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마 알아요? 연홍도는 한국의 나오시마 같은 곳이죠.”

안다고 해야 할까? 워낙 유명한 일본의 예술 섬이지만 가보지는 못했다. 그러니 연홍도와 나오시마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육지와 섬만큼이나 동떨어진 비유처럼 들렸다. 어쨌든 좋은 힌트다. 연홍도는 예술을 만날 수 있는 섬이다.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고 불린다.

매끄러운 입도였다. 서울에서 고흥까지, 밤새 달려온 버스는 소록대교-거금대교를 건너 신양선착장에 멈춰 섰다. 연홍도는 거금도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섬 속의 섬’이지만 실상은 거의 육지다. 그곳에서 연홍도까지는 배로 5분. 탔나 했더니 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흥 주변에 흩어져 있는 230여 개 섬들에 묻혀 연홍도의 존재조차 몰랐다.

체감할 수 있을 만큼 섬은 작았다. 선착장에서 출발해 섬 허리춤께의 길을 따라 터덜터덜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을을 관통해 반대편 해변에 도달해 있었다. 면적에 비하면 인구가 많은(?) 편이다. 50여 가구에 주민 100여 명이 살고 있다. 이쯤이면 일주에 욕심을 내볼 만하다. 북서쪽의 ‘좀바끝’에서 남쪽의 ‘아르끝’까지 둘레길을 다 걸어도 4㎞, 한두 시간이면 족할 거리다. 소원오름길, 연홍바닷길, 하늘담은오름길 등 고운 이름이 붙은 길들을 다 걸어보고 싶어졌다. 다음 날 아침에 할 일이 이렇게 정해졌다.

ⓒ천소현연홍미술관 야경

예술 섬 연홍도의 시원이라는 연홍미술관에 짐을 풀었다. 폐교를 개조한 미술관이지만 서양화가 131명이 기증한 작품을 순환 전시하고, 숙소와 식당으로도 운영 중이다. 13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는 선호남 관장은 작은 섬에 미술관을 세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해 질 무렵부터 드러나는 섬의 진가

“연홍도에 처음 와서 폐교를 봤는데 그냥 두기가 아깝더라고요. 육지에서 그리 멀지 않고, 사람들의 심성도 착하고, 뭔가 하면 될 것 같았어요.”

미술관 개장과 예술 섬 가꾸기에는 관장 내외의 땀방울이 서려 있다. 2012년 태풍 볼라벤에 미술관이 파손되면서 크게 휘청거렸지만 다시 일어났고, 2015년 전라남도가 선정하는 ‘가고 싶은 섬’에 꼽히는 열매를 맺었다. 전라남도 브랜드 시책인 ‘가고 싶은 섬’ 가꾸기는 첫해인2015년 6개 섬을 선정한 데 이어 해마다 2개 섬을 추가해 2024년까지 모두 24개 섬을 가꾸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호명(呼名)에 응답하기 위해 마을에는 아트, 건축, 토목 사업이 동시에 진행됐다. 사실 여러 사업을 통해 덧칠하듯 진행된 일이라 작품마다 완성도는 썰물과 밀물처럼 수위 차가 크다. 하지만 바다를 배경으로 한 대형 조형물과 해양 폐기물을 활용한 귀여운 정크 아트, 연홍도와 인근 섬 출신의 명사들을 그려넣은 실사적인 벽화들은 섬의 분위기를 동화적으로 만들 만큼 귀엽고 화사하다. 전시회와 이벤트도 꾸준히 이어진다.

