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반복되는 영아 유기 ‘비밀 출산’할 권리

영아 유기 사건은 매년 100건 이상 발생한다. 신원을 밝히지 않고 출산할 수 있는 베이비박스 제도는 논란이 뜨겁다. 산모의 ‘비밀 출산’을 지원하는 특별법은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제천·영주 김영화 기자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4월 15일 월요일 제604호
댓글 0
객실 내부는 빈자리가 많았다. 대학생 ㄱ씨(21)는 3월29일 오전 11시55분 대전역에서 출발하는 충북선 무궁화호 1707 열차를 탔다. 충북선은 제천역까지 신탄진역, 오송역, 증평역 등 12개 역을 지난다. 대전역에서 ㄱ씨 거주지가 있는 충주역까지는 총 1시간35분이 걸렸다.

충주역에서 열차의 종착역인 제천역까지는 30분이 더 걸린다. 종착역에 도착한 열차는 여객이 빠져나간 뒤 차량 점검과 세척을 위해 인근 선로로 옮겨진다. 3월29일 오후 2시10분께 충북 제천역에 정차돼 있던 무궁화호 1707호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코레일 하청 청소업체 ‘행복한 세상’의 직원 6명이 청소를 하기 위해 열차에 투입됐다. 열차의 마지막 객실인 4호차의 화장실을 청소하려고 한 직원이 닫힌 변기 뚜껑을 열었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변기 안에는 신생아가 물에 잠겨 있었다. 탯줄이 달린 상태의 여자아이였다. 이미 호흡과 맥박은 그쳤다. 제천역의 한 관계자는 “사건 당일에 4호차에 탄 여객이 많지 않았다. 충주역에서 제천역에 오기까지 30분간 4호차 화장실을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3월29일 충북선 제천역 무궁화호 화장실 변기에서 숨진 채 발견된 신생아를 경찰이 옮기고 있다.
제천역장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제천소방서 관계자는 “영아 상태를 봤을 때 건져서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물에 빠져 있던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된 상태였기 때문에 육안으로 봤을 때도 소생 가능성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제천경찰서가 현장 감식을 진행한 이후 신생아는 곧바로 인근 제천서울병원으로 옮겨져 정확한 사인을 파악하고자 부검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3월30일 오전 6시30분, 제천역에서 40㎞ 떨어진 충주경찰서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ㄱ씨였다. 그는 “열차에서 발견된 아이가 내 아이다. 언론 보도를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친구와 상의 후에 112에 신고했다”라고 경찰에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주경찰서는 그의 신병을 확보해 영주지방철도 특별사법경찰대(사법경찰대)로 넘겼다. 철도시설 내에서 일어난 사건사고 및 범죄는 일반 경찰이 아닌 철도특별사법경찰대가 수사를 담당한다. 사법경찰대는 현재 그를 입건해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다. 영주지방철도 사법경찰대 수사과의 한 관계자는 “민감한 사안인 데다 현재 수사 중이라 말씀을 드릴 수 없다”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사건이 발생했던 무궁화호 1707 열차 4호 차량은 현장 보존을 위해 따로 분리됐다가 청소를 마친 후 제천역 예비차량으로 남겨져 있다.

열차 영아 유기 사건이 발생한 3월29일, 다른 지역에서도 영아 유기 사건이 알려졌다.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의 한 주택가 대문 앞에 있는 화분용 욕조였다. 지나가던 사람이 담요에 싸인 영아를 발견했지만 이미 숨은 멎어 있었다. 인천 연수구 연수동의 한 교회 앞에서도 신생아가 발견됐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이 아이는 병원 치료를 마친 후 아동보호기관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영아 유기 사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7년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6월까지 최근 10년간 1067건이 발생했다. 매년 평균 100건 이상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 역시 형법상 영아유기죄에 해당하는 사건만 추린 것으로, 미혼 부모가 아동보호시설 등에 아이를 두고 가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실제 수는 더 많아진다. 영아유기죄(형법 제272조)는 직계존속이 영아를 유기할 때 2년 이하의 징역 혹은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영아를 유기한 사건 중 검거된 경우는 40% 정도다.

유엔은 베이비박스 철거 권고

여성가족부가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라 미혼모에 대한 심리·주거·출산·양육 등을 지원하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사각지대가 생긴다. 2009년 ‘베이비박스’를 국내에 처음 도입한 주사랑공동체교회에 따르면 지금까지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영아는 총 1558명이다. 2012년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는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베이비박스 이용률도 2배 이상 늘었다. 이전까지 연간 100건도 되지 않던 베이비박스 이용률은 2013년 200건을 넘었고 2016년 223건, 2017년 210건, 2018년 217건 등으로 늘어났다. 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는 “출생신고 의무화로 입양이 어려워지면서 베이비박스 이용률이 대폭 증가했다. 출생신고를 못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안전하게 출산을 대비하고 양육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제공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가 베이비박스에서 아기를 옮기고 있다.
미혼모의 출산과 육아를 돕고 있는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오영나 대표는 “영아를 유기하는 미혼모들은 공통적으로 고립된 상황,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편견에 시달린다”라고 말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아이 아빠가 대부분 연락을 끊고 도망가고, 가족에게도 숨기다 보니 ‘고립된 임신’ 상태에 처하게 된다.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영아 유기 사건에서 아기가 버려지는 장소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공중화장실, 변기, 야산, 주택가, 다리 밑이다. 미혼모 보호시설을 찾는 임신부 가운데도 몇 달간 복대로 부른 배를 감추고 숨겨오다 자취방, 빈집 등에서 홀로 출산을 한 경우가 종종 있다.

‘익명 출산권’을 주장해온 독일·체코·폴란드 등 일부 유럽 국가는 정부와 민간(산부인과 병원)에서 베이비박스를 설치해 산모가 신원을 밝히지 않고도 안전하게 아기를 출산하고 입양까지 완료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논란은 뜨겁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이들 국가에 설치된 베이비박스가 영아 유기를 부추긴다며 철거를 권고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 주사랑공동체교회가 설치한 베이비박스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실상 아동 유기를 확대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어왔다(<시사IN> 제444호 ‘저는 작은 상자에서 태어났어요’ 기사 참조).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해 2월 출생신고를 꺼리는 미혼모가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비밀 출산’을 지원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발의했다. 당사자가 비밀 출산을 원하는 경우 가명으로 출생신고를 받을 수 있도록 하되 아이의 친생부모에 대한 알 권리를 위해 법원이 대신 정보를 관리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한 베이비박스 대신 긴급 영아보호소를 운영하고, 미혼모가 산전 산후에 의료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현재 해당 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1년 넘게 계류 중이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