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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배우기, 어렵고도 쉬운 길

문정우 기자 woo@sisain.co.kr 2019년 05월 02일 목요일 제6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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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활자의 영토’를 연재한 지 3년8개월이나 지났다. 아쉽게도(동의하지 못하는 분도 많겠지만) 4년을 채 마치지 못하고 작별을 고해야겠다. 정년을 앞두고 안식월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글은 몇 가지 안타까움을 동력으로 삼았다. 아직 글에 대해 순정을 간직한 세대로서 인터넷상에서 수많은 글이 일회용품처럼 순식간에 소비되고 버려지는 게 마음에 걸렸다. 적어도 몇 년은 두고 읽어도 좋을 글을 쓰고 싶었다. 이미지와 동영상에 치여 글이 갖는 매력이 날로 퇴색해가는 세태에 반감을 가졌다. 글쓰기로, 감각기관만이 아니라 내면의 깊은 곳까지 흔들어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영감과 상상을 선사하는, 비장한 마법을 부려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기왕이면 구성의 묘와 디테일도 살았으면 했다.

누구나 원하면 발행인이 되고 방송인이 될 수 있는 인터넷 시대는 말 그대로 양날의 검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면서도 터무니없이 큰 특권을 누려왔던 언론(인)이 사복을 채우려고 장난을 치기가 힘들어졌다는 점은 분명히 통쾌하다. 하지만 언론의 권위와 더불어 숱한 정보를 체질할 그물마저 사라졌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인터넷 플랫폼만으로는 날조된 정보나 쓰레기를 처리하기에 역부족이다. 성문을 열자 난민뿐만 아니라 적의 첩자까지 섞여 들어와 곳곳에서 불을 질러대는 꼴이다.
ⓒ한성원

세계가 대전환기를 맞고 있어서 혼란은 더욱 심하다. 기후변화는 고삐가 풀린 듯한데 이를 막기 위한 국제 공조는 제자리걸음이다. 연평균 기온이 불가역적으로 치솟고 열대성 폭풍은 날로 위력을 더한다. 가뭄·홍수·산불·지진 따위 재난이 세계 도처에서 지난 100년 동안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석유와 내연기관에 기반한 세계경제 역시 한계에 이르렀다. 세계는 컴퓨터를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의 단계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 속도가 경이롭게 빨라 오늘이 어제와 다른 세상이다. 기후변화 대처 실패, 빈부 격차의 극심한 확대로 자유무역과 세계화를 추동해왔던 리버럴리스트들이 국제 정치무대에서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극우부터 극좌까지 국제 정치 스펙트럼은 갑자기 넓어졌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과거에는 명함도 내밀지 못했던 다양한 성향의 정치인이 새로운 기회를 엿본다. 주류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정당의 위상이 사정없이 흔들린다.

오피니언 리더나 게이트 키퍼의 자리를 대신하기는 힘들어도 정보 큐레이터 정도의 구실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 글을 쓰는 동기 중의 하나이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쓸 만한 것을 가려내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 변화하는 시대의 모습을 재현해보고 싶었다.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전망할 수 있는 이정표를 세워보려고 했다. 이제 몇 남지 않은 국제 권위지에 실린 글을 토대로 삼았으며 그것을 뒷받침할 단행본의 내용을 뒤졌다. 인쇄가 컴퓨터화되었어도 글꼴에 남아 있는 활자가 여전히 책과 글을 상징한다는 생각에서 이 코너의 이름을 ‘활자의 영토’라고 지었다.

돌아보면 시작은 창대했으나 결과는 미미하다. 욕심만 턱없이 컸을 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글을 읽는 즐거움까지는 몰라도 국내 언론에서 접하기 힘든 정보나 아이디어나마 조금은 전달했기를 바란다. 글을 길게 써서 읽는 이들을 힘들게 했는지는 모르겠으되 덕분에 인터넷에서 횡행하는 악플러들의 공격은 모면할 수 있었다고 여기며 혼자 미소 지었다.

외국어를 ‘고통스럽게 공부하는’ 재미

언어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외국어를 구사할 때 모국어로 말할 때보다 몇 배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주로 영어로 된, 때로는 일본어 자료까지 읽자니 죽을 맛이었다. 당장은 이해하기 어려워 몇 날, 몇 달을 묵힌 자료도 많았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마감이야말로 내 영어 공부를 채찍질하는 엄한 선생이었다. 외국어를 배우는 데는 외국인 애인보다도 포도청(목구멍)이 낫다는 말이 실감 났다. 연재를 하면서 외국어를 공부하는 재미, 나아가 고통스럽게 공부하는 맛을 본 것은 기대하지 못했던 소득이었다. 뭔가를 배울 때 가장 중요한 점, 윤곽이 그려지고 레시피가 정리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로만 들었던, 남의 얘기인 줄로만 알았던 5개 국어를 하느니 7개 국어를 하느니 하는, 다국어 사용자가 되는 것도 꿈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서울 한복판에서 오른쪽을 보면 중국인 여행객이 떼 지어 지나가고, 왼쪽을 보면 금발의 스웨덴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모습을 보는 시대에 산다. 글로벌 회사인 마스터카드 사 조사에 따르면 2017년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수가 954만명에 달했다. 같은 해 전 세계에서 국경을 넘나든 인구가 14억명을 넘었다고 유엔 세계관광기구는 발표했다. 지금은 전 세계인이 다국 언어가 종횡하는 문명의 교차로에 선 꼴이다. 영어는 물론이고 다양한 언어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가 급상승하고 있다. 모국어만 사용하는 단일 언어 사용자에게 잠재된, 다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요정을 끌어내려는 인터넷 온라인 프로그램 핌슬뢰(Pimsleur), 로제타스톤(Rosetta Stone), 바벨(Babbel), 듀오링고(Duo Lingo) 등에 인파가 몰린다.

