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고(故) 권정생이 쓴 〈랑랑별 때때롱〉(보리 펴냄)은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2005년 12월 창간호부터 2007년 2월까지 연재되었다. 보리출판사의 윤은주 과장에 따르면, 작가는 “지난 세월이 배경이 되는 이야기 말고, ‘요즘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동화를 쓰고 싶어했다”.

한 달 연재 분량은 원고지 25장. 건강이 좋지 않아 원고 마감을 힘들어했다고 한다. 원고지 한 장을 쓰고 나서는 몸이 아파 한두 시간 정도 누웠다가 일어나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글을 다 쓰면 우체국으로 가서 ‘꼭 두 번 접은’ 원고를 출판사로 부쳤다. 작품은 15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그리고 연재를 마친 3개월 뒤, 2007년 5월 권정생은 세상을 떠났다. 동화작가 김중미씨는 “권정생 선생님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동화작가 김지은씨의 평처럼, ‘지구별에 사는 새달이·마달이 형제가 과학만능 시대를 구가했던 랑랑별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로 기계와 기술이 대신할 수 없는 생명의 섭리를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랑랑별의 형제 때때롱·매매롱을 만난 이들은 함께 ‘500년 전 랑랑별’로 거슬러 올라간다. 500년 전 랑랑별은 로봇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몸 쓸 일을 잃어버린 사회였다. 과학기술이 만개해 아이들이 ‘좋은 유전자만 골라다가 맞춰서 만든 맞춤 인간’으로 태어나지만, 이 아이들은 ‘웃을 줄도 모르고 울 줄도 모르고 화낼 줄도 모른다’. 랑랑별 사람들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과거(과학 문명)와 이별했다.

권정생은 이 책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썼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복제 동물은 엄마 아빠가 없습니다. 세상에 엄마 아빠가 없는 동물을 왜 만들까요? 태어나면서 고아로 외롭게 자라야 하는 동물들의 마음을 생각해보세요.’ 간결하지만 사려 깊고 울림이 큰 말이다. 판타지와 전래동화와 현실이 촘촘하게 교직하는 이 동화는 생명의 질서를 거스르는 과학 문명을 비판하고, 자연 속에서 소박하고 따뜻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백한 문장으로 그려낸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과학과 속도’에 자연스레 몸을 맡긴 우리 자신에 대해 되묻게 된다. 우리는 행복한가? 그리고 우리는 점점 행복해지고 있는가?

작가가 그려낸 등장인물 새달이 형제와 때때롱 형제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에 작가가 불어넣은 따뜻한 유머를 발견하는 일은 즐겁다. 마달이가 랑랑별의 매매롱을 놀려주기 위해 방귀 뀌는 흉내를 하루에 오백스물세 번 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아동문학 평론가 원종찬씨는 추천사에서 “일제 식민지 시대 작가 현덕의 〈노마네 아이들〉 이후로, 천진한 아이들 모습이 이처럼 또렷하게 그려진 예는 달리 없다”라고 썼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정갈한 작가의 문장은 소리 내어 읽어보면 말의 재미와 문장의 리듬감이 살아난다. 잡지에 연재할 당시, 아직 한글을 모르거나 장편이라는 분량 때문에 책 읽기를 버거워했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에게 이 동화를 읽어주는 부모가 많았다는 편집자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권정생의 담백한 문장과 〈페르세폴리스〉 같은 흑백 실루엣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작가 정승희의 그림이 잘 어울린다. 평론가 원종찬은 “강아지 흰둥이의 꼬리를 누렁이 소가 물고, 새달이와 마달이는 누렁이 꼬리를 꼭 붙들고, 개구리와 물고기들은 누렁이 몸에 붙어 랑랑별로 올라가는 대목’을 ‘동심과 해학과 환상이 한데 어우러져 숨을 쉬는, 우리 동화가 그려낸 영원히 잊히지 않을 명장면”이라고 평가했다.


단행본과 연재본이 달라진 까닭은?

올해 출간된 단행본은 두어 해 전 잡지에 연재될 당시와 달라진 대목이 있다. 연재본에서는 랑랑별 할머니가 죽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단행본에서는 그렇지 않다. 편집을 맡은 윤은주 과장은 “권정생 선생님이 단행본 머리말을 보내면서 ‘내가 왜 할머니가 죽는 것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할머니가 씩씩하게 살아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전해왔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선생님이 돌아가셔 마음이 찡했다”라고 말했다.

권정생은 유언장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평생 다섯 평짜리 오두막집에서 아픈 몸으로 혼자 살았던 작가는 그렇게 랑랑별과 가까운 어떤 곳으로 떠나갔다. ‘권정생’을 벌써 그리운 이름으로 남긴 채.

추천에 참여해주신 분:김병규(동화작가) 김중미(동화작가) 김지은(동화작가) 원종찬(아동문학 평론가) 임숙자(어린이 도서관 맨발동무 관장) 조대연(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 편집장) 조은숙(아동문학 평론가).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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