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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자 현상] ‘반페미니즘’ 전사들의 탄생

지난 호에서 <시사IN>은 20대 남성이 자신을 약자로 인식한다고 분석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물어본 이번 호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20대 남성 25.9%가 페미니즘에 강한 반대를 표하는 ‘확고한 정체성 집단’으로 확인됐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2019년 04월 22일 월요일 제6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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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과 한국리서치는 제604호 ‘20대 남자 그들은 누구인가’에서 ‘20대 남자 현상’의 실체를 파헤쳤다. 208개 문항에 이르는 광범위한 조사 결과, 우리는 ‘권력이 남성을 차별한다는 인식’이 현상의 핵심이라고 지목했다. 20대 남성의 인식세계에서, 남성은 약자다. 능력은 남자가 뛰어나지만 권력이 남성을 차별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남성 우위 사회에서 여성 우대 정책을 ‘역차별’로 인식하던 윗세대 남자들과도 결이 다르다. 남성이 약자라는 인식, 남성이 마이너리티라는 정체성이 등장했다. 그래서 역차별이 아니라 그냥 차별이다. 젠더와 권력이 만나는 지점이 핵심이다. 둘 중 하나만 사라져도, 20대 남성 여론의 특수성이 따라서 사라진다.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은 문제의 답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문제 그 자체다. 기성세대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정체성을 설명해야 한다. 지난 호(제604호) 기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담은 그래프를 다시 보자(아래 <표 1>). ‘남성 차별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20대 남성은 30.5%다. 30세 이상 남자로 가면 이 응답은 8.2%에 그친다. 22.3%포인트 차이가 난다. 

이 숫자는 보기보다 더 의미심장하다. 젠더와 권력이 만나는,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이 드러나는 거의 모든 문항에서, 20대 남성의 응답은 30세 이상 남성보다 20%포인트 정도 차이가 난다. 문항이 무엇이든 젠더와 권력 문제라면 이 폭이 거의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것은 젠더·권력 문제에 일관되게 격하게 반응하는 ‘공고한 정체성 집단’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 집단의 크기는 20대 남성이 30세 이상 남성보다 20%포인트 정도 더 크다고 예상할 수 있다.


사실일까. 데이터로 검증해보았다. 우리가 던진 질문 208개 중,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를 직접 물어본 질문은 여섯 개다. 제604호에서 분석한 것처럼, 페미니즘은 남성을 약자로 만든 권력게임의 상대, 그러니까 ‘주적’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에 대한 질문은 ‘주적’에 대한 태도를 측정한다. 질문 여섯 개는 18쪽 <표 2-1>에 실려 있다.
우리는 이 질문의 답변을 5단계 척도로 받았다. ‘매우 동의’ ‘약간 동의’ ‘모르겠다’ ‘별로 동의 안 함’ ‘전혀 동의 안 함’ 5단계다. 이것으로 ‘페미니즘 찬반 지수’를 계산했다. 페미니즘에 반대·부정하는 응답을 -2점(강한 반대), -1점(약한 반대)으로 계산한다. 찬성·긍정 응답을 +2점(강한 찬성), +1점(약한 찬성)으로 계산한다. ‘모르겠다’는 0점으로 계산한다. 질문이 총 여섯 개이므로, 페미니즘에 대한 가장 강한 반대는 -12점, 가장 강한 찬성은 +12점이 된다.

그 결과가 20쪽 <표 2-2>다. 여성은 페미니즘 찬반 지수에 세대 간 차이가 거의 없고, 모든 세대가 ‘중립’인 0점 주위에 몰려 있다. 그런데 남성은 확연한 세대 차이를 보여준다. 어릴수록 마이너스값이 크다. 즉, 어릴수록 페미니즘 반대 성향이 커진다. 20대 남자는 평균 -6.3점이다. 페미니즘 찬반의 성차는 기성세대로 갈수록 사라져서, 50대 이상은 남녀 간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의 관심사는 ‘공고한 정체성 집단’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만약 페미니즘에 대한 강한 반대가 정체성으로까지 형성되었다면, 그 응답자는 문항이 무엇을 묻든 간에 일관되게 ‘강한 반대’를 표했으리라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페미니즘은 남녀의 동등한 지위와 기회 부여를 이루려는 운동이다”라는 문항은 페미니즘의 사전적인 정의를 거의 그대로 쓴 것이다. 정체성 집단은 여기에도 ‘강한 반대’를 표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이 문항에 ‘강한 반대’를 표한 20대 남자는 44.5%다. 30세 이상 남자는 15.8%다.

