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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봉하마을의 소나기

이진욱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5월 29일 수요일 제6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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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아내와 첫째 아이는 등교하고 둘째는 유치원에 가서 한가로운 시간이 되었다. 미세먼지 농도가 약간 높은 편이었지만 언제 봄이었나 싶게 초여름 날씨인 5월 첫날이었다. 노동절이라는 의미 있는 날이지만 내게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진 5월의 시작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열 번째 5월이다.

둘째 아이의 심한 멀미로 인해 먼 곳에 다니기 힘들어 봉하마을에도 가족끼리는 두 번밖에 같이 가지 못했다. 혼자 있으니 편하게 봉하마을에 갈 기회여서 10년여 세월을 함께한 애마를 몰고 봉하로 향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자’는 마음으로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한참을 달려도 차 안이 조용했다. 차를 살 때 함께 단 내비게이션이 작동하지 않았다. 그래도 불안하지 않았다. 반백 번 정도 가보았으니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곳이다. 1시간20분쯤 걸려 도착할 때까지 내비게이션은 먹통이었다. 초행길이었으면 참 난감했을 터이다.

내게도 이 길이 초행길이던 적이 있었다. 2009년 5월24일이었다. 하루 전날은 토요일이었다. 여자 친구와 아침 일찍 만나 데이트 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선생님, 노무현이 자살했대요’라고 적힌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노무현’이라고 해서 화가 나는 것보다 ‘자살’이라는 글자에 시선이 멈췄다. 그냥 장난이려니 싶었다. 여기는 대구라서 노무현을 싫어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곳이니 학생이 장난치는 것이라 생각했다. 혹시나 해서 텔레비전을 켜고 확인해보니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속보로 나오고 있었다.

너무나 현실감 없는 소식에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냥 여느 다른 날처럼 여자 친구와 시간을 보내다 다음 날 만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혼자 집에 있으니 대통령님 서거가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허망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 여자 친구에게 “우리 봉하마을에 다녀오자”라고 말했다. 여자 친구도 흔쾌히 승낙했다. 알고 봤더니 여자 친구도 대통령님을 좋아했다. 대구 토박이가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인데 말이다. 그런 나 역시 경상도 토박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 생각이 달랐다.

사실 내 삶에서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은 늦은 편이었다. 2000년 총선에서 낙선하고 노사모가 결성될 때 난 군인이었다. 그 이전에 그가 낙선을 계속할 때도 나는 정치를 모르는 고등학생이었고,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던 대학생이었다. 당장 눈앞의 임용시험과 학군단 생활이 우선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군 생활까지 그저 쉼 없이 흘러가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02년이었다. 그해 대선이 있었다. 말년 중위로 무서울 것 없는 군 생활을 하고 있었고, 전역과 동시에 교사로 발령 예정이라 고민도 없었다. 동기 소대장들은 취업 걱정에 노심초사할 때, 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나 챙기며 생활했다. 그 시절 최고의 뉴스는 월드컵과 ‘노풍’이었다. 외박 나오던 길에 사봤던 시사 주간지를 통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의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가 내 기억 속에서 멋있는 아저씨였음을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알았다. 5공 청문회에서 빛나던 단 한 사람이었고, 명패를 집어던지던 열혈 사나이였다. 그런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되는 과정은 마지막 군 생활의 소소한 재미였다.

전역 후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후의 우여곡절, 그리고 기적 같은 승리는 모두 아실 것이다. 대통령이 되고 낮은 지지율로 퇴임할 때까지도 항상 그가 좋았다. 퇴임 후 전해오는 훈훈한 소식에 한번 찾아가야지 생각만 하다 가지 못했다. 결국 대통령님의 서거 후에야 후회와 슬픔 속에서 찾아갔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찾아간 진영읍은 전국에서 모여든 조문 인파로 인해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지금은 진영휴먼시아 6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14번 국도 육교 근처 빈 곳에 주차했다. 어딘지 몰라 사람들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지금은 그 길이 3.5㎞ 정도 떨어진 지점인 것을 알지만, 거리감도 없이 그냥 걸었다. 유난히 햇살 좋았던 초여름 날씨에 등에는 땀이 가득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설 무렵 걸음을 멈춰야 했다. 조문 순서를 기다리는 줄이 줄어들지 않는 듯했다.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빈소가 마련된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조문 차례가 되어 절하는 순간 여자 친구는 오열해 일어서질 못했고, 내 눈에는 눈물이 흘러 앞이 보이질 않았다. 겨우 여자 친구를 일으켜 나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비를 피하고 싶지 않았다. 조문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비를 맞으며 그냥 있었다.

비와 함께 눈물이 흘러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이 한참 동안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 간 길을 되돌아 집에 도착하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첫 봉하 방문이다. 그 뒤로 여자 친구와는 한 번 더 봉하마을에 갔다. 그렇게 그곳을 함께 갔던 여자 친구는 지금 아내가 되었다. 이제는 가족으로 함께 대통령님께 인사드리는 사이가 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노무현을 사랑했던 두 사람이 만나 앞으로 노무현을 존경할 두 사람이 더 생겼다. 이제 열 살, 여섯 살인 두 딸이 자라 세상을 조금씩 알아갈 즈음 내 마음과 같을 순 없지만 각자 새로운 의미로 대통령님을 그리워할 순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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