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정보처리사, 기술사업평가사, 드론조종기술사. 이 가운데 정부에서 발급하는 기술 자격증은 무엇일까? 정답은 ‘없다’. 그렇다면 한국직업능력자격검정원, 한국교육검정원, 한국자격검정원, 한국보건복지자격검정원, 대한자격검정평가원. 이 가운데 공공기관은 몇 곳이나 될까? 두 곳은 상법상 회사이며, 두 곳은 개인사업체다. 나머지 하나는 등기조차 없는 단체다.

‘한국’ ‘검정’ ‘평가’ ‘자격’ ‘교육’ 같은 단어가 들어간 개별 회사가 미술심리상담사 자격증, 빅데이터전문가 자격증, 학교안전지도사 자격증 등을 발급한다. 불법은 아니다. 이곳에서 발급하는 자격증이 가짜인 것도 아니다. 엄연히 국내 자격증 체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민간 등록 자격증’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지난해 4월 국무조정실과 교육부는 민간 등록 자격증 신설 자격 요건을 엄격하게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정책이 발표되고 1년이 지난 현재 상황은 어떨까. 결과적으로 정책 발표 이후 민간 등록 자격증은 오히려 늘어났다.

자격증은 크게 국가자격증과 민간자격증으로 나뉜다. 정보처리기능사, 산업안전지도사, 응급구조사처럼 정부 기관이나 법률로 지정된 별도 기관에서 발급하는 국가자격이 총 701종이다. 나머지 민간자격증은 ‘국가공인 민간자격’과 ‘등록 민간자격’으로 나뉜다. 주거복지사(한국주거학회 발급)나 열쇠관리사(한국열쇠협회 발급)처럼 정부가 공인한 민간자격은 100개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등록 절차만 거치면 누구나 발급할 수 있는 민간 등록 자격증이다. 5월9일 현재 국내 민간 등록 자격증은 총 3만3928종이다. 자격증을 발급하는 등록민간자격관리운영기관(개인, 회사 등)만 따져도 8150곳에 이른다.

ⓒ연합뉴스2015년 이후 생겨난 드론 자격증은 현재 294개에 이른다. 사진은 서울 광나루 ‘한강 드론 공원’에서 드론을 날리는 시민.
드론 자격증 294개, 코딩 373개

가령 청소년심리상담사라는 이름이 붙은 민간자격증만 총 23개에 이른다. 출입국사무소 등에서 외국인을 위한 통역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법통역사처럼 전문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자격증도 3개 기관에서 각각 따로 발급하고 있다.


〈그림 1〉을 살펴보자. 5월9일 현재 드론과 관련된 민간자격증은 총 294개에 이른다. 모두 드론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2015년 이후 생겨난 자격증이다.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는 자격증이 코딩 분야(373개)다. 2016년부터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분야는 이미 국가공인 자격증인 정보처리 기능사·산업기사·기사 따위가 있지만, 이와 별개로 유사한 민간자격증이 넘쳐난다. 특히 공교육 내 코딩 교육을 의무화하는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이 2018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면서 교육용 프로그래밍 언어(코딩에 필요한 알고리즘을 훈련하기 위해 쉽고 단순하게 구성된 프로그래밍 언어) 교육 자격증 코스가 집중적으로 신설됐다. 한 코딩지도사 자격증 발급기관은 “관련 자격증이 있으면 학교(방과후 수업)나 문화센터,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강사로 일할 수 있다”라며 홍보한다.

사회적 참사가 자격증 시장을 열기도 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교육부가 수학여행이나 현장 체험학습 등에 안전지도 전문가를 동행하도록 하면서 안전지도사 자격이 연이어 생겨났다. 2014년 당시 교육부는 “국가인정 수학여행 안전지도사를 신설하겠다”라고 발표했지만, 참사에 대비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비판에 직면해 국가자격화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러나 민간 영역에서는 이후 학교안전지도사 자격이 70여 개 신설되어 기관마다 경쟁 구도를 이루었다.


〈그림 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2008년 508개에 불과했던 민간 등록 자격증이 2013년부터 매년 급증하고 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매해 신규 자격증이 5000개 이상 생겨나면서 지난해 처음으로 3만 개를 돌파했다. 올 한 해만도 5월9일 현재까지 신설된 자격증이 2579종에 이른다. 이 추세대로라면 내년에는 민간 등록 자격증 4만 개 시대도 가능하다.

