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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방화 살인 사건 현장을 다시 가보니...

진주 살인사건이 벌어진 아파트의 주민들은 치안을 책임진 공권력의 부재에 분노하며 불안해한다. 주민들은 끔찍한 범죄를 경고하는 알람을 여러 차례 울렸으나 경찰의 대응은 미흡했다.

진주·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2019년 05월 07일 화요일 제6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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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달차 두 대가 아파트 주차장에 나란히 섰다. 이삿짐 앞에서 금 아무개씨는 발을 동동 굴렀다. “다시 오기 너무 싫은데, 빨리 떠나야 되는데···.” 금씨는 아파트 출입구를 바라볼 수 없다는 듯 멀찍이 떨어져 몸을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이 출입구는 30×동 아파트 입주민 80세대가 주차장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금씨가 신음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여기서는 못 살아요.”

4월17일,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이 아파트 30×동 40×호에 살던 피의자 안인득씨는 새벽 4시25분께 자신의 집에 불을 질렀다. 화재경보음 소리에 곤히 자던 주민들이 집밖으로 뛰쳐나왔다. 안씨는 1~4층을 오르내리며 중앙 계단을 통해 대피하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곧 범인을 제압했지만 그사이 안씨의 칼에 찔려 5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11명 가운데 20대인 관리사무소 직원을 제외하면 공격당한 이들은 모두 노인·어린이·장애인·여성이었다.

ⓒ시사IN 이명익
살인사건이 발생한 진주시 한 아파트의 첫 방화 현장. 곳곳에 검게 탄 흔적이 있다.
ⓒ연합뉴스
살인사건 피의자 안인득.
금씨의 어머니 김 아무개씨(64)도 이날 목숨을 잃었다. 같은 아파트 4층에 살던 오빠네 가족도 무사하지 못했다. 초등학생인 조카 금 아무개양(11)이 숨지고, 새언니 차 아무개씨는 동맥혈 두 곳이 절단되는 부상을 당했다. 같은 층 주민들에게 화재 사실을 알리느라 뒤늦게 대피한 오빠는 1층 계단과 입구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가족들을 발견해야 했다. 4월23일 장례를 치른 금씨 가족은 다음 날 곧바로 이삿짐을 꾸렸다. 금씨는 “오빠네도 오늘 이사 간다”라고 말했다.

금씨 가족이 살던 이 아파트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임대주택으로 9개 동에 750여 가구가 산다. 지난해 전국 임대아파트 가운데 ‘살기 좋은 아파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사건 이후 경상남도지방경찰청에서 파견된 기동대가 24시간 단지 내부를 순찰하고 있다. 세대별 우편함에는 경남도 광역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진주시보건소가 단지 내 작은 도서관에서 현장 이동 심리상담센터를 운영 중이라는 안내문이 꽂혀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30×동에는 인부들이 페인트칠을 하고 출입문 앞 보도블록을 교체하며 부지런히 참사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아파트 주민이 경찰에 안씨를 처음 신고한 건 지난해 9월이었다. 신고자는 50×호 주민 강 아무개씨로, 안씨가 자신의 현관문 앞에 인분과 오물을 투척했다는 내용이었다. 50×호는 안씨가 사는 집 바로 윗집이다. 4월17일 숨진 희생자 가운데 한 명이 이 집에 살던 최 아무개양(18)이다. 최양은 10여 년 전 부모의 이혼 이후 큰어머니와 지냈다. 최양의 오빠 최고건씨(24)는 “동생이 뇌병변으로 몸의 오른쪽 부위를 거의 쓰지 못했다. 큰어머니가 정성을 다해 돌봐주셨다. 시각장애가 있는데 시력도 많이 좋아졌다”라고 말했다. 큰어머니 강씨 역시 크게 다쳐 긴급 수술을 네 차례 받았다.

ⓒ시사IN 김연희
참혹한 사건을 겪은 뒤 주민 일부는 이삿짐을 꾸려 아파트를 떠났다.
강씨는 경찰에 안씨를 다섯 차례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이 “증거가 필요하다”라면서 그냥 돌아가는 일이 반복되자 올해 3월 직접 CCTV를 설치했다. 이 CCTV를 통해 3월12일 안씨에게 쫓겨 겁에 질린 최양이 황급히 집 안으로 들어가고, 안씨가 50×호를 향해 간장과 식초를 섞은 오물을 투척하는 장면이 찍혔다. 경찰은 그제야 안씨를 재물손괴죄로 입건하고 4월10일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강씨의 집 현관 앞에는 소형 CCTV가 여전히 달려 있었다. 안씨가 뿌린 오물 자국인 듯 CCTV에는 시커먼 액체가 말라붙어 있었다. 50×호 우편함에는 3월12일 접수된 사건이 검찰에 송치됐음을 알리는 진주경찰서 우편물이 남아 있었다. 최양의 유가족은 4월21일 ‘개양파출소와 경찰의 명백한 책임 인정과 진심 어린 사과문 발표를 청원한다’라는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다. 강씨의 딸이며 최양의 사촌언니인 청원인은 “수차례 파출소에 신고했으나 짜증 섞인 말투로 귀찮다는 듯 접수도 하지 않고 어설픈 현장 마무리로 피해자를 방치했다. 위협을 받은 신고자에게 그 살인자와 화해를 유도했다. ‘이 아파트 얼마냐, 들어가는 자격이 어찌되느냐’는 등 피해자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라고 주장했다. 최양의 오빠 최고건씨도 “경찰이 큰어머니한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 ‘식당일을 한다’고 답했더니 ‘식당 아줌마’라면서 무시하는 식으로 굴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경찰은 안인득 관련 신고에 대해 ‘사소한 시비였다. 증거가 없었다’고 말한다. 끔찍한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경찰이 있는 거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시사IN 김연희
4월21일 참사가 일어난 아파트 출입구에 하얀 국화가 놓여 있다.
ⓒ시사IN 이명익
고인의 명복을 비는 현수막(아래)은 4월24일 다른 현수막으로 교체됐다.
안인득에게 폭행당한 자활센터 직원 ‘사직’


