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김학의 사건’ 경찰 수사의 일선 책임자였던 ㄱ 당시 경정(현 총경)이 고민 끝에 공개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2013년 ‘김학의 사건’ 수사를 가장 잘 아는 경찰관 중 한명이다. 다만 불필요한 오해나 억측을 경계해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

‘김학의 사건’은 똑같은 건으로 2013년, 2014년, 2019년 세 차례나 검찰의 강제수사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다시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까하는 우려 때문에 ㄱ 총경은 나섰다. 피해를 증언하는 여성들을 무고 혐의로 공격하는 흐름이나, 두 차례 이 사건을 무혐의 처분한 검찰에 대한 수사는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인터뷰에 응했다.

 

ⓒ연합뉴스2008년 3월 김학의 당시 춘천지검장이 취임식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13년 당시 수사는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정권 초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이자 검사장 출신 김학의 법무부 차관을 정조준 하는 일이었다. 2013년 3월14일 김 차관이 임명된 다음날부터 ‘별장 성 동영상’에 대한 언론 보도가 쏟아졌다. 3월18일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 김 차관에 대한 내사를 시작했다고 밝혔지만, 팀을 꾸리는 데 내부적 진통을 겪었다. 선뜻 수사를 맡겠다는 이가 없었다. ‘윗선에서 원치 않는 수사’를 한다는 것의 의미를 경찰 내부에서도 잘 알고 있었다.

실제 검찰의 수사 지휘는 석연찮은 면이 많다고 느꼈다. 경찰이 신청한 강제수사 관련 영장이 계속 검찰에서 반려되었다. 통신사실 조회, 압수수색 영장, 체포영장, 출국금지 요청 등이 열 차례 이상 기각됐다(〈시사IN〉 603호 “김학의는 박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사람” 기사 참조). 검찰은 보강 수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였지만, 경찰 수사팀 처지에서는 연이은 영장 반려를 납득하기 쉽지 않았다.

2013년 경찰은 김학의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씨에 대해 특수 강간 등의 혐의로 송치했지만 검찰(서울중앙지검 강력부 윤재필 부장검사)은 무혐의 처분했다. 해당 동영상 속 여성이 자신이라고 밝힌 고소인이 나타나 2014년 다시금 수사가 시작됐지만 또 검찰(서울중앙지검 강력부 강해운 부장검사)은 김 전 차관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2019년 ‘김학의 사건’에 대한 세 번째 강제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의 과오를 바로 잡고 개혁 발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이하 검찰 과거사위)가 수사 권고를 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검찰이 제때 진상을 규명하지 못하고, 국민적 의혹이 커져 다시 수사에 이르게 된 지금의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수차례 연락했지만 지금까진 공개 인터뷰를 꺼렸다. 마음이 바뀐 이유가 뭔가?

수사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는 상황은 당시 여성 피해자들의 호소를 직접 듣고 수사를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참기 힘들다. 여성 피해자들에게는 무고를 운운하면서 겁박하는 것 같다. 검찰 수사단은 경찰청을 며칠씩 압수수색하면서 이잡 듯 뒤지고 있다. 또한 윤씨를 급하게 신병처리 하려고 한다.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알 수 없게 하는 작업이 진행 중인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

사건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본질은 단순하다. 건설업자 윤씨의 원주별장에 사회 고위층이 들락거리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것이 윤씨 관련 사업이나 사건의 진행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봐야한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경찰이 어렵게 드러낸 사건을 왜 검찰은 두 번이나 덮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검찰 과거사위의 권고를 보면 피해 여성들은 가해 남성들을 무고했고, 청와대는 외압을 행사했고, 경찰은 뭔가 감추고 누락했다. 그러면서도 검찰의 잘못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현재 검찰 수사단이 경찰, 청와대, 김 전 차관의 집, 윤씨의 사무실 등은 뒤졌다는 말이 들린다. 그런데 과거 2013년 2014년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에 대해 강제 수사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현재 검찰 수사단은 마치 원주별장과는 관련 없는 다른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피해 여성들은 다시 상처받고, 2013년 당시 사건을 세상에 드러냈던 경찰관들의 명예는 떨어지고, 진실은 묻히게 될까 걱정된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2013년 경찰이 윤중천씨의 원주 별장을 압수 수색하던 중 발견한 가면들.

 

 

 

 

사건은 어떻게 맡게 된 건가?

범죄 정보 수집 단계에서 언론에 사건이 보도됐다. 그래서 수사에 착수해야하는 상황이었는데 실수사 부서가 발을 담그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범죄 정보를 생산한 저를 특수과로 발령을 내 직접 수사하게 했다. 본래 범죄 정보 생산과 수사는 분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수사 과정이 쉽진 않았겠다.

삐끗 잘못해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죽겠구나하는 압박이 대단했다. 수사 중 외압은 없었지만, 아무도 발을 디디지 않으려는 상황과 수사 중 지휘부의 교체, 인사 검증의 실패를 경찰에 전가하는 청와대의 태도, 비우호적인 검찰 지휘, 수사 후 인사 보복 우려 등으로 힘들었다.

실제로 사건 담당했던 경찰들이 인사 보복을 당했다는 지적이 많다.