자격증은 어쩌다 남발되게 되었을까? 일단 등록 자체가 그리 어렵지 않다. 법인, 비영리단체, 회사, 개인사업자 등이 민간 자격 등록업무를 위탁받는 기관인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민간자격관리자를 등록 신청하고 결격사유 검사를 통과하면 일종의 등록 기관으로 승인된다. 각 자격 분야 주무부처가 별도로 지정하는 ‘금지 분야’와 겹치지만 않으면 누구든 자격증을 신설할 수 있는 구조다.

자격증은 그 자체로 시장이 된다. 특정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커리큘럼을 민간에서 직접 선정하고, 시험 과목과 문제, 강의 등도 별도로 만들 수 있다. 시장성에 따라 교재를 출간해 판매하는 것도 가능하다. A라는 회사가 반려동물관리사 자격증을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이 회사에서 만든 인터넷 강의 사이트에서 총 30만~40만원에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시험도 온라인으로 치를 수 있다. 출석률 60%, 시험점수 60점만 넘으면 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방식이다. 대다수 온라인 자격증 학원이 이 같은 방식으로 운영된다.

최근에는 비슷한 업체가 늘어 경쟁이 심해지자 수강료 무료, 자격증 발급비 유료 시스템이 보편화되었다.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 많아야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특별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명목으로 인터넷 강의 수강료를 받지 않는 대신에, 시험 응시료나 합격증 발급비용을 따로 받는 방식이다. 서울에 위치한 한 발급기관은 반려동물관리사 자격증을 발급받는 조건으로 상장형 자격증과 카드형 자격증 세트를 8만원에 내주고 있다. 동영상 강의와 시험은 온라인 시스템으로 운영하되, 강의 교안과 예상문제집을 (무료로) 수강신청한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시험 문제는 대부분 예상문제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정답을 펼쳐둔 채 시험을 치를 수 있다.

기자는 실제로 한 자격증 발급 회사(B사)에 회원 가입을 하고 바리스타 자격증 코스에 등록해보았다. B사는 30여 개 자격증을 발급해주고 있었다. 바리스타 자격증 교육은 30분짜리 인터넷 강의 24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수강 기간은 5월8일부터 6월12일까지, 시험은 5월22일부터 치를 수 있었다. 다른 업체와 마찬가지로 60% 이상 출석, 60점(100점 만점) 이상 득점하면 자격증이 나온다. 강의료는 무료, 자격증 발급비는 7만원이었다. A4 용지 62쪽 교안과 15쪽 분량 예시 문제도 바로 다운로드할 수 있었다. 정작 예시 문제 파일 첫 페이지에 B사가 아닌 C사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다른 바리스타 자격증 발급업체 자료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C사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니, 같은 교수가 같은 내용을 가르치고 있었다. 업체끼리도 강사, 문제집, 커리큘럼 등을 돌려쓰고 있는 셈이다.

수익구조가 자격증 발급량에 달려 있다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자격증을 발급할수록 수익을 늘릴 수 있다. 업계 유관 기관이 아니더라도 유망한 자격증을 남발하게 된다. ‘한국○○○○진흥원’이 대표적이다. 개인사업체로 등록되어 있는 이 회사는 2015년부터 ‘손유희지도사’ ‘자기주도학습지도사’ 같은 각종 교육 관련 자격증을 신설하기 시작해 지난 4년 동안 총 150개 자격증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해킹보안전문가, 운동처방사, 한자지도사, 보험심사평가사 등 서로 연관성이 떨어지는 각종 자격증을 자사 명의로 신설했다. 이 회사 홈페이지에는 〈한경비즈니스〉가 제공하는 ‘교육부문 최우수 브랜드 대상’을 받았고 모든 인터넷 강의와 응시료가 무료라고 소개되어 있다. 응시자가 내는 돈은 자격증 증빙서류 발급비용(5만~9만원)뿐이다.

