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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목욕탕에는 기생충이 많았다?

위민복 (외교관)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5월 09일 목요일 제6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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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시절 대중목욕탕은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곤 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의 목욕탕 시스템을 극찬한다. 사실 씻어서 나쁠 건 없다. 무엇보다 청결함은 건강과도 직결된다. 씻으면 ‘새 몸’이 된다는데 나쁠 것 없지 않나. ‘정말로 그럴까’ 연구하는 것이야말로 연구자 혹은 학자의 도리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고고학·인류학 팀은 로마 유적·유물을 토대로 연구를 했다.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은 케임브리지 대학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데(‘Human parasites in the Roman World:health consequences of conquering an empire’를 검색하면 PDF 파일로 볼 수도 있다), 결론부터 알려드리겠다. ‘로마 목욕탕이 공중보건을 개선했다는 증거가 없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목욕탕 자체의 문제와 당시 위생법 때문에 생겨난 부작용, 그리고 당대 로마인들의 식습관이다.

따뜻한 물을 자주 교체할 기술 없었다
ⓒEPA
영국 바스의 로마 시대 목욕탕.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목욕탕 자체의 문제부터 보자. 목욕탕 하면 따뜻한 물이 자동 연상되기 마련이다. 로마의 목욕탕은 이 따뜻한 물을 기술상의 문제로 제때 그리고 자주 교체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노폐물이 목욕물 안에 남게 됐다. 이 때문에 목욕탕은 깨끗한 물이 아니라 오히려 온갖 병균과 편충·선충 등 기생충의 안식처일 공산이 컸다. 목욕을 자주 한다는 로마인이라고 해도 목욕을 안 하기로 유명했던 바이킹이나 중세 유럽인과 비교해보면 기생충이 더 적지는 않았다.

또 로마는 공중화장실을 의무화하고 길거리에 인분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등의 법규를 시행했다. 물론 보기에는 좋았을 테다. 문제는 로마가 당시 사용하던 농업기술에 있었다. 로마는 인분을 비료로 썼다. 인분을 수개월 충분히 묵혀 사용했으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로마인들은 인분을 ‘그대로’ 비료로 썼다. 즉, 아직 인분 안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기생충 알이 농작물에 그대로 묻어 있었다.

농업기술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로마인들의 식습관에도 문제가 있었다. 로마인들이 사랑한 조미료는 가룸(garum)이다. 가룸은 우리의 액젓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생선에 허브, 소금, 향신료를 버무려서 만든다. 가룸을 만드는 데 사용한 생선 역시 익힌다거나 별도의 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로마인들은 이 가룸을 워낙 좋아해 제국 전역에 유통시켜서 먹곤 했다. 로마가 정복하기 이전만 해도 ‘물고기 촌충’에 대한 기록조차 없던 유럽에서는 이후 시체를 통해 물고기 촌충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가룸이 별로 좋지 않은 식재료임을 당대 로마인들이 모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이자 네로 황제의 스승으로 유명한 세네카가 친구인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서간집(The Letters of Seneca)>에 보면, 가룸을 두고 ‘썩은 고기로 만든 값비싼 썩은 조미료’라 혹평한 기록이 나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마인들은 가룸을 매우 사랑했고, 그 결과 촌충 발생 지역은 로마제국의 강역과 대체로 일치했다.

다시 목욕탕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로마제국의 목욕탕은 목욕과 식사, 여가를 한꺼번에 즐기는 소셜 네트워크 구실도 감당해왔다. 그리고 로마가 멸망한 이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목욕탕이 사라진 실질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 로마제국 안으로 들어온 게르만족은 로마제국 목욕탕이 사용하는 복잡다단한 상하수도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며 로마인들도 목욕탕이 전염병이나 기생충에 별 효과가 없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물론 목욕이 사람 몸에서 나는 냄새는 ‘조금’ 줄여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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