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의 영혼〉 윤동수 지음삶이보이는창 펴냄

1983년. 〈전태일 평전〉은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지금과는 다른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 ‘전태일’과 저자 이름(조영래)은 가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수많은 이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고, 〈전태일 평전〉은 고전이 되었다.

2008년, 여기 책 한 권이 있다. 〈당신은 나의 영혼〉. 2003년 세상을 등진 두 노동자 이해남·이현중에 대한 평전이다. 충남에서 노조 활동에 열심이었던 세원테크 노조원 이현중은 암으로, 노조위원장이었던 이해남은 분신해 사망했다. 노조가 결성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있었던 일을 담았다.

이 책을 읽는 것은 불편하다. 〈전태일 평전〉 때처럼 48년 전 일도 아니고 고작 7∼8년 전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첫 대목을 보자. 2001년 이해남이 노조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이현중이 작업반장에게 맞는 것을 보고 나서였다. 작업반장은 ‘예비군 훈련이 끝나고 난 후 회사에 와서 한 시간 동안 일을 할 수 있었는데도, 농땡이를 쳤다’면서 욕을 하고, 두들겨 팼다. 이해남이 이를 말리자 관리자들의 반응은 이랬다. “아니꼬우면 그만두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차이조차 알지 못하던 노동자 이해남이 노조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계기였다.

잔업을 강제로 해야 하고, 시급이 고작 2160원인 회사. 조합원이라고 해봐야 겨우 60명인 이 작은 노조는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전쟁 같은 일을 겪었다. 용역깡패, 손해배상, 가압류…. 소설가 윤동수씨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관련자 70∼80명을 취재했는데, 중요한 순간마다 그들의 증언을 그대로 수록했다. 오랜 수배 생활을 겪던 이해남은 계열사 공장에서 분신한다. 그리고 2004년, 회사 측과 가까운 이들이 노조를 ‘접수’했다. 이 아픈 패배의 기록에 마음이 시리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저자가 맨 앞 장에 왜 이 한 줄을 적어놓았는지 알 수 있다. ‘오, 놀라워라! 우리가 인간이라니!’

책을 다 읽고서 ‘세원테크’에 대한 보도를 찾아보니 이 투쟁을 다룬 기사가 거의 없다. 무관심이 철저했다. 그리고 올해 12월, 수출 증대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이 회사 대표의 인터뷰가 여럿 눈에 띈다. 이 책에서 ‘노조를 없애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사람’으로 기술된 이 경영자는 한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회사 경영은 경영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종업원이 하는 것이다. 종업원이 자고 일어나면 좋은 회사에 출근해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두 극단의 기록은 2008년 한국 사회의 쓰디쓴 자화상이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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