그런데 이 회사에서 주는 커피바리스타 자격증 6종(로스팅마스터, 품질평가사, 핸드드립전문가 등)은 ‘○○커피바리스타협의회’에서 발급하는 자격증을 제공한다고 소개한다. 반려동물 관련 자격증은 ‘○○반려동물자격협회’에서, 병원원무행정사나 병원코디네이터 자격증은 ‘○○병원코디네이터협의회’에서 발급해준다고 설명한다. 언뜻 보면 별도 전문 기관에서 해당 자격증을 인증해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실제로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홈페이지에도 각 기관이 별도 등록되어 있다. 단지 ‘한국○○○○진흥원’이 교육 운영만 대행해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커피바리스타협의회’ ‘○○반려동물자격협회’ ‘○○병원코디네이터협의회’는 모두 ‘한국○○○○진흥원’의 산하 자회사였다. 심지어 ‘○○커피바리스타협의회’와 ‘○○병원코디네이터협의회’는 등록된 전화번호도 일치한다. 자격증에 찍혀 나오는 발급기관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페이퍼컴퍼니인 셈이다.

‘협의회’ ‘협회’ 따위로 지칭하지만, 실제 협의체나 회의기구, 심지어 협회장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5월9일 한국○○○○진흥원 관계자는 〈시사IN〉과 통화에서 “협회장 이름은 개인정보라 알려드릴 수 없다”라며 답변을 피하다가 끝내 “회사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대표 이름만 있을 뿐 협회장은 없다. 대표 이름은 개인정보라 말할 수 없다”라고 답했다.

수강료 대신 발급 수수료만 받아

수익사업은 대리점 사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터넷 자격증 수강 시스템을 운영 중인 ‘고○에듀’라는 회사는 서울광진성동교육지원청의 허가를 받은 원격평생교육시설이다. 이 회사의 웹디자인, 교육 내용, 사이트 운영 시스템은 모두 한국○○○○진흥원과 판박이다. 자체적으로 만든 커리큘럼이 없다. 한국○○○○진흥원 관계자는 “‘고○에듀’는 일종의 대리점 개념이다”라며 자격증 발급은 한국○○○○진흥원이 한다고 설명했다. 고○에듀 역시 마찬가지로 수강료와 응시료는 받지 않고 발급 수수료로 운영되고 있었다.

누구든 발급비만 내면 어려움 없이 딸 수 있는 자격증은 얼마나 효용이 있을까? 당장 자격증을 발급하는 기관 스스로 자신들의 자격증을 믿지 못한다. 총 152개 자격증을 발급하는 ‘한국지식○○개발원’(개인사업체)은 5월3일에 올린 ‘작물재배 관련 강사 모집’ 구인공고에 온라인으로 취득한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은 서류전형에서 탈락시킨다고 명시했다. 자격증을 직접 만드는 업체마저 민간 등록 자격증, 특히 인터넷으로 딴 자격증은 효용이 없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피해를 보는 건 시간과 돈을 들여 공부한 수강생들이다. 민간 등록 자격증을 발급하는 ‘협회’ ‘평가원’ 따위가 영리를 목적으로 한 회사라는 점을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국소비자원이 2015년 민간자격 보유자 3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본인이 취득한 민간자격을 국가자격으로 오인하는 비율이 61.3%에 달했다.

이는 민간 등록 자격증 전체의 신뢰도를 갉아먹는 일로 이어진다. 좋은 뜻을 가진 민간단체나 업계에서 엄격한 기준을 거쳐 자격증을 발급한다 하더라도 비슷한 이름을 가진 다른 민간 등록 자격증과 혼선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인기 있는 자격증은 발급하려는 회사도 그만큼 많다. 바리스타 자격증이 대표적인데 현재 270여 개가 등록되어 있는 바리스타 자격증은 각종 협동조합, 종교기관, 방송사 산하 교육기관마저 자체 자격증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애초 민간자격증 등록제도는 각종 사기를 막기 위해 2007년부터 도입되었지만, 오히려 자격증 남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효과도 불러왔다.

사업을 계속 확장하는 업체들은 각종 ‘협회’를 추가 신설해 규제망을 피해 가고 있다. 수강료를 받지 않아 애초부터 수강료 환불에 관한 민원 가능성을 차단하기도 했다. 관계 부처의 규제책은 아직 민간 등록 자격증 시장의 확대를 잠재울 만큼 효과적이지 못하다. 개인이 그나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마련한 ‘민간자격정보서비스(pqi.or.kr)’에서 자격증을 누가,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는 것뿐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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