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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공원’ 찍고 막걸리 익는 섬으로

여수시 낭도·사도

박찬은 (<매경 시티라이프> 기자)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5월 21일 화요일 제6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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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낭(狼)’자를 쓰지만 ‘물결 낭(浪)’자를 써야 할 듯 낭만 가득한 섬 낭도는 서해 바다에 띄운 연서 같았다. ‘사랑이 맺어지는 낭도’라는 카피에 한번 웃으며 배에서 내리면 ‘어서 오세요. 여기는 사랑과 낭만이 있는 섬 낭도입니다’라고 쓰인 표지판이 객들을 맞는다. 낙원은 쉽게 지루해지지만 조약돌의 ‘자그르르르’ 소리가 정겨운 섬은 늘 새로운 풍경이다. 100년 된 막걸리가 큰 독 안에서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낭도와, 한때는 공룡이 걸었을 섬, 사도를 찾았다.

‘싸목싸목’은 ‘천천히’를 뜻하는 전라도 방언이다. 그러나 수도권에서 여수의 섬을 찾기 위해서는 밤차를 타고 새벽에 도착하거나, 여수에서 한밤 자고 새벽 배를 타는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섬에 싸목싸목 다가가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아침부터 부지런을 떤 이들에게 배는 ‘선상 일출’이라는 꽤 멋들어진 선물을 준다. 사도는 낭도에 가기 전 완행버스 정류장처럼 들르는 많은 섬 가운데 가장 낭도와 가깝다. 수면 위로 높이 솟기보다는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낙엽처럼 낮게 몸을 움츠리고 있는 겸손한 섬. 바다 한가운데 모래로 쌓은 섬 같다 해서 ‘사도(沙島)’라 불리지만 명색이 ‘모래섬’인데도 태풍과 방파제 제작 이후 많이 유실됐다. 1950년대 고기잡이로 번성했을 당시에는 ‘돈섬’으로 불리며 초등학생만도 100명 가까이 됐다는데, 현재는 주민 수십명이 섬을 지키고 있는 상황.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한나절도 걸리지 않는 사도는 본섬을 중심으로 연도교로 연결된 중도, 양면해수욕장 모래톱으로 연결된 시루섬 증도, 장사도, 추도, 그리고 바위섬 두 개 등 총 7개 섬으로 연결돼 있다. 정월대보름이나 4·5월 보름 썰물 때면 신비의 바닷길이 열려 섬들이 ‘ㄷ’자 모양으로 연결되는데, 바닷길이 가장 넓게 열리는 2월 중순에는 7개 섬이 하나로 변한다. 섬에 다시 사람들이 오기 시작한 것은 이 신비의 바닷길과 함께 사도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이 대거 발견되면서부터다. 6500만 년 전에 멸종되었다고 알려진 공룡의 발자국이 7000만 년 전 퇴적층에서 발견됐다는 것은 멸종 위기에 처한 공룡이 마지막 피난처로 이곳에 머물렀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사도에 발이 닿자마자 실물 크기 티라노사우루스 공룡 모형 2개가 여행객을 반긴다.

