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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만 빼고 네 이웃처럼 과세하라

종교인이 일반인보다 퇴직소득세를 적게 내는 법안이 만들어졌다. 소급과세 금지 원칙 때문이다. 형식적으로나마 존재하던 종교인 과세 원칙이 2018년 이전에는 없는 것이 됐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2019년 04월 25일 목요일 제6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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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은 일반인보다 퇴직소득세를 적게 내도 될까? 지난 3월2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를 통과한 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르면 그렇다. 종교인이 받는 퇴직금 중 2018년 이후 발생분에만 소득세를 매기는 게 골자다. 예컨대 일반인과 종교인이 똑같이 30년 근속 뒤 지난해 말 퇴직했다면 종교인은 일반인 퇴직소득세의 30분의 1가량만 부담하게 된다.

종교인 과세를 명문화한 소득세법 개정안은 2015년 개정되어 2018년 1월1일 시행됐다. 일각에서는 ‘50년 만의 과세 도입’이라고 한다. 1968년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이 “구멍가게에도 세금을 매기는데 성직자의 세금을 면제하는 것은 과세 공평의 원칙에 어긋난다”라고 발언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세 공평’에 어긋나는 듯한 이번 법안은 일사천리로 기재위 문을 넘었다. 2월1일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이 대표발의한 뒤 3월26일 기재위 상정, 3월28일 조세소위 논의를 거쳐 3월29일 원안 가결됐다.

ⓒ연합뉴스
4월8일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원불교개벽교무단,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관계자들이 과세 특혜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발의자들이 내세운 법안 제안 이유는 간단했다. ‘종교인 소득에 대한 과세가 2018년 1월1일부터 시행되기 시작하였으나, 종교인 퇴직소득에 대한 과세의 범위가 규정되지 않아 과세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음.’ 입법 미비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라는 의미다. 3월28일 조세소위에서 기재위 소속 일부 의원들은 2015년 소득세법 개정안을 제출한 정부가 종교인 퇴직금 범위를 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결과 두 가지 조세 대원칙이 위협받았다. 먼저 조세법률주의 원칙이다. 세금은 법률에 따라 징수해야 하는데 법적 근거 없이 퇴직금 전체를 과세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더 핵심적인 부분은 소급과세 금지 원칙이다. 종교인에게 소득세 납부 의무가 생긴 것은 법이 시행된 2018년 1월1일부터인데, 그 이전에 발생한 소득에서 나온 퇴직금도 과세 대상이 되고 있다.

기재위 소속 일부 의원들 주장처럼 입법자의 과실에 따라 세부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생긴 문제라면 해결이 간단하다. 이번에 발의된 법안 제안 이유에 적혔듯 “과세 기준을 마련”하면 된다. 가령 ‘공청회 등 사회적 합의 과정이 부족했다’는 비판에 대해, 4월1일 SBS CNBC에 출연한 서헌제 한국교회법학회장은 이렇게 반박했다. “잘못된 법을 고칠 때에는 속전속결이다. 과세 범위를 정하지 않아서 생긴 혼선을 바로잡고 보완하는 법을 만드는 것이고,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서 회장은 지난해 11월 종교인 퇴직금 과세 범위를 정해달라는 내용의 입법 청원을 국회에 제출한 인물이다.

그런데 현행법 체계에서 종교인 퇴직금의 과세 범위에 아무런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소득세법이 아니라 그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다. 소득세법 시행령에 따르면 종교인 퇴직소득에는 일반적 퇴직소득과 같은 과세 기준이 적용된다.

국세청 “종교인 소득은 과세 대상”

기재위 소속 의원들의 말처럼 입법 실책일까? 기획재정부(기재부)는 이번 법안에 찬성 의견을 밝혔지만 3월28일 조세소위에 나온 김병규 기재부 세제실장의 설명은 미묘하게 엇나갔다. 김광림 의원(자유한국당)이 “그때(2015년 당시) 빠뜨린 거예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지요?”라고 묻자 김 세제실장은 “빠뜨린 것은 아니고요. 그때는 문제 제기가 사실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개정안의 조항이 “예외 규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입법은 단순히 세부 기준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방향 수정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018년 이전 퇴직 종교인은 세금 안 내도 된다”라고 말했다.
현행 소득세법과 시행령이 실제로 소급입법이라면 기재위의 기민한 입법은 당위성이 있다. 과세제도가 도입되기 전 형성된 소득에 세금을 물리는 것은 일견 불합리해 보인다. 그런데 4월4일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전체회의에서 소득세법 개정안을 법안심사소위에 회부해 더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회계사 출신인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은 현행법이 소급 과세라는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채 의원 주장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우리 법에 ‘종교인의 소득은 비과세’라는 조항은 없다. 2018년 이전에도 정부가 종교인의 활동을 근로로 해석하면 소득세를 징수할 수 있었다. 그간 종교인 과세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이유는 법적 근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세무 당국이 적극성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관행을 법률로 못 박는 법안은 종교인과 비종교인 간의 조세형평성을 해친다.

공식적으로 세무 당국은 종교인 소득이 과세 대상이라고 밝혀왔다. 국세청 홈페이지에는 1997년 이래 “성직자 소득은 그 종류에 따라 근로소득세 또는 법인세 징수 대상”이라고 답변해온 자료가 있다. 조세 분쟁을 심판하는 조세심판원은 2014년 결정례에서 그 근거를 제시했다. “(헌법은) 소득세법 등에서 종교인에 대한 비과세를 규정한 내용이 없으므로 종교인도 당연히 납세의무를 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며, 과세를 하겠다는 공적 견해의 표명이 없었으므로 신의성실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는 주장 역시 헌법 및 소득세법 등에 반하는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종교단체의 양도소득세 비과세 관행을 인정하지 않은 2008년 대법원 판례도 참고할 만하다. “납세자에게 받아들여진 세법의 해석 또는 국세 행정의 관행이란 비록 잘못된 해석 또는 관행이라도 특정 납세자가 아닌 불특정한 일반 납세자에게 정당한 것으로 이의 없이 받아들여져 납세자가 그와 같은 해석 또는 관행을 신뢰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고 인정될 정도에 이른 것을 말하고, 그러한 해석 또는 관행의 존재에 대한 입증책임은 그 주장자인 납세자에게 있다.”

모순되게도 법을 바꿔 종교인 과세를 ‘도입’하면서, 형식적으로나마 세무 당국이 견지하던 종교인 과세 원칙은 2018년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것이 됐다. 4월4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행법상) 2018년 1월1일 이전에 퇴직하신 분은 소득세도 안 내고 퇴직소득세도 안 낸다”라고 못 박았다. 홍 부총리는 “종교인들도 5월에 (퇴직소득) 신고를 해야 한다. (중략) 그 이후에 국회에서 이 법이 개정되면 갱신 청구해서 환급해줘야 된다”라고 말했다. 채이배 의원은 “법 통과가 가장 어려운 이유가 기재부의 반대다. 기재부는 왜 세입을 걷는 데에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안 내나?”라고 말했다. 4월1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종교인 퇴직소득세 특혜법 당장 철회돼야 합니다’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으나 참여는 저조하다. 4월11일 현재 2350명이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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