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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다가 ‘툭’ 하고 눈물이 흐른다

우효의 음악은 우울할 때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분이 좋을 때 들으면 슬퍼진다. 20대의 감각을 건드리는 매력이다.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5월 16일 목요일 제6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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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투사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그의 보컬이 좋았다. 목소리를 툭툭 내뱉는데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겼다. 무기력하다는 인상은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무심함에 가까웠다. 무심함은 곧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결여된 무언가가 사람을 매혹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궁금증이 발동해 EP 전체를 싹 찾아 들었다. 곡 제목은 ‘빈야드(Vineyard)’, EP는 <소녀감성>, 뮤지션은 우효였다.

‘소녀감성’이라는 타이틀처럼 전체적으로 풋풋했다. 아마추어리즘이 느껴지는 가운데 반짝반짝 재능이 빛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주목할 만한 신예임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소리를 오버하지 않는 선에서 효율적으로 다룰 줄 아는 점이 돋보였다. 이즈음부터였을 것이다. 우효라는 이름이 주변 곳곳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곧 터지겠구나’ 싶었다.

<소녀감성>으로부터 1년 뒤인 2015년 첫 정규작 <어드벤처>가 세상에 나왔다. 우효는 <어드벤처>가 20대 초반의 기억과 감정을 담아낸 앨범이라고 말했다. 곡들은 밝은 듯하면서도 슬프게 들렸고, 외로움을 슬그머니 드러내면서도 조심스럽게 희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이 음반을 한동안 끼고 살았다. 소리를 곱씹고 가사를 되새김질하면서 듣고 또 들었다. 우울할 때 들으면 기분이 제법 좋아졌고, 기분이 좋을 때 들으면 조금은 슬퍼졌다. 내가 생각하는 우효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문화인 제공
우효(아래)는 최근 두 번째 앨범 <성난 도시로부터 멀리>를 발표했다.

과연, 예상대로였다. 터져버렸다. 역사에 가정은 의미 없지만 지금은 없어진 <무한도전> 가요제에 출연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도 해봤다. 스타가 되는 건 이제 시간문제였다. 남은 건 딱 하나였다. ‘죽여주는 싱글’이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민들레’가 등장한 건 어쩌면 운명이었으리라. 나는 이 곡을 <어드벤처>의 수록곡들만큼 반복해서 듣지 않았다. 너무 자주 듣다가 지겨워지지는 않을까 걱정되어서였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다시 듣는 ‘민들레’는 감동적이다. 이 곡은 싱글 버전과 앨범 버전이 따로 존재한다. 혹 들어본 적 없다면 반드시 앨범 버전으로 감상하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이 곡이 2017년 최고의 사랑 노래 중 하나라고 확신한다. 특히 “사랑해요 그대/ 있는 모습 그대로”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후렴구와 그 뒤에 현악이 쭉 밀고 들어오는 순간을 애정한다. 또 앨범 버전의 마지막에서는 현악을 통해 곡의 여운을 더욱 길게 남긴다.

“그래도 괜찮아” 넌지시 던지는 위로

2019년 4월 두 번째 앨범 <성난 도시로부터 멀리>가 발표됐다. 몽환적인 사운드와 신시사이저 빌드-업으로 인상적인 순간을 길어 올리는 ‘나이브(Naive)’를 시작으로 첫 싱글 ‘테니스’를 거쳐 레게 리듬을 차용한
‘울고있을레게’에 이르기까지, 우효의 음악에는 변함없이 동시대(구체적으로는 20대)의 감각을 ‘툭’ 하고 건드리는 매력이 존재한다. 듣다가 갑자기 ‘툭’ 하고 눈물이 흘렀다는 독후감이 이어지는 이유다.

<성난 도시로부터 멀리>에서 우효는 섣불리 위로하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아”라고 넌지시 노래할 뿐이다. 그는 세계에 대한 질감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붙들고 더 나아가 그 개인의 감각을 음악이라는 공통어로 표현할 줄 안다. 작가 아즈마 히로키는 일본의 20대가 ‘끝없는 일상이라는 감각’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어차피 내 미래가 달라질 건 없는데…’ 싶은, 일종의 무기력증인 셈이다. 한국의 20대라고 해서 별다를 건 없다. 우효의 음악이 공감을 일으키는 이유 역시 어쩌면 이 감각에 가닿기 때문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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