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7일 수요일 오후 6시50분(현지 시각), 프랑스 전역의 성당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틀 전 같은 시각 첨탑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올랐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애도하는 의미였다.

중세 시대에 지어져 프랑스 가톨릭을 대표했던 노트르담 대성당은 매년 관광객 1400만명이 찾는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대성당은 최근 1억5000만 유로(약 1926억원)를 들인 보수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첨탑 주위에 설치된 비계(飛階)에서 화재가 났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예상 발화 시간은 노동자들이 이미 철수한 뒤였다. 레미 하이츠 파리 검사장은 4월16일 “아직 정확한 화재 원인을 알 수 없으나 사고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답했다.

현장에 소방관 400명이 동원돼 불길을 잡았다. 경찰 2명과 소방관 1명이 경상을 입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살수하는 로봇과 상공에서 화재 진행 상황을 파악할 드론도 동원됐다. 얼마 전 보수 작업을 위해 회수한 조각상 16개와 가시면류관 등 중요 유물들은 파리 시청으로 옮겨져 훼손을 면했다.
 

ⓒEPA4월15일 파리 4구역 거리에서 불타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파리 시민들.

불이 붙은 지 한 시간여 뒤 대성당의 상징이던 높이 93m의 첨탑이 무너지는 장면은 화재와 진화 과정을 지켜보던 프랑스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현지 언론은 성당 앞에서 허망하게 눈물을 흘리는 프랑스 국민들의 모습을 보도했다.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하는 사라 씨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테러인 줄 알고 두려웠다. 문학 공부를 하면서 빅토르 위고를 통해 애착을 가졌던 성당이 무너져 내 몸 일부가 다친 것 같은 심정이다”라고 말했다. 파리 디드로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아미나타 씨는 “종교는 없지만 노트르담 대성당은 문화적·건축적 의미가 큰 곳이다. 화재는 충격이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대성당 화재는 종교계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었다. 프랑스 문화유산 대통령 특사이자 문화유산 보존 사업의 주요 인물인 스테판 베른은 4월15일 프랑스2 채널과 인터뷰하면서 눈물을 보였다. 그는 “대성당은 프랑스의 이미지이자 상징이다. 노트르담이 불타는 모습을 보는 건 프랑스인들에게 견딜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영화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주인공 에스메랄다를 연기했던 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도 프랑스3 채널과 인터뷰하면서 “노트르담의 재앙을 봤을 때 눈에 눈물이 고였다”라고 말했다.
 

ⓒXinhua4월15일 발생한 대형 화재로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이 무너지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5년 내 복원 선언했지만

1163년 착공한 노트르담 대성당은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1302년 최초의 삼부회(귀족·승려·평민으로 구성된 신분제 의회)가 이곳에서 열렸다. 1594년 앙리 4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혼인식을 치른 장소이기도 하다. 1804년에는 나폴레옹이 대관식을 했다. 1970년 샤를 드골 장군, 소설가 프랑수아 모리아크,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여기서 치렀다. 나치 점령기에 울리지 않던 종탑의 종이 1944년 파리 해방의 날에야 울려 해방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1831년 〈파리의 노트르담〉을 통해 대성당을 알리고 1844년 보수 공사를 이끌어내는 데 큰 기여를 했던 대문호 빅토르 위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번 화재로 인해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은 순식간에 아마존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에는 등장인물 카지모도가 성당에 불을 지르는 장면이 있어서 현지 누리꾼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출판사 리브르 드 포슈(Livre de Poche)의 대표는 4월17일 소설 한 부당 1유로에 해당하는 금액을 대성당 재건축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복원 방향을 둘러싸고 논란이 인다. 1844년 보수 당시 만든 750t의 첨탑을 그대로 복원할 것인지가 쟁점이다. 1460년 장 푸케의 그림 ‘신도들을 보호하는 신의 손길’ 속 노트르담 대성당에도 첨탑은 있다. 그러나 1844년 보수 공사를 총괄한 외젠 비올레르뒤크는 첨탑을 기존 형태로 복원하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만드는 게 목표였다. 참나무 수백 그루로 만들어져 ‘숲’이라는 별명을 얻은 성당 지붕 역시 논란거리다. 프랑스 숲 소유주들의 단체인 프랑실바(Fransylva)는 성당 재건축을 위해 각각 참나무 한 그루씩 기부할 것을 제안했으며, 농업 상호 보험회사인 그루파마(Groupama)는 1300그루의 참나무를 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4월17일 건축가 미셸 빌모트는 공영 라디오 ‘프랑스 앵테르’와의 인터뷰에서 “같은 노트르담을 만들어내더라도 오늘날의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무거운 재료인 납을 쓸 의무도, 참나무를 다시 쓸 의무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화재 다음 날인 4월16일 대국민 담화에서 “5년 안에 노트르담 보수 공사를 마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1차 세계대전 때 파손된 프랑스 북동부의 랭스 성당은 보수 공사에 45년이 걸렸다. 재건에 드는 비용 마련 역시 주된 화두다. 프랑스 조폐국인 ‘모네드파리’는 노트르담 기념주화를 재판매할 예정이다. 프랑스2 채널은 기금 조성 방송을 편성했다. 문화재 재단의 인터넷 모금에는 500만 유로(약 64억원)가 모였다. 명품 기업의 ‘큰손’들도 복원 비용을 쾌척했다. 구찌·생로랑 등을 보유한 케링 그룹의 앙리 피노 회장은 1억 유로(약 1284억원), 루이비통·펜디 등을 거느린 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2억 유로(약 2568억원)를 기부했다. 파리 시청도 5000만 유로(약 640억원)의 기금을 냈다. 4월17일 기준 노트르담 성당 복원 성금은 8억5000만 유로(약 1조915억원)에 달했다. 프랑스에서 노트르담 대성당의 의미를 짐작하게 하는 액수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