우리는 여섯 개 문항 모두에 ‘강한 반대’를 표한 응답자, 즉 페미니즘 찬반 점수가 -12점인 응답자를 확인해보았다. 이것은 매우 높은 기준이다. 특정 주제에 강한 확신을 가진 응답자라도 모든 문항에 일관되게 강한 의견을 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여론조사에서는 대부분 온건한 응답이 비율상 가장 많이 나오고, 양 극단으로 갈수록 응답자는 줄어드는 경향(가운데가 볼록한 종 모양 곡선을 그린다)을 보인다. 더욱이 사람들은 관심이 적은 문제에는 강한 의견을 표하지 않으므로, 일관되게 강한 의견을 표하려면 그 주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 모든 허들을 넘어서 여섯 문항 모두에 강한 답변을 내놓은 응답자는 극소수만 잡히는 것이 정상이다. ‘-12점’을 정체성 집단의 기준으로 설정한 것은 지나치게 가혹해서 자칫 분석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25.9%네요.” 분석을 총괄한 정한울 한국리서치 연구위원(정치학 박사)이 데이터에 이 모델을 적용하더니, 거의 감탄사에 가깝게 말했다. 20대 남자 응답자 중에 25.9%가 가혹한 기준을 만족했다. 20대 남자 넷 중 한 명은 페미니즘에 대해 무엇을 물어도 ‘강한 반대’로 답할 만큼 이 주제에 관심이 많고 의견이 단호하다. 이 정도라면 ‘정체성 집단’이라고 불러도 될 크기다. 예상을 뛰어넘는 숫자에 우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20쪽 <표 2-3>은 페미니즘 찬반 지수의 분포를 세대·성별에 따라 보여준다. -12점은 ‘확고한 반대자들’이다. 이들이 우리가 주목하는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 집단’이다. -6점에서 -11점 사이 응답자는 ‘강한 반대자들’이다. -1점에서 -5점은 ‘약한 반대자들’로 분류했다. 0점은 ‘완전 중립’이다. 답변의 합이 플러스인 응답자들도 같은 기준으로 분류했다. +12점 응답자는 ‘확고한 찬성자들’이 된다.

<표 2-3>은 흥미로운 발견을 보여준다. 첫째, 우리의 가혹한 기준을 통과한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 집단’은 20대 남성에서 25.9%이고, 30세 이상 남성에서 7.7%다. 둘의 차이는 18.2%포인트다. 이 숫자는, 208개 문항 여론조사에서 20대 남성이 보여주는 특수성의 크기를 잘 설명한다. 20대 남성은 젠더와 권력이 얽힌 질문이면 거의 어김없이 30세 이상 남성 대비 20%포인트 안팎으로 튀는 대답을 내놓았다. 뒤에서 개별 문항들을 검토하면서, 이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 집단’이 20대 남자 현상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넷 중 한 명이 강고한 정체성 집단이라는 사실은, 이들이 주위에서 자신의 ‘동지들’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른 세대와 성별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가 ‘-12점’인 사람은 동조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20대 남자들은 또래집단에서 동조자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동의하는 집단이 충분히 크기 때문에, 서로 같은 의견을 주고받으며 강화하는 과정이 수월하게 일어난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15일 부산 동래구 중앙여고에서 수험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있다.

‘넷 중 한 명’도 가혹한 기준 덕에 과소평가된 숫자다. -6점에서 -11점 사이 ‘강한 반대자들’도 현실에서는 -12점의 또래들과 의견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며, -12점 집단에 합류할 잠재적 예비군이다. 20대 남자에서 두 그룹을 합한 크기는 58.6%다. 20대 남성 열 명 중 여섯 명은 반(反)페미니즘을 주제로 아주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다. 숫자가 보여주는 결론은 선명하다. 20대 남자들 사이에서 반페미니즘 마이너리티 정체성 집단은 지속 가능한 의견그룹으로 문턱값을 한참 넘겼다. 자생력이 확보되고도 남는 크기다.

둘째, +12점 집단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모든 질문에 일관되게 강경한 ‘페미니스트 정체성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20대 남자 현상을 설명하는 가설의 하나로, 20대 여자들이 극단적인 페미니스트가 되었기 때문에, 20대 남자들은 그 반작용으로 반페미니스트가 되었다는 설명이 있다. 우리 조사는 이 가설을 기각한다. 여성들이 +12점으로 몰려가는 현상은 없다.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이 서로를 밀어내면서 둘 다 극단화된다는 관찰은 온라인 공간이 만들어낸 착시다. 페미니즘 찬반 지수는 지금 벌어지는 현상이 매우 비대칭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그래프의 가장자리 극단값은 20대 남자만 두툼하다.

