. 대항마의 조건은 대척점이지 유사성에 있지 않다. 예전의 DSP가 그랬듯 멤버 숫자를 한 명 늘려서 경쟁사와 비슷한 콘셉트로 가는 시대는 끝났다. 아류로 장사하기에 지금의 음악 시장은 너무 열악하다.

그래서 YG의 빅뱅, JYP의 원더걸스 모두 SM과는 다른 길을 따랐다. SM 아이돌의 장점이자 단점은 완벽한 기획이다. 멤버 모두가 자체적인 개성보다는 기획사의 콘셉트에 의해 콘트롤된다는 이미지가 있다. 사운드도 지나칠 만큼 정돈되어 있다. 그러나 빅뱅의 이미지는 비보이에 가깝다. 반항아의 느낌이랄까. SM 소속 아이돌 그룹보다 자유분방하다. 슈퍼주니어가 김희철, 신동 등 아이돌계에서는 파격적인 캐릭터를 내세우지만 무대에서까지 그렇지는 않다. 보컬 스타일도 SM 스타일 가수들이 한결같이 유영진에게 영향받은 (혹은 배운) R&B 스타일의 창법을 구사하는, 즉 성대를 심하게 떠는 데 반해 빅뱅은 ‘쌩목소리’로 노래한다. 게다가 멤버 중에 곡을 쓰는 이도 있다. ‘거짓말’은 G-드래곤의 노래다.

원더걸스는 아예 새로운 모델이다. S.E.S와 핑클의 출발점은 ‘보호 본능’ 유발이었다. 그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섹시 콘셉트가 도입됐다. 그 후 얼마나 오랫동안 이제 갓 스무살 안팎의 소녀들이 벗고 나왔던가. 그러나 원더걸스는 교복을 입는다. 문근영 이후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잘 팔리는 코드인 로리타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최초의 소녀 그룹인 것이다. 10대와 20대뿐만 아니라 30대와 40대가 그들의 팬 사인회에까지 출몰하는 건 이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1980년대 스타일의 레트로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인상적인 멜로디 라인은 아이돌 시장의 바깥에 있는 이들에게 익숙하게 다가갔다. 원더걸스는 로리타 코드와 복고풍의 사운드가 만나 원더걸스는 신드롬의 주역이 됐다. S.E.S 이후 천상지희를 내놓았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SM의 약점을 JYP가 극복한 셈이다. 몇 년간 아이돌 시장을 독점해오다시피 했던 SM의 아성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빅뱅과 원더걸스, 두 번째 히트곡 내야

그러나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이미 SM은 내수보다는 수출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보아의 일본 성공기가 있고 동방신기 또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최근 슈퍼주니어의 중국 활동을 앞두고 중국인 멤버를 영입하겠다고 밝힌 것도, 국내 시장보다는 외국에 중점을 두는 SM의 기조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결국 빅뱅과 원더걸스 모두 한류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빅뱅과 원더걸스는 이제 갓 추격을 시작한 단계라 할 수 있다.

SM엔터테이먼트가 키운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는 팬 층의 결집도가 강하다.
랠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변수도 많다. 아이돌 그룹이 시장에서 반석을 굳히기 위해서는 최소 2곡 이상의 히트곡은 있어야 한다. 빅뱅과 원더걸스의 후속곡, 혹은 후속 앨범을 기다려봐야 하는 이유다. 한 번의 신드롬으로 끝난다는 건, 곧 지금이 그들의 천정이라는 얘기가 된다. H.O.T.가 아이돌의 전설이 된 건 ‘캔디’ 이후 ‘행복’으로 쐐기를 박았기 때문이다. 핑클은 ‘내 남자 친구에게’에 이어 ‘영원한 사랑’으로 S.E.S.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캐릭터만 있고 설득력 있는 작품이 없을 때, 아무리 아이돌이라고 해도 기세는 천장을 치고 내려가기 마련이다. 또한 SM의 다음 행보도 주목해야 한다. 소녀시대가 11월에 정규 앨범을 발매한다. 보아도 연말쯤 국내 컴백을 계획 중이라고 알려졌다. 여기에 동방신기 팬 층의 집결도는 심지어 어떤 정치 세력보다도 강하다. SM의 역공에 맞설 YG와 JYP가 지금의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바야흐로 아이돌 삼국지의 개막이다.
기자명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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