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6일 베를린을 비롯한 독일 여러 대도시에서 주택 임차료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임차료 상승과 주택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다양한 시민모임이 연대해 진행한 이번 시위는 베를린에서만 주최 측 추산 4만여 명이 참여했다. 전국적으로는 5만여 명이 거리 시위에 나섰다.

특히 베를린에서 진행되는 ‘도이체보넨 국유화’라는 이름의 시민청원 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도이체보넨은 베를린에서 가장 많은 주택을 보유한 부동산 임대 회사이다. 이 회사를 비롯해 주택 3000가구 이상을 보유한 거대 임대 업체가 소유한 주택을 공공화하기 위한 운동이다.

베를린 시민청원 운동은 독일 기본법 제14조에 근거한다. 이에 따르면 토지, 자연물, 생산수단은 공유화를 목적으로 적법한 보상에 의해 공동재산이나 다른 공유경제 형태로 바꿀 수 있다. 시민청원 운동 주최 측은 “독일 기본법이 사유재산뿐 아니라 공유경제에 대해서도 명시하고 있는데, 국유화에 대한 논의가 단 한 번도 없었다. 베를린 시가 통일 이후 공공재산을 빠르게 사유화한 게 지금의 주택 문제를 초래했다”라고 주장한다.

ⓒAP Photo4월6일 베를린 시민들이 ‘주거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간지 〈슈피겔〉 보도에 따르면 베를린을 포함한 독일 7대 도시에서 집을 새로 구하는 사람은 2010년에 비해 40% 이상 높은 집세를 내야 한다. 그중에서도 베를린의 주택 문제는 심각하다. 2018년 베를린에서 60~80㎡ 크기의 집을 빌린 사람은 2008년보다 88.7% 상승한 집세(임차료)를 부담해야 한다. 한 경제학자는 인터뷰에서 “이대로 가면 도시 중심부에는 수입이 높은 중상류 계층의 사람들만 살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도이체보넨 등 베를린의 대형 부동산 임대 회사들은 주택 20만 가구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통일 이후 사유화된 공공주택을 대거 매입했고, 계속해서 주택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동독 시절 건설된 사회주의 주택을 상징하는 카를마르크스 대로의 부동산을 구입해 세입자들과 분쟁을 겪기도 했다. 부동산 임대 회사들은 보유한 주택을 리모델링한 뒤 집세를 올려 받고 있다. 도이체보넨의 주식 가격은 최근 5년간 216% 상승했다.

정당별로 갈리는 정치권 반응

베를린 시는 사회민주당(사민당)·좌파당·녹색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데, 좌파당만 적극적으로 이번 청원운동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독일 연방의회 차원에서도 사민당은 조심스럽게 이번 운동과 거리를 두고 있다. 보수 정당인 기독사회당(기사당)·기독민주당(기민당) 연합과 자유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은 청원운동에 부정적이다. 건설주거위원회 소속인 기민당의 카이 베그너 의원은 “우리에게는 더 많은 집이 필요하며 국유화는 돈만 많이 들 뿐이다”라고 밝혔다. 반면 로베르트 하베크 녹색당 공동대표는 이번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시민청원을 하려면 6개월 내에 2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이후 4개월 동안 17만명 이상의 서명을 더 받으면 시민투표가 실시된다. 시민청원 운동 주최 측은 “청원을 시작한 4월6일 1만5000명이 서명을 마쳤다”라고 밝혔다.

기자명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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