ⓒ김민수
사도에서 바라본 중도·증도(시루섬)·장사도

7개 섬에 공룡 발자국 3800여 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추도의 옛 담장, 용암의 흔적과 백악기 공룡 발자국 등 섬 전체가 에코박물관으로 지정돼도 손색이 없을 사도. 7개 섬 전체에 3800여 개에 이르는 공룡 발자국 화석이 뿌려져 있지만 현재는 많이 훼손된 상태다. 최근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불법 개발과 보존을 둘러싼 논란이 맞물려 섬의 한가함과는 반대로 시끄러운 소리가 섬 밖으로 새나가기도 했다. ‘잠시 비켜나 있음’의 미학이 필요한 것은 섬이나 육지나 매한가지인가. 해안에는 유모차를 수레 삼아 끄는 노부부가 서 있다. 이제 더는 바다로 들어갈 수 없는 신세를 한탄하는 것일까. 일몰은 그러거나 말거나 뜨겁다. 양쪽으로 바다를 볼 수 있는 양
ⓒ김민수
사도선착장의 티라노사우루스 모형
면해변을 지나 증도로 걸어가면 거북선의 모티브가 된 거북바위와 사람 형상의 얼굴바위를 만나게 된다. 여러 이유로 사람들은 섬을 드나들지만, 중생대에서 시간을 건너뛴 듯한 이 바위들은 그저 묵묵히 객들을 맞는다. 가게가 없는 것은 작은 불편쯤 감수할 수 있는 인내를 지닌 자들만 머무르라는 뜻일까. 예약하면 거북손, 군벗, 배말, 따개비 등으로 만든 민박집의 아침 섬 밥상을 만나볼 수 있다.

어느덧 태평양호는 사도를 지나, 종착항인 낭도에 가닿는다. 섬의 형세가 여우를 닮았다고 하여 ‘이리 낭(狼)’자를 쓰지만, 낭도 주민들은 아름다운 산이 있다는 ‘여산마을’로 불리길 더 바란다. 섬 모양은 이리와 비슷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씨는 양을 닮은 섬인 듯. 집주인의 모습과 마을 전체를 담은 벽화가 섬의 작은 미술관이 되어 여행객들을 제일 먼저 맞아준다. 유중임 할머니의 집 대문에는 ‘쉬운 일이 하나도 없지요!’ ‘낭도길 걷다 보면 꽃길 열릴 거야’ 같은 말이 적혀 있다. 과하지 않은 그래피티에 로컬 주민의 삶을 그대로 받아안은 벽화라 거부감이 없다. 동쪽에는 280m 상산이 있으며, 대부분이 낮은 구릉지로 되어 있는 낭도는 트레킹 도중 필수적으로 보석들을 만난다. 신선이 살 만한 곳이라 해서 ‘신선대’로 이름 붙여진 바위와 주상절리, 쌍용굴 등이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절벽과 절벽을 연결한 출렁다리. 다른 섬들의 질투를 자아낼 듯 대도시의 디자인을 지닌 출렁다리를 건너면 고흥 나로우주센터 정면에 위치한 전망대가 등장한다. 섬에서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라서, 트레킹 도중 만난 일곱 살 꼬마에게 초콜릿을 쥐여주었다. 그랬더니 ‘다함께 차차차’와 ‘내 나이가 어때서’를 멋들어지게 한 곡조 뽑는다. 야영지로 정한 낭도중학교 운동장에는 화장실이 2개나 있다. 파쇄석 쪽은 오캠(자동차 캠핑)족, 스탠드 상부 쪽은 백패커들을 위해 비워둔 듯하다.
ⓒ김민수
낭도 캠핑장(구 낭도중학교)

트레킹을 끝낸 일행이 폐교에 짐을 풀고 캠핑 사이트를 짓는 동안 누군가 바이크를 타고 달려온다. 여수 문화관광 해설가를 겸하고 있는 강창훈 낭도양조장 대표다. 물이 좋아 예전부터 맛 좋은 섬 막걸리를 많이 만든 여수, 그중에서도 낭도에는 ‘100년 낭도 막걸리’가 유명한데 지금은 강 대표의 아들까지 4대째 막걸리를 빚고 있다. 트레킹을 하느라 목이 말랐던 캠핑객들은 강 대표가 선사한 막걸리 한 동이를 금세 비워냈다. 물맛이 좋다는 뜻의 ‘여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수 지역이 워낙 막걸리로 유명하긴 하나, 그중에서도 섬 양조장에서 재래식 발효기법을 4대째 이어오고 있는 낭도젖샘막걸리는 힘세고 진한 감칠맛을 자랑한다.  
ⓒ김민수
사도의 공룡 발자국 화석