이제 이 -12점 집단이 어떻게 20대 남자 현상을 만들었는지 살펴볼 차례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를 확인해야 한다. 첫째, 20대 남자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되었으나 사실은 ‘전 세대에 보편적 현상’을 걸러내야 한다. 둘째, 20대 남자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되었으나 사실은 ‘20대 남녀에 공통된 현상’을 걸러내야 한다. 이들을 걷어내고 보아야 -12점 집단의 위력이 온전히 드러난다.

20대 남자 현상에 대한 기존 해석

20대 남자 현상에 대한 설명으로 유력하게 제기되어 온 해석은 이렇다. 첫째, 20대 남자는 공정성에 유난히 민감하고 불공정에 대해 반대하는 성향도 매우 크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는 이들이 불공정에 민감하다는 본질에 딸린 현상이다. 둘째, 20대 남자는 경쟁의 가치를 특히 높이 평가한다. 경쟁을 중요하게 보는 이들의 눈에 페미니즘은 경쟁의 가치를 훼손하기 때문에 반대한다. 가치 지향이 다른 세대가 출현했고, 이들의 새로운 가치에 우선 거슬린 문제가 페미니즘일 뿐이라는 해석이다. 데이터는 어떨까?

우리 조사는 둘 다 지지하지 않는다. 공정에 민감하고 불공정에 반대하는 태도를 20대 남자가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머지 세대·성별도 마찬가지다. “경쟁에 대한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문장에 동의하지 않는 응답은 20대 남자에서 65.1%다. 전체 평균은 71.9%로 큰 차이가 없다.
ⓒ여성가족부 제공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2월14일 30~40대 남성 1인 가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정에 대한 집착과 사회가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결합하면 독특한 공정 관념이 등장한다. 객관식 시험에 대한 강한 선호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 태도가 20대 남자들의 특징으로 검토되기도 했으나, 이 역시 세대·성별을 떠나 보편적인 현상이다. “객관식 채점이 아닌 평가자 주관에 의한 평가는 신뢰하기 어렵다”라는 문장에, 20대 남자의 76.1%가 동의했다. 전체 평균은 83.2%다. 법의 집행, 취업기회 등의 공정성을 묻는 여러 설문에서도 20대 남자는 평균적인 수준이다.

경쟁에 대한 태도도 비슷하다. 20대 남자는 경쟁의 결과로 나오는 차이를 받아들이고 경쟁의 가치를 높이 친다. 다른 세대·성별도 다들 그렇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더 많은 몫을 가져가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문장에 20대 남자의 82.1%가 동의했다. 전체 평균은 77.5%다. “경쟁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라는 문장에 20대 남자의 62.7%가 동의했다. 전체 평균은 66.2%다.

‘공정’과 ‘경쟁’은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둘 다 모든 세대·성별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다. 여기에 젠더 문제를 더해야 20대 남자의 차이가 드러난다. 20대 남자는 취업 기회나 승진·승급 기회 등이 남녀 간에 공정한지를 물으면 다른 세대·성별과 동떨어진 답을 내놓는다. 20대 남자 현상에서 젠더는 종속변수가 아니다.

이제 더 미묘한 차이를 다룬다. 20대 남자 현상 중에 어떤 것은 ‘20대 남녀 현상’으로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20대 남자들이 여유가 없어지고 여성 권리 신장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이유를, 한국이 저성장 사회에 진입했다는 데서 찾는 설명이 있었다. 저성장 사회에서는 기회가 줄어들고 미래 전망이 나빠진다. 그러면 마이너리티에 대한 배려가 줄어들고 가혹한 태도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20대 남자들이 저성장의 덫에 걸려서 여유가 사라진 것이 상황의 본질일까?

20대 남자가 보는 미래 전망이 어두운 것은 사실이다. “나는 나의 부모님 세대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을 것이다”라는 문장에, 20대 남자의 62.2%가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20대 여자도 59.8%가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의 기회를 빼앗고 있는지 열어주고 있는지 물었다. 20대 남자의 59.3%는 “빼앗고 있다”를 골랐다. 20대 여자는 50%였다(응답자 전체 평균은 43.4%). 기회가 닫히고 있다는 두려움이 남자에게서 좀 더 많이 보인다. 하지만 여자도 만만치 않다.
ⓒ시사IN 조남진
20대 남성 넷 중 한 명이 페미니즘에 대한 강한 반대 집단이라는 조사 결과는
이들에 대한 동조자가 더욱 늘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마이너리티에 대한 태도는 20대 남자가 유난히 가혹할까? 난민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으로 측정해보았다.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의견은 20대 남자에서 69.3%였다. 20대 여자도 71.3%로 거의 차이가 없다. 30세 이상 남자는 43.4%, 30세 이상 여자는 56.7%였으니, 20대가 기성세대보다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하지만 20대에서 남녀 차이는 관찰되지 않는다.