ⓒ천소현굴렁쇠를 굴리는 아이들 조형물

그 덕분에 여행자들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가고 싶은 섬 연홍도’로 공식 개장 행사를 열었으며, 한 해 3000~4000명이던 연홍도 입도객이 월 3000~ 4000명으로 늘었다. 언덕 위에 마을 게스트하우스를 개장했고, 맛 깊은 젓갈류와 해조류 반찬을 곁들여내는 쫌벵이탕(쏨뱅이탕)과 백반을 먹을 수 있는 마을식당도 있다. 마을 유일의 식당이지만 마을 부녀회의 자존심으로 차려내는 밥상이라 소홀함이 없다. 국물을 한 숟갈 뜰 때마다 ‘시원하다~!’ 감탄사를 연발하던 여행자들이 만족한 얼굴로 마지막 배를 타고 멀어져갔다.

연홍도의 진가는 해가 질 무렵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석양이 장막처럼 내려와 낮 동안 반짝이던 조형물을 감추고 은빛 물고기 조형물마저 물속으로 가라앉고 나면 연홍도는 섬 본연의 맨얼굴로 돌아온다. 구석구석이 영롱해졌다. 소등만을 기다려온 별빛이 밤새 열과 오를 맞추어 춤을 추었다.

마음먹은 대로, 다음 날 아침 새벽안개를 거두며 좀바끝 방향으로 곰솔 숲 산책에 나섰다. 바람에 맞서느라 키가 크지 못했다는 300살 팽나무가 허리 숙여 말을 건네고, 마을 어귀에서 어미 옆에 바짝 붙어 선 송아지가 노란 유자 모양의 우사 앞에서 끔벅 눈인사를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사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빛나는 눈동자였다. 멀리 김이 무럭무럭 자라는 양식장 옆으로 어선이 동동동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천소현금당도 건너편 선착장
ⓒ천소현해양 폐기물 정크 아트

그 풍경을 관통하면서 여행자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것은 미학적인 감동이었다. 이제껏 바라봄의 대상이던 연홍도의 아름다움이 그 순간만은 손끝에서 만져지는 듯했다. 손가락 사이로 새나가는 아침 햇살을 착각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슬에 젖은 운동화를 털며 미술관으로 돌아와 매생이떡국을 먹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따끈한 국물을 만들어낸 사모님의 정성. 매생이떡국은 적당히 식힌 온도여서 더 온전히 혀끝에 전달되었다. 전날 타고 들어왔던 그 배로 섬을 떠나며 생각했다. 매생이 떡국이 알맞은 온도로 식어가는 시간, 딱 그 정도의 여유를 되찾기 위해 이 섬에 왔던 거라고.

ⓒ천소현프랑스 설치미술가 실뱅 페리에가 작업한 은빛물고기 조형물
ⓒ천소현섬 주민들의 가족사가 담긴 연홍 사진박물관

섬에 들어가는 방법

고흥 녹동신항 여객선터미널에서 금당행 배편이 1일 2회 연홍도를 경유한다(20분 소요). 신양선착장에서는 1일 7회 운항한다(5분 소요, 연홍호 선장/ 010-8585-0769).

마을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010-6644-8510). 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연홍식당이 마을 유일의 식당이다. 쫌벵이탕(2인) 3만원, 간재미회 무침(2인) 3만원, 백반(2인) 1만원 정도. 사전 예약 필수다(061-843 -0661).

섬에서 할 수 있는 일

연홍미술관에서는 상설전 외에도 연중 다양한 기획전이 열린다. 미술관 별채에서 숙소와 카페도 운영 중이다. 방이 여러 개라서 20여 명도 수용 가능하다. 캠핑을 원한다면 미리 허락받고 미술관 마당에서 텐트를 칠 수 있다. 연홍미술관 선호남 관장(010-7256-8855).

해안선 길이가 4㎞ 정도라 가벼운 마음으로 일주 트레킹을 할 수 있다. 최고 해발이 81m밖에 되지 않는 완만한 구릉인 데다 길도 복잡하지 않다. 도로 정비에 신경을 썼고 분기점마다 푯말도 잘 세워져 있다. 단, 벼랑 끝 구간은 유의할 것.

기자명 천소현 (여행 매거진 〈트래비〉 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