수사 중 이 사건에 적극적이었던 윗선은 한직으로 쫓겨났고, 나는 수사 후 비수사 부서로 강제 발령되었다. 2014년 1월 해외로 도주한 조폭 두목의 검거를 위한 송환 작업으로 필리핀을 갔다 왔다.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너 내보내란다’라는 말을 들었던 일이 잊히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2013년 검찰은 김학의 전 차관을 불기소했다. 불기소 이유서를 보면 당시 피해 여성들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불기소 이유로 적시된 것들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검찰의 불기소 이유서와 경찰의 송치의견서를 비교해 보여드리고 싶을 정도다. 검찰의 불기소 이유보다 훨씬 더 충분하고 합리적인 이유로 성범죄를 기소 의견 송치했다고 자신한다. 경찰에서 피해 여성들은 일관되게 진술했다. 게다가 복수의 피해자들이 공통되게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또한 성 범죄 외에도 윤씨가 연루된 대우건설, 저축은행 사건 등에 대해 피해 여성들은 일관되게 증언했고 이는 범죄 혐의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당시 검찰은 김학의 전 차관과 윤중천씨가 연루된 성범죄와 관련해서는 수사 착수 때부터 ‘여성들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라는 태도였다는 건가.

그렇다. 이 건의 성범죄 혐의 주요 발생은 2006~2008년, 수사 착수는 2013년이다. 이렇게 사건 발생과 수사가 장기간 떨어져 있는 성범죄는 피해자의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직접 증거일 수밖에 없다. 가해자들의 변호인이라면 피해자들의 진술을 흔드는 데 집중해야한다. 우연인지 의도적인 건지는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검찰 수사는 그 방향으로 이뤄졌다.

2014년에는 ‘동영상 속 여성이 자기고 남자는 김학의 전 차관’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나타났지만 검찰은 또 무혐의 처분했다.

동영상의 의미는 이렇게 봐야한다. 누가 거짓말을 하느냐의 판단 근거다. 동영상 속에 특수 강간 장면이 없다, 찍힌 시기가 어떻다는 등의 이야기는 본질을 흐리는 말이다. 애초에 성폭행을 직접 입증하는 증거로 기록에 붙인 게 아니다. 남자들과 여자들의 진술이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누가 거짓말을 하느냐에 대한 증거다. 윤씨는 김 전 차관을 전혀 모른다고 했다. 반면 여성들은 김 전 차관을 윤씨 별장에서 만났다고 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별장에서 찍힌 동영상은 누구의 말이 더 믿을만한지에 대한 판단 근거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자꾸 동영상이 그 이상의 증거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오히려 동영상의 의미를 흔드는 의도로 보인다.

 

ⓒ시사IN 이명익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윤중천씨의 별장 전경.

 

 

 

 

경찰이 신청한 출국금지 요청, 체포 영장 등이 검찰에서 반려됐다.

경찰 수사팀으로서는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검찰의 수사 지휘가 있었다. 예를 들면, 물적 증거가 전혀 확보되지 않은 수사 초기에 주 피의자를 먼저 불러 조사하라고 했다. 부인할 게 뻔한 상황인데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게다가 특정인의 혐의 범죄 사실을 제외하라고 지휘했다. 또한 당시 ‘별장 동영상’ 원본 확보가 급했다. 원본 동영상 소지자가 잠적해 추적 검거가 필요했다. 그래서 체포 영장․실시간 추적 등을 신청했는데 검찰이 반려했다. 결국 보강해 영장을 받아내긴 했지만 영상 확보에 시간이 지연됐다.

검찰은 보강수사를 지휘한 것이고 결국 영장을 내줬다고 말한다.

지금과 같은 수사 구조(수사권․수사지휘권․영장청구권․기소권을 검찰이 가짐)에서는 검찰의 수사 지휘는 ‘보강수사’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항상 옳다. 문제는 검찰이 그런 지위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검찰이 수사 지휘에 있어서는, 지휘의 시점과 숨겨진 의도가 중요하다. 이러한 수사지휘가 전체적인 수사 흐름에 실질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를 봐야한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당시 납득할 수 없는 검찰 지휘가 있었고 부당하다고 느꼈다. 결국 영장을 내준 것도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내준 것이지 흔쾌히 내준 게 아니라고 본다.

김학의 전 차관에게 뇌물죄를 적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뭔가?

뇌물죄 적용도 염두에 뒀다.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피해 여성들의 돈 봉투 전달 목격, 한방천하 등 형사 사건 개입 정황 등은 모두 경찰 단계에서 조사했다. 그러나 뇌물 혐의의 공여자인 윤씨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검찰은 김 전 차관 쪽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있는 압수수색 영장 등 수사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 여성들의 간접 진술만으로는 뇌물죄 입증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여성들의 구체적이고 직접적 피해 진술이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물적 증거와 제3자의 진술이 있는 성범죄에 집중했다. 또한 성범죄 등이 뇌물죄보다 공소시효가 길게 남았던 점도 고려했다.

검찰 수사단이 밝혀야할 핵심이 뭐라고 보나.

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해 줬으면 좋겠다. 원주 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것을 매개로 부당한 사건 개입이나 특혜가 있었는지 말이다. 또한 여자들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검찰이 이 사건을 두 번이나 덮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또한 경찰 수사팀에 대한 인사 불이익은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밝혀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수사 시스템에서 검찰은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고 수사를 잘하는 조직이다. 다른 조직을 탓하는 모습 말고, 자기 조직의 과오도 과감히 드러내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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