신화와 역사에도 언어 천재는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아마도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외국어만 못했어도 역사는 바뀌었을지 모른다. 그리스 시대 철학자인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어와 그리스어, 라틴어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언어에 능통해 거의 통역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라틴어를 몰랐다면 카이사르의 침소에 잠입해 그를 유혹하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역시 웨일스어와 아일랜드어를 비롯한 잉글랜드 4개 섬의 언어는 물론이고 다른 6개 언어를 꿰고 있었다.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역시 언어 천재가 아니었을까.

기록이 가장 풍성하게 남은 인물은 19세기 중반 교황청 바티칸 도서관의 책임자로 일했던 메조판티 추기경이다. 그는 무려 72가지 언어를 구사하며 전 세계에서 몰려온 성직자 사이로 꿀을 찾는 벌처럼 날아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당대에는 그를 앵무새에 불과하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의 사후 유품 가운데서 미국 인디언의 언어까지 연구한 흔적을 포함한 수많은 메모 꾸러미가 발견되었다.

언어학적으로 하이퍼폴리글롯(hyperpolyglot)이라 불리는 현대의 초인적인 다언어 구사자 가운데는 스타가 된 사람이 꽤 있다. 그중 웹사이트를 대표하는 인물은 멕시코계 미국인으로 싱가포르에서 사는 알렉산더 아르겔레스이다. 그는 전 세계의 고전을 그 나라 말로 읽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1년 열두 달 31개 언어를 집중 ‘수행’한다. 한때 한동대에서 가르쳤고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으며 한국어 번역으로 용돈도 버는 인물이다. 다언어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구루(스승)로 통하는 영국인 하이퍼폴리글롯, 리처드 심콧도 못지않게 유명한 인물이다. 매년 전 세계 폴리글롯 대회를 주재하는 그는 누군가 영어로 말하면 세계지도에서 출신지를 귀신처럼 집어낸다. 6개국에서 사람들이 그를 네이티브 스피커로 착각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이런 사람들을 흉내 낼 수 있을까. 여기에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보통 하이퍼폴리글롯으로부터 자기네 족속(신경족이라고 부른다)이라고 인정을 받으려면 11개 언어 정도는 비교적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1세도 일반인이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도 몇 가지 언어는 배울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평범한 사람도 최소한 6가지 언어는 너끈히 익힐 수 있다고 알렉산더 아르겔레스가 보증한다. 신경족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대개 다른 능력에서는 뛰어난 점이 없었다.

하지만 리처드 심콧은 그 누구도 저절로, 희생 없이 신경족이 되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미국 칼럼니스트 마이클 에라드는 2013년 신경족을 인터뷰하고 <언어의 천재들>(민음사)을 썼는데 거기에는 알렉산더 아르겔레스의 일상이 소개돼 있다. 그는 새벽 3시에 일어나 모든 어원의 강인 아랍어·산스크리트어·중국어를 각각 두 페이지씩 필사한다. 그리고 다른 언어를 또 비중에 따라 합쳐서 24쪽을 베낀다. 날이 밝으면 각종 언어를 큰 소리로 흉내 내는 ‘섀도잉’을 계속한다. 에라드가 나중에 계산해보니 그는 깨어 있는 시간의 40%를 52개 언어를 공부하는 데 바친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도 뼈를 깎는 고통을 겪어야만 성취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과 비교할 수야 없겠지만 연재하는 동안 고통을 느끼면서도 행복했다는 말씀을 드린다. 언어를 내 것으로 만들려면 읽기, 쓰기, 듣기를 넘어 서식(inhabiting)을 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애정은 고통을 통해 자란다는 걸 알았다. 언론학자 마셜 매클루언이 얘기했던, 매체(언어)가 곧 메시지란 말에 공감했다. 신부이자 변호사이자 무엇보다 뛰어난 선생님인 한동일이 쓴 책 <라틴어 수업>을 보며 절실하게 배웠듯이 오래된 언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다. 고대의 지혜를 간직한 문화유산이자 인간의 지적 능력을 조련하는 훌륭한 도구이다. 한동일 선생에 따르면 공부란 하비투스(라틴어로 습관, 수도승이 매일 입는 옷이란 뜻도 있다)다. 우리는 그 옷을 걸치고 일용직 노동자처럼 땀을 흘려야 한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중국어, 스페인어, 아랍어를 향해 진격할 용기가 솟는다. 물론 번번이 좌절하겠지만 목적지가 어딘지 알게 됐다는 게 어딘가(그동안 활자의 영토란 불편한 제목을 조용히 나무라기라도 하듯 항상 글보다 훨씬 좋은 그림을 그려준 한성원 작가에게 각별한 감사를 드린다).

참고한 활자:<언어의 천재들>(민음사), <라틴어 수업>(흐름출판), <뉴요커>

※ 이번 호로 ‘문정우의 활자의 영토’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하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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