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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를 하면 나아질까

고교 3년간 쌓아놓은 것이 거의 없는 재수생은 과거에 대한 후회,
자기 능력에 대한 의심, 부모가 실망하리라는 공포 속에서 허우적댄다.
한번 더 하면 부모의 기대에 가까이 갈 수 있을까 고민하며 지쳐간다.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5월 09일 목요일 제6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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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상담 주간을 앞두고 유난히 불안에 떠는 수강생이 있었다. 정작 심란해야 할 녀석들은 천하태평이건만, 공부를 못해도 성실히 제 과정을 밟던 그 아이는 마음을 못 잡고 있었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이면 수강생들은 텅 빈 시간을 견뎌야 한다. 대입 학원에서는 친구와 잡담, 외출, 전자기기 사용 따위의 행동을 금지한다. 그 아이는 몇 시간이고 문제집 한 쪽을 풀지 못했다. 답도 안 나올 고민을 눈덩이처럼 불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부모가 학원에 오는 것을 저렇게 두려워하는 아이가 제 발로 담임 강사를 찾아올 리는 없었다. 상담은 주변 어른들이 자신을 도우려고 시간을 내는 일인데, 그것을 위협적으로 느끼는 수강생이라면 부모와 문제가 있을 터였다. 재수생치고 부모와 원만한 이가 몇이나 되겠느냐만, 평소 생활이 엉망인 것도 아닌데 엄마가 학원 상담 신청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겁에 질리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교사나 강사와 유대 관계를 맺어본 경험도 적을 터였다. 성적 하위권 재수생들은 고교 3년, 혹은 훨씬 이전부터 가르치는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학창 시절 내내 학업 성취가 낮고, 학교생활 참여도가 저조했던 학생이 이제 와서 담임 강사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박해성

며칠간 강의실에서 밥을 먹었다. 같이 양치하러 가며 그 아이를 살피고 쉬는 시간마다 강의실에 가서 잡담부터 시작했다. 수강생이 할 말이 있는 표정을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 산책을 빙자해 학원 밖으로 데리고 나온 날, 그 아이는 머뭇머뭇하다 눈물부터 쏟았다. “너무 힘드니까 그냥 엄마 말 다 들어주고 싶은데, 저는 그럴 수준도 못 되는데, 엄마는 그게 납득이 안 되시니까, 너무 힘들어요.” 으레 그렇듯 낮추고 낮춘 부모의 기대치와 최선을 다하는 수강생의 실력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놓여 있다. ‘삼수를 하면 달라질까? 한번 더 하면 그 기대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을까?’ 그 아이는 누구도 답을 줄 수 없는 질문을 하며 스스로 할퀴고 지쳐갔다.

학습은 거듭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열심히 하면 성적은 오를 것이다. 그러나 고교 3년간 쌓아놓은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굴려서 키워볼 눈뭉치조차 갖고 있지 않은 재수생이 숱하다. 공부하며 ‘모르는 게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수강생들은 질릴 수 있다. 이런 수많은 구멍을 10개월 단기간에 채울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그 아이도 과거에 대한 후회,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 부모가 실망할 거라는 공포 속에서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의 지방 캠퍼스라도…” 애타는 부모


부모라고 아이의 실력을 모르지는 않았다. “나는 그 대학에도 안 보내고 싶은데 애는 다른 대학은 못 간다니까, 이 상황이 너무 기가 막혀요. 서울에 있는 대학의 지방 캠퍼스라도 가서 대학 이름이라도 달자는 건데, 어떻게 그것도 안 될까요?” 좋은 학벌로 한국 사회에서 자리 잡고 성공한 부모일수록 이 레이스에서 탈락한 자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른다. 자녀를 아끼는 마음 이전에 견고히 지켜온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첫 경험이기 때문이다.

강사들은 수강생의 성적 향상 폭 자체가 의미 있다는 점, 그리고 오르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부모에게 설득한다. 학벌 획득이라는 명분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모순적이게도 학벌이 전부가 아니라는 위로를 건네느라 애쓴다. 부모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기대한다. 하지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들은 ‘고작 그거 하려고 이 돈 들여 재수시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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