‘공정’ ‘경쟁’ ‘저성장’ ‘기회 축소’는 여전히 중요한 키워드다. 그것들이 전제로 깔려야만 20대 남자들이 보여주는 특유의 차별의식을 설명할 수 있다. 공정이 무너졌다는 인식, 경쟁이 아니라 권력의 팔 비틀기로 여성들이 자리를 차지한다는 차별 감각, 그리고 저성장과 기회 축소가 불러오는 긴장과 소수자 밀어내기. 이런 토양이 없다면 20대 남자 현상은 등장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모든 토양은 20대 남자들만의 것으로 볼 수 없다. 여기에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 집단, 그러니까 -12점 집단을 집어넣어야 20대 남자 특유의 현상이 비로소 등장한다. 20~21쪽 <표 3>부터 <표 6>까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하의 표에 등장하는 ‘반페미니즘 신념형 20대 남성’은 바로 이 -12점 집단을 뜻한다.

<표 3>은 이 -12점 집단의 특징을 규명할 수 있는 자료다. “결혼을 하면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는 문장을 주고 동의하는지 물었다(<표 3-1>).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신념형 20대 남성과 그 외 20대 남성이 사실상 차이가 없다. 신념형 20대 남성은 60.8%가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그 외 20대 남성은 62.7%다. 두 집단은 결혼을 해도 사회적 성취를 방해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같다. <표 3-2>도 함께 보자. 자녀를 가질 경우를 놓고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도 두 집단은 사회적 성취를 방해받지 않으리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신념형 20대 남성은 56.5%, 그 외 20대 남성은 57.4%).

“남성 차별이 더 심각하다” 100% 동의

20대 여성들은 결혼과 자녀가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어렵게 할 것이라고 남자들보다 훨씬 많이 걱정한다. 결혼은 62.2%가, 자녀는 78%가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답했다. 이 주제로 남녀 차이는 크다. 하지만 남자들 사이에서 신념형 집단과 그 외 집단의 차이는 없다. 이 질문은 젠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나, 권력과 차별의 스위치를 누르지는 않는다. 이럴 때는 신념형 20대 남성 집단도 전체 20대 남자의 의견과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권력과 차별의 스위치가 눌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결과가 <표 3-3>이다. “가족을 꾸리는 것은 여성에게 유리하다”라는 문장을 제시했다. 젠더 문제와 권력의 문제가 동시에 들어오자(“여성에게 유리하다”), 신념형 20대 남성 집단은 곧바로 반응한다. 65.2%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그 외 20대 남성 집단은 37.7%만 동의했다. 20대 여성은 14.8%만 동의했다.

이 숫자는 보기보다 더 묘하다. 결혼과 자녀가 사회적 성취를 방해하는 정도를 더 강하게 인식하는 성별은 단연 여성이다. 남자들은 결혼과 자녀가 사회적 성공 전망을 낮출 것이라고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신념형 20대 남성 집단은 “가족을 꾸리는 것은 여성에게 유리하다”라는 문장에 동의한다. 신념형 20대 남성 집단이 <표 3>에서 보여준 일련의 대답에서는 논리적 일관성보다는 단호한 결의가 더 두드러져 보인다. 그 외 20대 남성 집단도 충분히 페미니즘에 비판적인데도(이 집단에는 -11점 응답자도 섞여 있다), 신념형 20대 남성 집단이 보여주는 결의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이 신념형 20대 남성 집단이 진지하고 진심이라는 징후가 있다. “지금 아이를 낳는다면 딸이 더 살아가기 좋을 것이다”라는 문장을 주고 찬반을 물었다. 이렇게 물어보면, 자신이 당사자가 되어 남녀차별 문제를 판단할 때보다 사회 현실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만든다. 자기 세대의 문제에는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왜곡하는 주장을 내놓을 수 있지만, 자녀를 놓고 물어보면 그런 경향은 상당히 줄어든다. 때문에 이 질문은 한국 사회의 성차별 문제를 객관적으로 어떻게 판단하는지 측정하는 데 유용하다.

