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원도 탄광촌 벽지학교에 근무한다. 집에서 학교까지 편도 31.97㎞, 40분을 운전해서 간다. 일반인은 이 상황을 두고 ‘출퇴근 거리가 멀어 불편하겠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교사끼리는 ‘벽지 가산점 따려고 갔구나’ 하는 판단이 먼저 선다. 맞다. 나 역시 3년 전 관내 학교 이동을 신청할 때 승진 가산점을 얻기 위해 시골 학교에 지원했다. 벽지학교 근무 가산점이 없으면 사실상 교감 연수 대상자 순위에 들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교육전문직 시험을 통한 방식은 예외로 한다).

교장이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장기간 준비해야 한다. 교장이 되려면 먼저 교감이 되어야 하므로 교감 연수 대상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연수 대상자 순위는 경력평정, 근무평정, 연수평정 그리고 가산점을 합산해서 줄을 세운다. 가산점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중년 평교사들이 느끼는 두 가지 공포

ⓒ박해성
2009년 교직에 첫발을 디딘 이후 선배들은 끊임없이 승진하라고 충고했다. 승진 관련 정보는 따로 애써 구하지 않아도 복습에 재복습까지 하게 되는 일상이 펼쳐졌다. 그건 내가 남자 교사이고, 강릉에서 게다가 농어촌 점수도 하나 없는 시내 학교에서 근무하며 만족했기 때문이다. 남자 교사이면서 승진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 ‘교포족(교장 포기족)’으로 분류되거나 나중에 후회할 거라는 소리를 들었다. 후회의 근거는 의외로 권력 욕구가 아니었다. 차라리 생존 욕구에 가깝다고나 할까. 선배들이 중년 평교사를 떠올리며 느끼는 두려움은 공포에 가까웠다. 공포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평교사로 퇴직하고 싶더라도 체력이 떨어져 학생 지도가 어렵고, 학부모나 학생들이 외면한다는 공포다. 둘째는 동기나 후배들이 교감, 교장으로 나갈 때 평교사로 남아 있으면 도태된 인간 취급을 받게 된다는 공포다.

교장은 학교 교육 활동의 총괄자이며 책임자이고, 막강한 권한을 가진 존재다. 이렇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의 행위 동기가 상당 부분 공포심에 기인한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무척 충격을 받았다. 이 공포심을 특히나 남자 교사들이 강박적으로 확대재생산하며 공고히 하는 과정을 지켜봐왔고, 그 결과 부끄럽게도 나는 지금 벽지학교에 있다. 올해가 4년차 근무이기에 내년에는 학교를 옮겨야 한다. 점수를 채웠으니(우리 학교 등급에서 벽지 점수 만점을 받으려면 총 12년이 필요하다) 신나고 뿌듯해야 하는데, 어째 찜찜함을 지울 수 없다.

현행 승진제도에도 순기능은 많다. 연구 점수를 따기 위해 현장 연구대회에 나가고, 대학원에 다니고, 방학에 연수를 듣는 교사가 있다. 과도한 업무와 책임으로 누구나 꺼리는 학교 폭력 담당자 같은 역할을 기꺼이 맡는 교사가 있다. 전국 방방곡곡 두메산골과 섬 학교 근무를 자원하는 교사가 있다.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현 제도는 교장이 되기 위한 사람의 교육 역량과 전문성, 리더십을 제대로 검증해주지 못한다. 열심히 모은 점수가 성실함을 증명하고 궂은일을 감수했다는 증거는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보상으로 교감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교육 혁신과 학교 교육력 강화에 얼마나 이바지하는지 의문스럽다.

내가 탄광촌에 근무한다고 해서 교장·교감의 소임을 더 잘할 수 있나? 나중에 경력이 쌓여 교무부장이라도 할라치면 근무평정 1등 ‘수’를 받기 위해 교장이 비합리적인 지시를 내려도 침묵을 지키지 않을까? 교감이 된다 한들 바뀌나? 교감 근평권(근무평가 권한)을 교장이 가졌는데 소신껏 눈치 안 보고 일할 수 있을까? 가산점을 따려고 벽지에서 4년이나 근무하고 있으면서도 승진의 모순을 두고 자아분열이 끊이지 않는다.

기자명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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