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조현병 공포' 사태만 악화시킨다

조현병이라는 사회적 낙인은 대다수 정신질환자를 준범죄자 신분으로 만든다. 환자들로 하여금 치료를 거부하게 만들고, 경우에 따라 베르테르 효과처럼 유사범죄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5월 08일 수요일 제607호
댓글 0
조현병은 인식 및 사고의 왜곡을 동반하는 정신질환의 한 종류이다. 조현병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폭행, 방화, 살인을 일으키는 강력범죄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조현병 같은 중증 정신질환이 있다고 하더라도 강력범죄를 일으키기까지는 직간접적인 요인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아파트 방화 살인사건’에서도 그런 언급은 보기 힘들다. 기사마다 정신질환자를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는 댓글이 넘쳐난다. 이쯤 되면 ‘조현병 공포증’이라고 할 만하다.

일부 전문가는 조현병 환자가 갑작스러운 증상 악화로 인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물론 환청이나 망상 때문에 판단이 왜곡되면서 폭력성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 공격적인 명령형 환청이 있거나 피해망상이 있는 경우에 이러한 위험성은 커질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조현병 자체를 사회에서 격리해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강력범죄를 저지를 정도로 심한 증상은 조현병 초기부터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여러 징후가 나타난다. 심각한 인지왜곡이나 망상이 동반되더라도 대부분 치료를 통해 조절할 수 있다. 자연스레 치료를 받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악화된다. 즉, 조현병 자체가 위험한 게 아니라 치료받지 않고 방치된 조현병의 증상이 위험한 것이다.

ⓒ연합뉴스
4월17일 살인사건이 벌어진 한 아파트 방화 현장을 주민들이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조현병 유병률은 전 세계적으로 0.5~ 1% 정도다. 그만큼 드물지 않은 질병이다. 한국에서 조현병을 포함한 중증 정신질환자의 수는 대략 50만명으로 추정된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우리는 주변에서 중증 정신질환자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대부분의 중증 정신질환자는 강력범죄와 관련이 있다기보다 지원과 배려가 필요한 사회적 약자다. 통계적으로도 조현병 환자의 전체 범죄율은 일반 인구 대비 현저히 낮다. 조현병 환자의 전체 범죄 중 강력범죄 비율은 일반인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지만, 강력범죄율 자체는 조현병 환자 대비 일반인에게서 오히려 높게 나타난다. 조현병 환자라고 해서 돌발적인 폭력을 일으키는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중증 정신질환의 치료 및 관리체계의 허점도 짚지 않을 수 없다. 2017년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되면서 정신질환자의 ‘비자의 입원(강제입원)’ 요건이 이전보다 강화되었다. 시행 초기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는 입원 기준 강화가 중증 정신질환자의 대규모 퇴원으로 이어져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실제로 ‘퇴원대란’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일부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중증 정신질환자가 퇴원한 사례도 있었다. 행정적으로 과도하게 복잡해진 입원 절차, 보호의무자라는 이름으로 가족에게 전가되어 있는 입원제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공립 정신보건 입원시설,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환경임에도 추진되는 탈원화 정책…. 풀어야 할 숙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국가적 관리체계에서 치료권과 인권에 대한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중증 정신질환에서 좀 더 적극적인 치료 및 관리를 주장하는 견해가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제도가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악화시킨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법입원 및 외래치료명령제 등을 포한한 정신건강복지법 재개정 법안이 국회에서 제안되었지만 이해 갈등으로 인해 논의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신질환자를 범죄자 취급하는 언론 보도는 환자들의 치료권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국 언론이 정신질환명 안 쓰는 이유

최근 사건에서 교훈을 얻을 수는 없을까.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환자가 적시에 적합한 치료를 받으면서 차별 없이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 마련은 왜 이렇게 더딜까. 이런 와중에 언론은 조현병과 강력범죄를 엮어 자극적으로 쏟아낸다. 기사 제목에는 정신질환의 진단명과 범죄사실이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제시된다. 범죄와 정신질환의 연관성에 대한 전문가 의견이나 해당 정신질환이 어느 정도 관리되고 있었는지에 관한 정보는 부족하다. 그 결과 중증 정신질환에 대한 대중의 불안 심리는 더 높아진다.

관련된 사건사고 보도가 많아지면 실제보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증가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정신질환과 관련된 사회적 편견을 낙인(stigma)이라고 한다. 사회적 낙인은 대다수의 ‘그렇지 않은’ 정신질환자를 준범죄자 신분으로 만든다. 이러한 사회적 낙인은 정신질환자들을 더 억압하거나 격리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환자들로 하여금 오히려 치료 관리를 거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신질환자를 범죄자 취급하는 언론 보도는 정신질환자의 치료권 강화나 인권을 향상시키는 데 모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낙인을 강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베르테르 효과처럼 유사범죄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미국·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등 주요 국가에서는 정신질환 관련 사건사고에 대한 보도지침을 국가기관 및 기자협회 등에서 제정하고 공표한다. 기사 제목에 정신질환 진단명을 사용하지 않고, 정신질환 자체가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처럼 보도하는 것을 삼가며, 자극적인 기사 문구나 혐오스러운 사진을 피하고,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기사에 포함하도록 권고한다. 한국에서는 자살사건 관련 가이드라인이 기자협회에서 공표되어 있지만 정신질환 관련 사건사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아직 없다. 언론의 보도 방향이 왜곡되면 대중의 인식도 왜곡되고 결국 그 피해는 정신장애인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돌아온다는 점을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한다.

끔찍한 사건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사건의 배경에는 여러 직간접적이고 현실적인 요인들이 합쳐져서 영향을 끼친다. 물론 정신질환도 그 요인들로 언급될 수 있다. 그리고 정신질환자가 그 사건의 가해자로 다시 거론될 수 있다. 이제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중증 정신질환이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면 왜 치료와 관리가 되지 않았는지, 제도의 사각지대가 없었는지, 환자가 치료 환경을 꺼리게 되는 문제 요인은 없는지에 대해 물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제도를 보완할 때 추가적인 사건사고 역시 예방할 수 있다. 그 과정이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줄이는 가장 정확한 길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