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전문지 격월간 〈녹색평론〉의 100호 발간을 기념해 나온 〈땅의 옹호〉(녹색평론사)는 이 잡지의 발행·편집인인 김종철이 지난 10여 년 동안 쓴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땅의 옹호’라는 제목과 ‘공생공락(共生共樂)의 (가난한) 삶을 위하여’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배타적인 탐욕과 약자에 대한 착취 없이는 한순간도 존속할 수 없는 근대적 삶의 방식을 뛰어넘어 오랜 세월 ‘대지에 뿌리박고’ 살아온 사람들의 공생의 지혜로 돌아가자”라는 저자의 일관된 소신이 담겨 있다.

장성익 계간 〈환경과생명〉 주간은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흙의 문화’ ‘자율과 자치’ ‘농적(農的) 순환사회’ ‘진보가 아닌 개안(開眼)’이 필요하다고 절절히 호소한다. 물신과 경제 지상주의의 노예로 전락한 우리 시대의 뒤통수를 내려치는 준열한 경고이자, 주류 세태와는 전혀 다른 전복적인 행복 안내서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라고 〈땅의 옹호〉를 ‘옹호’한 이유를 밝혔다.

주류 세태에 반하는 전복적 행복 안내서

강양구 프레시안 사회팀장은 “생명, 생태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근간인 ‘땅’에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는 환경운동가들도 마찬가지인데, 그 점에서 김종철의 존재는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이 책을 읽으면 저자가 얼마나 ‘철저히 비타협적 자세’를 견지해왔는지 알 수 있다. 현실의 유력한 세력, 담론 중에 그의 편은 그 어디에도 있어 보이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경제)성장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정당론, 녹색정당론, 사민주의 복지국가론 모두 저자의 비판 대상이다.

잘 알려진 대로 최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성장론’을 놓고 논쟁을 벌인 바 있는 그는, 심지어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에게도 쓴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리 전 교수가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을 보고 ‘서구 물질문명에 감탄’한 것을 겨냥해 “오랫동안 젊은 세대의 사상적 스승이었지만, 이제 변화된 상황에서 리영희식 사고방식과 철학으로는 더이상 우리의 핵심적인 시대적 과제에 대응하는 것이 미흡하지 않을까”라고 문제 제기를 한다.

ⓒ시사IN 안희태
김종철(위)은 최근 “요즘에는 개인의 각성보다 연대와 우정에 관심이 더 간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저자 역시 자신과 〈녹색평론〉이 서 있는 위치를 모르지 않는다. ‘아직은 이 사회에서 변두리 언어’이자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임을 인정한다. “조금이라도 다른 야심이 있는 지식인이라면 참여하기 쉽지 않다”라며 ‘잘못하면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리나 듣게 될 것’이라는 말도 한다.

현실도 그렇다. 〈녹색평론〉 창간(1991년) 이후 지난 17년간 쉼없이 ‘소농과 그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생태적 순환사회’에 대한 지향을 설득해왔지만 저자 스스로 밝힌 대로 “(세상은) 본질적으로 조금도 변하지 않았거나 질적으로 더 열악해졌고, 근대의 어둠은 훨씬 더 깊어졌다”. 그럼 어쩔 것인가? 저자도 묻는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우리가 믿을 데는 정말 ‘기적’밖에 없는가?”

그럼에도 김종철은 이야기를 닫을 생각이 전혀 없다. ‘인류에 닥친 제일 근본적이고 긴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농산물 직거래운동을 포함한 생활협동조합 운동, 지역화폐 운동, 이자 없는 은행,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 대안학교, 에너지 자립운동 등 구체적 대안도 제시한다. 때로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혁명보다야 훨씬 쉽다”(〈시사IN〉 제35호 인터뷰 참조)라는 낙관도 전파한다.


우정과 환대에 기초한 공동체

하지만 저자가 더욱 더 강조하는 것은 ‘우정’과 ‘환대’에 기초한 어떤 삶의 자세다. 그는 머리말에서 ‘우정’에 대해 “지금 세계를 황폐화하는 자본과 국가의 논리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자 “아무리 암울한 시대일지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희망’을 제공하는 원천”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채식 전문 뷔페에 가서 각자 좋은 음식을 골라 먹는 것보다, 라면을 먹을지언정 여럿이 둘러앉아 함께 나눠 먹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결코 우리에게 어떤 특별한 실천을 제안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가까이 있는 이웃, 친구들과 사심 없이 우정을 나누고 서로 보살피며 살라고 말한다.
‘주변’을 돌아보자. 이 쉽디 쉬운(?) 삶을 ‘내’가 과연 살아가고 있는지.

추천에 참여해주신 분:강양구(프레시안 사회팀장) 고중숙(순천대 교수·과학환경교육학부) 김국현(IT 평론가) 이강준(에너지정치센터 기획실장) 이억주(어린이과학동아 편집장) 장성익(계간 환경과생명 주간) 최규홍(연세대 교수·천문우주학) 표정훈(출판 평론가).

기자명 고동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intered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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