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사라졌는데 한때 인도 국경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에 온 것을 환영한다(Welcome to the world’s largest democracy country)’라는 문구의 입간판과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인도 주변국 중 파키스탄은 군부정권이었고, 네팔은 왕정국가, 스리랑카는 내전 중이었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읽게 되는 그 문구는 그래도 이 주변에서는 가장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로 간다는 안도감의 근원이었다.

인도가 총선을 치르고 있다. 내각제 국가라 대선이 없다. 총선이 사실상의 대선이다. 총선 결과에 따라 다수당이 정해지고 이변이 없는 한, 설사 다수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다 해도 원내 1당이 기타 군소정당을 엮어서 연립정부를 만들고 원내 1당이 지명한 총리 후보가 총리직에 오른다.

인도, 세계 최초로 전국 선거에 전자 기표기 도입

이번 인도 총선은 1952년 1회 총선거를 시작으로 현재 17번째, 그러니까 우리 식으로 풀면 17대 총선이다. 같은 내각제 국가인 일본이 1952년 이후 무려 24차례 총선을 치른 데 비해 인도는 겨우 17번째다. 현직 총리 한 명이 임기 중 암살당하기도 했지만, 인도 민주주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수많은 나라들과 달리 흔한 군사 쿠데타 한번 없이 이어졌다.

ⓒEPA신분증을 든 채 투표 순서를 기다리는 인도 유권자들.

처음 인도 여행을 할 때 가장 놀라웠던 건 골목마다 벽화처럼 그려진 공산당 마크였다. 사실 공산당 외에도 수많은 정당의 마크가 벽에 그려져 있었지만, 그때는 낫과 망치를 교차해놓은 공산당 문양만 눈에 띄었다. 그것밖에 몰랐으니까.

우리가 정당의 의석수에 따라 출마자 기호를 1, 2, 3, 4로 나누는 이유가 1940년대 말의 문맹자들을 위한 배려였듯, 인도는 각 정당에 그림을 부여한다. 즉 낫과 망치는 공산당의 상징, 인도 독립운동의 영웅이었던 국민의회는 국민 앞에 선서한다는 의미를 담아 손바닥, 현재 집권당인 인도국민당은 연꽃이다. 우리가 ‘1번 당’ ‘2번 당’이라고 호칭하듯, 인도에서는 ‘손바닥 당’ ‘연꽃 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당이 원체 많다 보니 ‘자전거 당’과 ‘오토바이 당’도 있는데, 두 당의 마크가 헷갈려서 어떻게 기표하나 싶기도 하다.

인도는 세계 최초로 전자 기표기를 전국 선거에 도입한 나라다. 아코디언처럼 생긴 이 기계는 2004년 총선부터 유일한 선거 기표기로 사용되었는데, 유무선 인터넷, USB, 블루투스 같은 외부와의 통신 자체가 아예 차단됐다. 총 64명까지 후보로 등록하고 기표할 수 있지만 다수의 정당이 난립하는 나라라 이 부분의 업그레이드 문제가 선거 때마다 논란이 된다. 다행히 아직 한 선거구에 64명 이상 출마한 경우는 없다.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높은 편이라 뜻밖에 선거 부정 시비도 거의 없다. 2017년 딱 한 번 일부 야당이 전자 기표기로 인한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했다. 인도 선관위는 개표 부정 따위는 없다며 아예 전자 기표기 해킹 대회를 개최해버렸다. 막상 판을 깔아주자 선거 부정을 주장했던 야당들이 슬그머니 발을 뺐고, 결국 해킹 대회 당일에는 어떤 정당도 나타나지 않는 해프닝이 일기도 했다.

4월11일부터 5월19일까지 치러지는 이번 총선의 유권자는 약 9억명이고, 투표소는 100만 개다. 인도는 이중 투표를 방지하기 위해 투표자의 손톱 끝에 보라색 물감을 칠해주는데, 이게 젊은 세대에게는 일종의 투표 인증샷 구실을 한다. 연꽃과 손바닥의 대격전. 결과는 5월23일 발표된다.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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