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을 앞둔 정치인들은 앞다퉈 책을 출간한다. 대개 인생사를 눌러 담은 자서전이거나 정치적 비전을 밝히는 에세이다. 정치팀 기자 생활을 하면서 불가피하게 이런 정치인들의 책을 챙겨봐야 했다. 고난과 역경, 내 고향(지역구)에 대한 사랑. 당연히 열에 여덟은 ‘핵노잼’이다.
안 팔리는 건 둘째 치고 왜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 정치적 수사에 ‘사람 냄새’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정작 유권자인 우리 주변 삶의 이야기가 빠져 있다. 그들의 ‘비전’이라는 게 딱히 논리적이지도 않다. 정책은 두루뭉술하고 곁들이는 데이터는 곧잘 빈틈을 보인다. 자화자찬이 최고의 홍보라고 착각하는 순간 책은 곰팡이 냄새를 풍긴다. 왜 우리가 글을 쓴 당신과 함께 동행해야 하는지 설득하지 않는다. ‘정치인 책은 믿고 거른다’는 신념을 굳히는 찰나, 엘리자베스 워런의 〈이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다〉를 만나고 편견에서 조금 벗어나게 됐다.
워런의 책에는 깨알 같은 디테일이 살아 있다. 특히 스토리텔링의 중심을 이루는 세 유권자의 삶이 인상적이다. 월마트에서 일하는 지나, DHL에서 해고당한 마이클, 9만 달러 학자금 대출에 시달리고도 결국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카이까지. 모두 중산층의 꿈을 꾸었지만 미국 사회의 안전망에서 벗어난 이들이다. 워런은 이 인물들이 처한 고통은 절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구조적으로 어떤 체계가 일그러졌으며 그것이 어떻게 미국의 중산층을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취재에 충실했고 법안과 데이터라는 양적 자료로 논리를 보충한다. 심지어 그걸 유려하게 풀어내는 작가적 기질까지 뽐낸다. 왜 평범한 미국 시민의 삶은 워싱턴 D.C. 의회의 결정에 영향을 받는가. 이 단순한 질문에 대한 성의 있는 답변이 담겨 있다. 2020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한 정치인의 출마선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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