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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겁을 이어온 대자연의 파노라마

신안군 가거도

김민수 (섬 여행가)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5월 22일 수요일 제6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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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에는 총 3개 마을이 있다. 항구를 둘러싸고 행정시설과 학교, 민박 식당이 밀집해 있는 1구 대리마을, 섬등반도가 있는 2구 항리마을, 등대가 가까운 3구 대풍리 마을이 그것이다. 가거도의 면적은 9㎢ 정도로 여의도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이지만 중심에 해발 639m의 독실산이 버티고 있어서 마을 간의 이동이나 탐방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독실산은 한라산을 제외하고 울릉도 성인봉 다음으로 높은 섬 산이다.

대중교통이 없는 가거도에서 이동수단은 민박 차량이나 낚싯배, 그렇지 않으면 도보에 의존해야 한다. 가거도는 탐방 코스를 7개 구간으로 안내하고 있다. 1일차 숙영지로 정한 곳은 섬등반도의 가거초등학교 항리분교 터였다. 이곳은 2구간에 해당한다. 1구 대리마을에서 삿갓재(샛개재)까지는 섬에서 맞닥뜨리는 최초의 난코스이다. 삿갓재는 섬의 모든 지역으로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일종의 교통요지인 셈인데, 배낭을 메고 구불구불 고개로 오르려면 땀깨나 흘려야 한다.

섬등반도는 바다를 향해 용꼬리처럼 뻗어 있는 길이 1000m, 높이 100m의 해안절벽으로 우리나라 서남단 끝 섬 가거도에서도 가장 서쪽의 지형이다. 굴업도의 개머리 언덕이 온화한 곡선미를 가지고 있다면, 섬등반도는 더욱 위압적이고 극단적인 남성미를 자랑한다.
ⓒ김민수
대리마을

6년 전, 색 바랜 모습으로 남아 있던 항리분교 교사는 철거되었고 애처로이 서 있던 소년상은 한쪽 팔이 없는 흉물스러운 모습이다. 사라진 것은 추억이라도 되었겠지만 남아 있는 것은 여전히 애틋하고 또 안타깝다.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인사를 나눈 어르신은 고작 두어 명, 손바닥 밭에 박혀 있던 무 몇 개가 몹시 쓸쓸해 보였다.

섬등반도에서는 가거도의 반이 보인다고 했다. 사방 어느 곳을 바라보든 눈을 뗄 수 없는 경이로움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억겁을 이어온 대자연의 파노라마다. 하늘에 자욱했던 미세먼지조차 섬등반도 일대의 웅장한 자태를 막아서지는 못했으며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바람에도 쉽사리 몸을 움츠리고 발을 떼어 돌아갈 수 없었다. 마지막 정자에 앉아 붉게 물들어가는 섬 하늘과 해넘이를 기다리고 몇 단계의 조화를 거쳐 어둠으로 치닫는 세상을 확인하고서야 숙영지로 돌아왔다.

가거도 백년등대 가는 길

다음 날, 가거도 등대(백년등대)를 찾아가기로 했다. 거친 비탈의 돌바닥을 차고 걸어야 하는 초입부는 내내 ‘이 길이 맞나?’ 하는 갈등의 연속이었다. 겨우내 사람 인적이 끊긴 산길은 의심받기에 충분한 몰골이 되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가거도 등대’라 쓰여 있는 반쯤 날아간 플라스틱 표식을 발견하고는 크게 안도하고 다시금 걸음에 박차를 가해본다.

가거도 북쪽 끝에 위치한 가거도 등대는 백년등대라고도 한다. 1907년 불을 밝혔으니 이젠 ‘백십년 등대’가 된 셈이다. 일제강점기 때 가거도의 명칭은 소흑산도였다. 그래서 흑산도 등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다 2013년, 등록문화재로 등재되면서 비로소 제 이름을 찾았다.

침낭만을 덮고 비박을 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더구나 7~8초에 한 번씩 등대불을 비춰 위안이 되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주차장 옆 마을주민들의 쉼터라는 공간, 대리석 바닥이 그리 편할 수가 없었다.

대풍리마을은 가거도의 3개 마을 중 가장 열악한 환경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억센 바닷바람을 고스란히 받아 견뎌야 했던 마을 또한 등대길과 같이 최근에야 도로가 연결되고 차량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바닷가 급경사를 따라 하나둘씩 내려선 가옥들은 남루하고, 풍파를 견뎌온 당당함은 오히려 쓸쓸하다.

대풍리 사람들은 미역 채취를 주업으로 하고 살았다. 가파른 지형 탓에 채취한 미역과 배로 들여온 생필품들은 도르래를 이용하여 다시 마을까지 끌어 올린다. 척박한 땅에서는 몇 평의 밭을 일구어내는 일조차 여간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의 내면에는 늘 외롭게 삶을 이어온 섬사람들의 노고가 숨어 있다.

대풍리마을에서 독실산 삼거리까지는 S자 오르막이 셀 수 없이 반복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경사 길에 몸과 마음은 녹초가 되어가고 고개 정상은 오를수록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어찌 그 고개를 넘었는지. 꾸역꾸역 걷다 보니 어느덧 독실산 삼거리를 지나고 다시 삿갓재로 내려오게 되었다. 1구 대리마을과 동개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참 멀리도 왔다. 기차로 4시간, 4시간을 기다리고, 4시간 배를 타고 찾아온 섬. 여행은 예기치 않은 경험을 더해 넉넉하게 채워졌다. 오래전 기억에 또 하나의 여정을 얹어놓으니 1년쯤 지나고 나면 그리움도 훨씬 깊어지지 않을까? 그러다 못 이기면 또다시 섬을 찾고…. 항구에 잠시 정박 중이던 여객선의 엔진 소리가 커졌다. 또다시 섬이 멀어지니 섬이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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