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를 쓴 손낙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동 현장을 누비며 기자들을 상대하던 ‘노동자들의 입’(민주노총 대변인)이었다. 그런 그가, 이 책을 추천한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표현처럼 ‘뛰어난 사회분석가’가 되어 돌아왔다.
저자는 380쪽 많지 않은 분량에 ‘대한민국 부동산의 모든 것’을 꽉꽉 눌러담기로 아주 작정한 듯 보인다.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는 “부동산 문제가 단순한 주거 문제를 넘어, 교육과 학력, 건강과 수명, 불평등과 빈곤, 심지어 노동쟁의와도 관련이 있음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나간다. 한국의 부동산 문제는 재벌-관료제-언론-지식인-정치인으로 연결된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것임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밖에 없다”라고 이 책을 평가한다.
〈부동산 계급사회〉는 ‘부동산 귀신’이라도 되고 싶었던 저자의 치열한 열정의 산물이기도 하다. “저소득층은 좁은 집에, 고소득층은 넓은 집에 산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통념조차 그냥 쉽게 지나치지 않았다. 저자가 선택한 무기인 ‘통계’로 확실히 입증을 해야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책을 내고 보니, 각종 통계를 담은 A4 용지 프린트물이 저자 키의 세 배 높이가 되었을 만큼 뒤지고 또 뒤졌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통계를 통해 통계의 신화를 따져 묻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한다. “부동산 신화가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정부와 기업이 생산하는 수많은 통계의 왜곡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정면으로 맞설 필요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땅값에 따라 인간 수명이 결정된다?
저자는 각종 기관에서 발표한 통계의 단순 인용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여러 수치를 비교·조합해 ‘아파트 값과 금융기관 수의 상관관계’ ‘아파트 값과 서울대 합격률의 상관관계’ ‘부동산과 수명의 상관관계’를 밝혀내는가 하면, ‘집 안심률’(집 걱정 없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비율) ‘집 걱정률’ ‘부동산 6계급’ 같은 새롭고 흥미로운 개념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기막힌 일이지만, 이 과정에서 “땅값이 많이 오른 동네에 사는 사람은 오래 살고, 땅값이 적게 오른 동네에 사는 사람은 빨리 죽는다”라는 속설이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조형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이론적으로 보면 한국 사회의 여러 양상을 설명해주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부동산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조 연구원의 말대로 “한국인의 일상생활과 정치의식에 부동산의 소유 여부나 거주 지역의 부동산 평균 가격이 미치는 영향이 자못 심대하고, 나아가 정치적 갈등과 직접 맞물리는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접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부동산이 인간의 삶을 다르게 만든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집이 없고 땅이 없다는 것은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생활 전체, 나아가 인생 전체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일”임이 점점 명확해질 즈음, 저자는 지난 4년 동안 국회의원 보좌관(심상정 전 의원·재정경제위원회)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대안을 하나하나 제시해나간다. 그 핵심은 ‘제2의 토지개혁과 택지 국유화’ ‘공영개발’ ‘부동산 특권 폐지’ ‘셋방 스트레스 푸는 주택정책’ ‘지하방 탈출 사다리 정책’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현실은 저자의 뜻과 정반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구춘권 영남대 교수가 “〈부동산 계급사회〉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 수긍할 만한 해법을 제시하지만, 개발 지상주의에 빠진 현 정부에는 ‘쇠귀에 경 읽기’일 것 같다”라고 안타까워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손낙구 역시 책을 마무리하면서 “(이명박 정부에서) 무엇을 무기로 어떤 방법으로 서민의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을 토로한다. 그가 제시하는 최우선 과제는 정치운동과 사회운동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의 추상적 한계를 넘어 주거를 비롯한 가난한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정당, 좋은 정치인, 좋은 사회운동을 키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모든 게 언제 충족될지는 몰라도 한 가지만은 분명해 보인다. 〈부동산 계급사회〉라는 좋은 책, 손낙구라는 좋은 필자는 이미 세상에 나와 있다는 것이다.
추천에 참여해주신 분 : 구춘권(영남대 교수·정치학) 김봉석(대중문화 평론가) 이동철(용인대 교수·중국학) 이종태(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이택광(경희대 교수·영미문학) 조은영(북매거진 텍스트 편집장) 조현연(성공회대 교수·정치학) 조형근(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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