100년 된 술 항아리에서 익어가는 낭도막걸리

현대화된 시설이 많은 낭도 옆 섬인 개도 막걸리가 뽀얗고 여성적이라면, 탄산이 섞인 낭도 막걸리는 강하고 투박한 남자 같은 매력이 있다. 낭도 심층수를 이용해 끓인 밀을 식힌 뒤 잘게 부수고, 여기에 누룩을 넣어 100년 된 술항아리에서 발효시키면 옛날 방식 그대로의 막걸리가 된다. “조선 시대부터 써온 두꺼운 항아리도 깰 만큼 술의 힘이 세죠.” 강창훈 대표가 뚜껑을 열자, 깨진 것을 여러 번 다시 붙인 독 안에서 술은 ‘왜 벌써 열어젖혔냐’며 항의하듯 숨구멍으로 ‘뚝뚝’ 소리를 냈다. 막걸리와 음식의 끝내주는 마리아주(조합)를 만들어내는 것은 스물두 살에 시집와 술도가집 며느리가 된 그의 아내. 쏙을 넣은 무된장국, 막걸리 초를 곁들인 청각물회 등 간이 슈퍼를 겸한 식당에서 그녀가 차려내는 찬을 곁들여 막걸리를 마시니, 서울 촌것들의 얼굴이 금세 불콰해진다. 막걸리 외에도 낭도의 매력은 많다. 밀려오는 파도와 ‘자갈자갈’ 소리를 내며 속삭이는 돌들과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는 바닷길, 휴가철에 찾아도 바가지나 인파 없이 한적한 해수욕장,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점 등이 그렇다. 지난해 정부 지원으로 만든 현대식 게스트하우스에선 1박에 1만원으로 저렴하게 묵을 수 있다. 멧돼지가 있으니 산속 야영은 피하는 게 좋다. 섬 막걸리는 섬에서 마셔야 제맛이라더니, 서울에 도착해보니 가방 속 막걸리가 결국 터져 있다. ‘냉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던 안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멀리까지 가져온 게 탈이다. 가방에 밴 쿰쿰하면서도 달달한 막걸리 향을 맡으니 다시 양조장집 안주인의 청각물회 맛이 간절해진다.

ⓒ김민수
낭도 백년도가 양조장


섬에 들어가는 방법

낭도 들어가는 배는 여수시 백야선착장과 여수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탈 수 있다. 백야선착장에서는 1시간20분, 여수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낭도까지 1시간25분~1시간55분이 소요된다(문의: 여수 연안여객선터미널/ 061-662-5454, 백야선착장/ 061-686-6655).

섬에서 할 수 있는 일

낭도 100년 양조장 낭도젖샘막걸리 대표이자 낭도를 알리는 문화해설사인 강창훈씨는 말하자면 낭도의 홍반장이다. 필요할 때 어디든 나타나 주상절리의 역사를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익은 막걸리를 따라주기도 한다. 그러니 낭도에선 100년 양조장을 견학하며 즐기는 미각 힐링을 놓치지 말 것. 낭도의 물은 철분이 많은 데다 밀을 발효시켰으므로 막걸리가 노란색을 띤다. 방부제를 전혀 넣지 않는 까닭에 발효시켜 식초도 만든다. 관광지 느낌이 강한 하화도에서 잠깐 꽃구경을 하고 낭도로 빠져 1박 캠핑을 하며 막걸리를 맛보는 코스를 추천한다.

사도해수욕장에서 공룡테마공원까지 바닷길을 걷는 것은 왕복 2㎞이니 부담도 없다. 벼랑 위로 산책로가 이어지는데 벼랑 아래에서 화산 폭발 때 생긴 장롱만 한 바위들을 찾아볼 것. 등록문화재인 사도 돌담, 천연기념물 434호인 낭도 해변의 공룡 발자국과 상산봉화대 등이 볼만하다. 특히 낭도 주상절리는 놓치지 말 것. 마치 금방 찐 무지개빛깔 떡판을 쌓아놓은 듯한 퇴적층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 섬 버전 그랜드캐니언이 곳곳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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