그 결과가 <표 3-4>다. 신념형 20대 남성은 딸이 더 살기 좋을 세상이라는 데 66.7%가 동의했다. “매우 동의”한다는 강한 확신도 41.7%나 되었다. 그 외 20대 남성이 동의하는 정도는 37.7%에 그쳐서 차이가 크다. 20대 여성은 14.8%만 동의했다. -12점 집단은 반(反)페미니즘이 남자인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주장하는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이건 진심이다. 정체성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이유다. 이 질문에 30세 이상 남성은 42.4%가 동의했는데, 그 외 20대 남성 집단의 의견과 비슷하다. 즉, 정체성이 형성된 수준까지 나아간 -12점 집단을 빼고 보면, 20대 남자 현상은 사라진다.

이 ‘진심’은 공정과 같은 20대 남자 현상의 핵심 키워드에도 영향을 끼친다. 스위치를 누르는 질문이 등장하면, -12점 집단에서는 공정에 대한 감각 자체가 달라져버린다. 그 결과가 <표 4>다. 앞서 우리는 공정에 대한 감각은 20대 남자 현상이 아니라 보편적 감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공정 문제에도 젠더와 권력을 투입하면 20대 남자 현상이 다시 등장한다.

“남녀의 소득이 비슷한 사회가 공정하다”라는 문장을 주고 찬반을 물었다. 당위에 가까운 문장이어서 반대 의견을 내기가 쉽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런 문항을 두고 “응답자의 답변을 ‘당위적인 정답’으로 유도하기 때문에 좋지 않은 질문이다”라고 평가한다. 웬만하면 당위에 따라 답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신념형 20대 남성 집단은 웬만하지 않다. 58.3%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집단은 당위적인 질문에도 반대 방향으로 향할 정도로 확신이 강하다. 다만 다른 이들로부터 지지받지는 못한다. 그 외 20대 남성 집단에서 “동의하지 않는다”는 33.9%다. 30세 이상 남성들은 25%만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공정일까. 여성의 소득이 낮은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성이 일로 성공하려는 노력이 남성보다 약하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을 주고 찬반을 물었다. <표 4-2>다. 신념형 20대 남성은 78.3%가 이에 동의했다. 그중에서도 “매우 동의”가 많다. 52.2%다. 남녀 간의 소득은 불평등하다. 하지만 공정하다. 왜? 남성이 일로 성공하려는 노력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 의견에는 그 외 20대 남성 집단과 30세 이상 남성 집단에도 은근한 지지를 보내지만(“동의한다” 각각 47.7%와 52.8%), 신념형 20대 남성이 보여주는 단호한 확신은 부족하다. “매우 동의”는 각각 16.4%와 11.9%에 그친다.

남녀 소득격차가 성차별 때문이라는 주장은 결단코 동의할 수 없는, 공정성을 허물어뜨리는 주장이 된다. “여성의 소득이 낮은 이유는 성차별 때문이다”라는 문장(<표 4-3>)에, 신념형 20대 남성은 무려 78.3%가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별로 동의 안 함” 17.4%와 합치면 95.7%가 반대했다.

95.7%라는 압도적인 숫자는, 이들 -12점 집단이 보는 ‘사안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증언한다. 성차별은 없다. 그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성차별이라는 말 자체가 여성과 페미니즘이 구사하는 권력의 언어다. 즉, 이 말이야말로 남성 차별의 상징이라고 할 만하다. 성차별을 바로잡겠다는 명분으로 남성을 차별해온 것이 바로 사안의 본질이다. 이에 견주면, 다른 남자들은 우유부단해 보일 정도로 멀찍이 떨어져 있다. 그 외 20대 남성 집단에서 “동의 안 함” 응답은 합쳐서 55.9%다. 30세 이상 남성은 53.2%다. 꽤 높다. 하지만 95.7%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주인공인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 집단, 즉 -12점 집단, 신념형 20대 남성 집단은 그야말로 불순물 한 점 없는 합의에 도달한다. “지금 시대는 여성 차별보다 남성 차별이 더 심각하다”라는 문장에, 100%가 동의했다(<표 4-4>).

