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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대가의 반열에 오른 뮤지션 앤더슨 팩

한국계 흑인 앤더슨 팩은 음악 좀 챙겨 듣는 이들에게 소문난 뮤지션이다. 그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5월 02일 목요일 제6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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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는 ‘Anderson .Paak’이라 적는다. 자료를 찾아보니, 앤더슨 팩 혹은 앤더슨 팍이라 부르면 된다고 한다. 그렇다. 앤더슨 팩은 한국계 흑인 뮤지션이다. 정확하게는 앤더슨 박이라 써야 한다. 그의 한국인 어머니가 박씨이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입양 관련한 신고서에 ‘Paak’이라 잘못 기재되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국내 사이트에서는 다 앤더슨 팩으로 표기해 이 글에서는 팩으로 적는다.

나는 지금 ‘국뽕’으로 당신을 설득하려는 게 아니다. 앤더슨 팩이든 팍이든, 한국인이든 아니든 지금 시대에 그게 뭐가 중요한가. 그의 아내가 한국인이라는 점도 그냥 상식 정도로만 챙겨두자.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하여 명쾌하다. 팝 음악 좀 챙겨 듣는 팬들에게 앤더슨 팩은 이미 끝장나게 실력 있는 뮤지션으로 소문이 쫙 퍼져 있다는 거다.
ⓒAP Photo
2월10일 제61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랩 공연상을 수상한 앤더슨 팩(왼쪽)이 아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건 2집 <말리부(Malibu)> (2016)부터였다. 그는 이 앨범에서 재즈, 솔, 펑크, 힙합 등을 넘나드는 동시에 이를 현대적으로 소화하면서 찬사를 받았다. 솔직히 나는 2010년대 이후 언어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하다고 여기는 쪽이다. 조금만 잘했다 하면 ‘천재’라 부르고, 달랑 앨범 두세 장 냈는데 ‘대가’라 칭하는 행태가 영 이해되지 않았다. 오로지 최상급 아니면 자극적인 언어를 써야만 그나마 눈길을 끌 수 있는 매체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말리부>를 듣고 나는 확신했다. 앤더슨 팩 이 친구, 음악 천재임이 분명했다.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져야 한다. 차기작을 듣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2018년 <옥스나드(Oxnard)>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를 잊지 못한다. <말리부>와는 또 다른 세계가 거기에 담겨 있었다. 더 하드코어해졌고, 한층 실험적이었다. 흑인음악의 여러 영역을 심도 있게 탐험한 박사 논문 같았다. 뭐랄까, “음악 좀 듣는 놈들만 들어도 돼”라는 자신감이 앨범 전반에 배어 있었다는 의미다.

얼마 전 신보 <벤투라(Ventura)>가 발표됐다. 결론부터 말한다. <벤투라>는 가히 ‘올해의 앨범’급이다. 뭐로 보나 흠잡을 곳이 없다. 펑크는 조금 줄어든 대신 힙합과 솔을 제대로 해냈다. <옥스나드>보다 대중적이면서도 특유의 바이브를 잃지 않았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면서 빈티지와 모던을 함께 가져가는 점도 변함없이 인상적이다.

<벤투라>는 ‘올해의 앨범’으로 손색없어

그러면서도 앤더슨 팩은 세련된 프로덕션을 통해 묘하게 미래지향적인 뉘앙스를 완성해낸다. 그의 음악이 언제나 근사하게 들리는 이유다. 확언할 수 있다.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로큰롤 라디오 2집, 빌리 아일리시의 데뷔작과 함께 <벤투라>는 2019년 12월쯤 다시 회자될 게 분명하다. 올해 초 그래미상을 탔는데 이 앨범의 성취를 보아하니 새로운 그래미 트로피 하나쯤 더 기대해도 과욕은 아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도리어 내가 언어 인플레이션에 함몰된 거 아닌가 의심하는 독자가 있을 것 같다. 일단 들어보시라. 솔 그루브가 흘러넘치는 첫 곡 ‘컴 홈(Come Home)’부터 재즈 힙합 ‘위너스 서클 (Winners Circle)’을 거쳐 캘리포니아 해변 도시 벤투라의 풍경을 음악으로 표현한 듯 들리는 ‘왓 캔 위 두(What Can We Do)’까지, 빠지는 곡이 하나도 없다. 내가 틀렸다. 앤더슨 팩은 천재가 아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이미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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