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전국 공장 등 사업장은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의 38%를 차지하고 있다. 전국에 분포된 오염물질 배출 굴뚝은 총 5만8000여 개. 이곳에서 배출되는 먼지, 황산화물(SOx), 질소산화물(NOx) 따위를 관리하는 것이 미세먼지 대책의 출발점이다. 지역별로 배출 총량을 규제하고, 사업체마다 오염물질 배출 저감 시설을 적극적으로 운용케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애초에 배출량 집계가 조작되고 왜곡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각 사업체가 신고한 것보다 훨씬 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했고,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지자체가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면?

4월17일 환경부와 영산강유역환경청의 수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여수산업단지(여수산단)에 위치한 LG화학, 한화케미칼 등 6개 대기업이 광주·전남 지역의 측정 대행업체 네 곳과 공모해 적어도 4년 이상 배출량을 조작했다. 이들 측정 대행업체 고객사는 총 235곳, 조작 및 허위 작성 건만 1만3000여 건에 이른다. 대표적으로 LG화학의 경우 염화비닐 등 유해성이 큰 특정대기유해물질 배출 허용 기준치를 15배 이상 초과했지만 이를 ‘이상 없음’으로 조작했다. 환경 당국은 이들 6개 대기업 외에도 31개 업체를 대상으로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일부 공장의 문제가 아니라 여수산단과 광주·전남 전체 사업장의 문제로 확대된 셈이다.

ⓒ연합뉴스4월22일 여수산업단지 공장장협의회가 미세먼지 배출량 조작과 관련해 사과문을 발표했다.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사업장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오염물질 배출량을 ‘자체 측정’해서 보고하게 되어 있다. 방법은 두 가지다. 먼저, 공장에서 직접 측정해 지자체에 신고하는 경우다. 24시간 실시간으로 오염물질 배출량을 측정할 수 있는 TMS(굴뚝 원격감시 체계, Telemonitoring Systems) 등이 활용된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TMS가 설치된 업체는 약 1% 수준인 630여 개에 불과하다. 대부분 사업장은 측정 대행업체에 업무를 위탁해 배출량을 보고한다. 배출량 측정을 대행해주는 업체는 전국 395개다. 이들 업체는 사람이 직접 굴뚝에 올라가 시료를 채취한 뒤 이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굴뚝의 오염물질 배출량을 측정한다. 문제는 배출 측정 대행업체를 각 배출 사업장이 직접 선택한다는 점이다. ‘갑’(배출 사업장)과 ‘을’(측정 대행업체)의 관계로 맺은 계약에서 을이 갑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운 구조다.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측정 시장이 열린 건 1980년대다. 당시만 해도 개별 사업체가 오염물질 배출량 측정에 관한 기술력을 보유하기가 어려워 외부 전문기관에 외주화할 수밖에 없었다. 측정 대행업계는 이후 대기·수질·소음진동·악취·실내공기질 등 5가지 분야로 분화했고, 분야별로 전문성을 가진 업체에 등록 허가를 내주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당초 업계는 정부가 고시하는 ‘표준 수수료 금액’을 기반으로 각 배출 사업장과 계약을 맺었지만 수수료를 일괄적으로 정해 고시하는 방식이 시장 경쟁 활성화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2007년에 폐지되었다. 국립환경과학원이 2016년 11월 발표한 보고서 〈자가 측정대행제도 신뢰성 확보 방안 마련〉은 “오염물질 배출업소의 저가입찰 우선 원칙으로 인해 수수료가 적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며, 측정 대행업체의 운영환경 개선을 위한 투자가 부족해 적절한 운영이 어렵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검사 장비가 낙후하거나 인력이 부족하더라도 이를 보충할 만한 공정거래 기틀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시사IN 조남진대기업과 공모해 미세먼지 배출량 측정값을 조작해온 광주광역시 소재 정우엔텍연구소 전경.
“누가 자격증 따서 굴뚝 오르겠나”

인력난도 심각하다. “요즘 누가 기사 자격증까지 따서 굴뚝 올라가려 하겠습니까?” 대기오염 측정 대행업체 사정에 밝은 한 전라남도청 관계자의 말이다. 대기환경기사 등 국가기술 자격을 보유해야 측정 업무를 대행할 수 있는데, 이 업무를 맡는 사람들마저 대기 측정 분야를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시료 채취 같은 업무는 기사 자격증이 없더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인력 운용의 허들을 낮춰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시민사회에서는 공적 영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갑을 관계’를 형성하는 직접계약 구조에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수산단 대기오염물질 배출농도 조작사건 진상조사단’의 실무를 맡고 있는 지현영 환경재단 미세먼지대응센터 국장은 “대기오염물질 배출업체와 측정 대행업체 간 직접계약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공단 등 제3자를 중간에 세우는 방식 등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환경부 관계자 역시 “제3자가 중간에서 완충지대가 되는 것 역시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관리·감독 체계에 대한 지적도 이어진다. 산업시설의 대기오염물질 배출관리 체계는 정책총괄을 맡은 환경부, 행정 집행을 맡은 지자체, 각종 지원 업무를 맡은 산하·소속 기관 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직접적으로 지역 사업장의 배출 현황을 관리하는 일은 지방자치단체가 전담한다. 그러나 지자체 차원에서 전문 인력이 모자라 측정 대행업체나 배출 사업장에 대한 면밀한 감시가 이뤄지기 어렵다. 지역별 환경 관리감독 권한이 지자체로 이양된 시기는 2013년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사범 적발률과 위법률 등이 2013년 이후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전라남도 관계자 역시 “배출 사업장과 측정 대행업체의 계약 상황 및 측정치를 검토하는 건 1년에 한 번 지도점검 때에나 가능하다. 배출 측정 시스템만 전담하는 직원은 없다”라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여수산단과 같은 일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펼쳐졌는지, 시스템 전반을 어떻게 교정할 것인지는 5월 중으로 예정된 정부 종합대책 발표에서 가늠할 수 있으리라 보인다. 현재 감사원이 전국 배출 대행업체에 대한 종합 감사를 벌이고 있으며, 환경부 역시 전수조사에 나선 상황이다. 감사 결과에 더해 범정부 차원의 대응책도 함께 발표할 예정이다. 환경부에서는 중대형 사업장의 TMS 부착 확대 등 기술적인 대응책을 강조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시장에 일임해둔 배출량 측정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할 것이냐다. 사업장의 기만행위를 원천봉쇄할 수 있는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모니터링 체계를 재설계하는 게 미세먼지 대책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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