이것은 왜 차별이며, 왜 불공정인가. -12점 집단의 세계에서, 능력만 놓고 보면 남성이 단연 여성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중·고교 교육과정, 대학 입시, 취업시험, 취업 후 업무능력 등 네 개 영역에서 남자와 여자 중에 누가 더 유능한지를 각각 물었다. 그 결과가 <표 5>다. 신념형 20대 남성, 그 외 20대 남성, 20대 여성 세 집단의 응답만 표시했다. 세 집단은 모두 초·중·고교 교육과정과 대학 입시에서는 여자가 더 유능하다는 쪽으로 쏠린다. 취업시험에서는 세 집단 모두 남자의 손을 들어주지만 큰 차이는 아니다. 주목할 만한 차이는 취업 후 업무능력 평가에서 드러난다.

“남성 업무능력이 더 뛰어나다” 60.9%

신념형 20대 남성 집단은 업무능력에서 남성이 뛰어나다는 신념을 가장 두드러지게 갖고 있다(60.9%). 남녀 임금격차도 이것으로 정당화된다. 업무능력은 남자가 뛰어나다. 임금도 남자가 더 많이 받는다. 노동시장은 공정하게 굴러간다. 하지만 국가권력이 개입하는 법 집행이나 양성평등 정책은 엉망진창이다. 불공정의 온상은 권력이 젠더와 만나는 곳이다.

이것으로 다시 한 번 확인된다. 공정은 중요한 키워드다. 하지만 이 현상 고유의 본질은 아니다. 젠더와 권력의 조합이라는 스위치는 ‘무엇이 공정한가’라는 개념 자체를 재구성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 힘이 고스란히 작용하는 집단이 20대 남자 중에 유난히 많고, 이들이 스위치가 눌렸을 때 20대 남자 여론은 거의 일관되게 이들의 크기만큼 출렁인다.

<표 6>은 일련의 과정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결과물이자, 여론이 20대 남자 현상에 주목하게 만든 최초의 계기를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인데, 신념형 20대 남성들의 지지도는 16.7%에 그쳤다. “매우 못함”이라는 단호한 응답도 58.3%나 된다. 이 신념형 20대 남성만으로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집단에서 지지 철회의 작동 원리가 가장 순수한 형태로 드러난 것이라면, 20대 지지율 하락도 그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페미니즘에 대한 질문 여섯 개를 이용해,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마이너리티 정체성 20대 남성을 25.9%로 추정했다. 문항들을 분석한 결과, 이 25.9%는 젠더와 권력이 결합하는 문항에서 단호하게 반응했고, 그 양상도 일관성이 있었으며, 다른 집단들의 응답과는 분명하게 엇갈리는 흐름을 보여주었다. ‘정체성’이라는 강한 호명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근거였다.

‘공정’ ‘경쟁’ ‘저성장’ ‘기회 축소’는 20대 남자 현상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토양이지만, 20대 남자 특유의 현상은 아니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20대 남자는 공정에 민감하다. 하지만 모든 세대·성별이 다 그렇다. 20대 남자는 경쟁을 좋은 것이라고 긍정한다. 하지만 모두들 그런다. 20대 남자는 기회가 축소되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20대 여자도 마찬가지다. 토양이란 이런 의미다. 공정과 경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권력이 결과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려는 시도를 혐오하면서,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고 느껴 소수자 보호에 덜 관대해지는 토양이다. 여기에 젠더와 권력의 조합이 씨앗으로 뿌려지자, 20대 남자들 사이에서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 집단이 공고한 블록을 형성했다. 이들을 핵심 동력으로 해서 20대 남자 현상은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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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사에서 ‘반(反)페미니즘’ 신념형 20대 남성의 문재인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는 16.7%로 나타났다.


우리는 지난 호에서 20대 남자 현상의 실체를 확인했고, 이번 호에서 그 현상의 핵심 동력과 작동 원리를 검토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한국 사회는 왜 공정에 민감하고 경쟁에 호의적인가? 그것을 보편적 정서로 만들어낸 힘은 무엇이고, 그 결과는 무엇인가? 저성장은 어떤 힘으로 작동하는가? 기회가 줄어들면 사회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리고 왜 다른 문제가 아니라 젠더와 권력의 조합이 20대 남자를 움직이게 만들었나? 그러니까, 이 토양은 왜 형성되었고, 왜 하필 이런 꽃이 피었나? 지금까지 ‘무엇이’와 ‘어떻게’를 확인했다면, 남은 질문은 ‘왜’일 수밖에 없다.

이 답은 숫자 안에서만 구할 수 없다. 숫자와 이론이 둘 다 필요하다. 다음 호인 제606호에서는 사회현상을 해석하고 설명해온 여러 이론의 도움을 받아 이 마지막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이제 숫자 밖으로 나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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