시간이 지나며 다른 주민들도 안씨의 기행을 알게 됐다. 4월2일 안인득씨는 자신의 집 베란다에 서서 지나가는 주민들을 향해 큰 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그와 50×호의 갈등을 알고 있던 아파트 관리소장 장경만씨는 이날 안씨를 직접 찾아갔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위층에서 벌레를 뿌리는데 관리사무소에서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 지금도 발코니로 벌레가 내려오고 있는데 안 보이느냐고 하더라.”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여긴 장씨는 안씨의 가족을 찾으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입주 기록에는 본인 연락처만 나왔다. 경찰에도 문의했지만 조회할 수 없다고 했다.

1월에는 폭행사건도 있었다. 안인득씨는 1월17일 진주시의 한 자활센터를 찾아가 직원 2명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지난해 12월 자활센터에 상담을 하러 갔을 때 여성 직원 한 명이 커피를 타줬는데, 그 커피를 마시고 난 이후에 부스럼이 나고 몸이 이상해졌다는 이유에서였다. 안씨는 이 일로 벌금 300만원을 받았다. 자활센터 직원들은 안씨에 대해 말을 아꼈다. 센터 관계자는 “커피를 타줬던 여성 직원을 안씨가 다짜고짜 공격했다. 말리는 과정에서 남성 직원 한 명이 다쳤다. 직접 폭행을 당한 그 직원은 센터를 그만뒀다. 트라우마로 힘들어해 상담 등 지원 방법을 찾는 중이다. 우리 센터 직원이 100명가량 되는데 그 일로 모두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12월 상담센터 방문 이후 자활센터에서는 사업 가운데 어떤 활동이 안씨에게 적합한지를 맞춰보는 중이었다.

폭행, 오물 투척, 스토킹, 주민과 시비 등 지난해 9월부터 안인득씨에 대한 경찰 신고 건수만 모두 8건이다. 끔찍한 범죄를 경고하는 일종의 알람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경미한 시비 소란”이라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4월17일 경찰은 “지금처럼 중한 사항이 아니면 정신 병력에 대해 조사하지 않는다. 3월12일 재물손괴 사건(50×호 오물 투척)은 형사적으로 봤을 때 (직접적 피해가 아니라) 감정을 상하게 하는 유형이다. 형사 입건은 되지만 구속 요건은 안 된다”라고 말했다.

방화 살인사건으로 5명이 목숨을 잃은 뒤에야, 범인이 과거 흉기 위협 사건에서 심신 미약으로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으며, 조현증 치료를 했지만 2016년 이후 진료를 중단한 채 병을 키웠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안씨의 진료 기록을 확인하고 정신병원에 최대 72시간 입원시키는 긴급입원 조치를 취할 수 있었지만, 현실에서 그 제도는 작동하지 않았다. 즉 조현병 자체가 위험하다기보다, 안씨가 치료받지 않고 방치된 채 조현병 증상이 악화된 게 사건의 원인이었다.

4월25일 경찰은 “범행 동기는 피해망상이며, 한 달 전 흉기 두 자루를 미리 구매하는 등 계획범죄로 보인다”라고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한 뒤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경남지방경찰청은 안씨와 관련해 들어온 신고를 진주경찰서와 관할 파출소가 적절하게 대응했는지 조사 중이다.

4월23일 아파트 의류수거함 앞에서 만난 한 70대 주민은 기자와 눈이 마주치자 멋쩍게 웃었다. 그는 자신이 의류함에 넣은 옷이 바닥에 떨어져 쿵 소리가 나자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참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30×동 아파트 8층에 사는 그는 그날 오전에 이동 심리상담센터에 다녀왔다고 했다. “이 아파트가 지어진 2005년부터 살았는데 겁이 나서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 함께 사는 아들이 주간 근무일 때는 밤에 집에서 잠을 자고, 야간 근무할 때는 동생네 가서 잔다.” 그는 30×동과 30×동이 보이는 곳에서 살 수 없어서 LH에 이주를 신청했다.

사건 이후 30×동 주민 30가구를 상담한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 아무개씨는 “조현병에 대해 묻는 주민은 한 명도 없었다”라고 했다. “주민들은 이 사건을 이렇게 본다. ‘우리 동네에 이상한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을 신고했는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피해를 당하게 됐다.’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의 근원은 조현병이 아니라 나를 지켜줄 공권력의 부재이다.”

4월24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현수막이 있던 자리에 새 현수막이 붙었다. ‘빠른 쾌유를 빕니다.’ 한 주민이 “관리소장님 나와보라”며 큰 소리를 냈다. “죽은 사람들 어제 발인했다. 다친 사람들 가족 중에 죽은 사람도 있다. 엄마가 초등학생 딸 발인에서 환자복 입고 소리 지르는데, 쾌유를 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주민 항의에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현수막을 뗐다. 앞에 있던 화분도 다른 곳으로 옮겼다. 희생자를 추모하던 자리는 사건 발생 일주일 만에 깨끗하게 치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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