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9월11일자 조선일보 1면. ‘고정간첩단 28명 검거’라는 머릿기사가 보인다. 주요 신문들은 한 달 가까이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국정원 과거 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10월24일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알려진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에 대해 정보기관의 반인권적 간첩 조작 사건이라고 밝혔다.

‘안기부 창설 이래 최대의 개가’라며 추어올렸던 송씨 일가 사건이 마침내 최대의 조작 사건으로 결론 난 것이다. 진실위는 총 6권의 보고서 중 110여 페이지를 할애해 간첩단 사건의 조작 사실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1982년 9월10일 안기부가 발표한 이 사건은 북한 노동당 연락부 부부장 송창섭의 남한 내 일가친척이 고정간첩으로 암약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안기부는 송지섭(59·전군헌병기관 문관), 송기준(54·대진화학 대표), 한광수(69·전 이화여대 교수), 송기복(40·신광여중 교사) 등 고정간첩단 28명을 적발해 이 중 12명을 구속하고, 4명은 불구속, 나머지 13명은 훈방했다고 밝혔다(나이와 직업은 모두 발표 당시 기준).

안기부는 이들이 북한으로부터 공작금 1억8000만원을 받아 광고회사, 암달러상 등 위장 업체를 설립해 운영하며 지하 망을 구축했다고 발표했다. 관련자들의 자백만으로 구성된 이 사건은 불법 장기구금, 고문 따위로 대법원에서 두 차례나 무죄취지 파기환송하는 등 무려 일곱 차례나 재판이 거듭됐다.

충격적인 점은 안기부가 유죄 판결을 유도하기 위해 사법부에 전방위 압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자 안기부는 ‘파기환송 후 재심리 기간 중 법원·검찰과 협조해 증거보강 등으로 필히 유죄토록 유도’ ‘기소 이후 공소유지는 전적으로 검찰 책임’이라며 검찰을 압박했다. 무죄 판결을 내린 이일규 판사를 미행해 ‘문제 법관 동향 보고’를 상부에 올리기도 했다.

당시 안기부가 작성한 ‘파기환송 후 공판대책 진행상황’에 따르면 1983년 6월부터 8월에 걸쳐 검찰, 대법관, 대법원장 등을 망라한 사법부 인사들을 접촉해 유죄 판결을 유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것이다. 

그 결과 대법원의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하급 법원이 재차 유죄판결을 내리는 등 사법부가 안기부에 놀아나거나 동조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진실위는 이 밖에도 재북간첩 송창섭의 여덟 차례 남파설, 사건 발생 5년 전 사망한 송씨의 아내 한경희의 고정간첩설 등 당시 안기부가 발표한 주요 혐의의 단서도 찾을 수 없다고 발표했다. 

국정원 진실위는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서울중앙지검의 사건 수사 및 재판기록, 기무사 관련 자료, 안기부 수사보고서 등 모두 20만여 쪽에 달하는 자료를 입수해 분석했다. 또한 송창섭의 장녀 송기복 등 당시 사건 관계자 10여 명을 면담 조사했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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