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대신 욕망
김원영 지음, 푸른숲 펴냄

“내 머뭇거림은 여전하지만 사회는 변하고 있다.”

2010년 첫 책을 냈을 때 김원영 변호사는 ‘장애인을 거론할 때면 등장하는 희망의 서사들이 지겨웠다’.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자신의 욕망을 탐구하고 실현하기 위해 몰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함에 분노했다’. 그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었다. 당시의 책을 개정판으로 내며 제목을 바꾸고 내용을 보완했다.
똑같은 꿈도 중증장애인이 꾸면 욕심이 된다. 욕망은 덧없는 거라고 배웠다. 정말 그럴지라도 모든 걸 해본 뒤에 그렇다는 걸 깨닫고 경험할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 ‘네 주제에 남들 하는 대로 다 하고 살려고 욕심내면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온 사람에겐 욕망을 품어보는 일 자체가 저항이자 전복적인 행위라고 작가는 말한다.



우주적인 로봇적인
이유미 지음, 봄날의박씨 펴냄

“장르소설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게 도와주는 어엿한 나침반이 될 수도 있다.”

SF 소설은 출판계에서도 독자층이 얇은 편에 속한다. 낯선 장르로 여겨져서인지 SF 소설에 대한 비평도 활발하지 않다. 〈우주적인 로봇적인〉은 가뭄에 콩 나듯 등장하는 SF 소설에 대한 국내 유일의 ‘비평집’이다. SF 팬인 저자는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많은 것은 SF 소설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각 작품의 맥락에 비추어 저자의 삶 또는 저자가 보는 한국 사회를 반추한다. 가짜 뉴스를 접한 뒤 코니 윌리스의 〈화재감시원〉을 되새기고, 부끄러움에 ‘이불 속 하이킥’을 하게 만든 일을 떠올리며 존 스칼지의 〈유령여단〉을 생각하는 식이다. 작품은 저자를 통과하며 새로운 색깔을 낸다. 부제는 ‘SF 팬의 생활에세이스러운 SF 소설 리뷰’. 매끈하고 유머러스한 문장을 보다 보면 저자의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이 든다.



왜 제조업 르네상스인가
개리 피사노·윌리 시 지음, 고영훈 옮김, 지식노마드 펴냄

“제조업과 혁신은 동일한 ‘산업 공유지’를 공유한다.”

저자들은 2009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한 논문에서,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는 대기업들의 글로벌 아웃소싱으로 인한 산업 공유지의 황폐화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선진국들이 저부가가치 산업을 신흥국으로 넘기고 고부가가치 산업에 주력해야 번영할 수 있다는 당시의 통론에 정면 도전한 것이다. 국내에 제조 역량을 보전해야 혁신 역량까지 키울 수 있다는 견해이기도 하다. 그 이후 오바마 정부의 제조업 부흥 정책이 실시되었다. 저자들의 논문을 보완하고 대중적으로 해설한 책이 바로 〈왜 제조업 르네상스인가〉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리하게 여겨질 정도로 해외의 미국 기업들을 불러들이고 중국과 무역전쟁까지 도발한 배경을 알 수 있는 책이다.



레드 조앤
제니 루니 지음, 허진 옮김, 황금시간 펴냄

“아, 이런. 안 들키고 끝난 줄 알았지.”

2005년 93세의 나이로 숨진 멜리타 노우드는 옛 소련 비밀 첩보조직 KGB가 가장 아끼던 스파이였다. 체포 당시 87세였던 이 ‘할머니 스파이’를 이웃들은 검소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스파이 활동에 대한 물질적 대가를 받지 않았고,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살았으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저자는 멜리타 노우드를 다룬 기사들을 읽으며 강한 호기심과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멜리타 노우드의 실제 삶에서 ‘조앤’이라는 가상 인물을 창조해냈다. 멜리타 노우드와 조앤은 같고 또 다르다. 하지만 독자는 공통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스파이가 되었는지, 40년 가까이 잡히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지.

스타벅스화
유승호 지음, 따비 펴냄

“내면의 자유와 보호를 원하는 사람들이 궁여지책으로 찾는 곳이 스타벅스다.”

일본에서는 초등학생들이 “너희 동네에 스타벅스 있어?”라며 싸운단다. 하루 평균 50만명이 스타벅스를 찾는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의 경우 1997년부터 2013년까지 스타벅스 커피숍 주변 집값이 96%나 상승했다고 한다. 그렇게 스타벅스는 도시의 상징이 되었다.
〈스타벅스화〉는 대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욕망을 조금 다른 결로 분석한다. 개인을 중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소셜 미디어를 통해 관계 맺기에 몰입하는 모순된 욕망을 해소할 수 있는 곳이 스타벅스다. 심지어 저자는 취향을 중시하는 ‘스타벅스식 소비’가 새로운 자본주의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펼친다. 좀 더 일찍 나왔다면 꽤 흥미로운 저작이 될 뻔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존 바그 지음, 문희경 옮김, 청림출판 펴냄

“무의식은 벽이 아니라 문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대립은 마치 선과 악의 대립처럼 느껴지곤 한다. 의식은 좋은 것이다. 그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인간을 동물과 구분해주며, 도덕적이다. 무의식은 나쁜 것이다. 그것은 동물적 본성의 잔재이자 부도덕한 충동을 일으키는 원천이다.
무의식 연구를 이끄는 심리학자인 저자는, 바로 이 이분법을 깨트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무의식은 우리를 생존하고 더 잘 살도록 해주는 방향으로 진화한 도구다. 의식은 그런 무의식을 전략적으로 제어할 운전대로 진화한 도구다. 그러니까 이 둘은 원래 한 쌍으로 ‘진정한 자신’을 이룬다. 그러니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반드시 무의식을 이해해야 한다. 달의 뒷면을 탐사하듯 평소에 보지 못한 ‘나의 절반’을 탐사하는 흥미진진한 여정이 이 책에 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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