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지만 기사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확인하는 건 늘 긴장되는 일이다. 지난 연말에도 메일을 한 통 받았다. 기사를 잘 읽었다고 시작되는 메시지에는 내가 쓴 기사의 링크가 첨부되어 있었다. 9년 전 기사였다. 당황스러웠다.

9년 전, 닥치는 대로 산부인과를 돌아다녔다. 일부 보수적인 산부인과 의사들이 동료 의사들을 고발해 낙태 단속이 심했다. 나는 서울 시내의, 어딘지 허름해 보이는 산부인과를 골라 낙태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대부분 안 한다고 했지만 두 군데서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한 군데는 꽤 높은 금액을 불렀고 다른 곳은 단속 이전의 비용을 요구했다. 낙태 단속이 바꾼 풍경을 고발하는 기사였고 10여 년 기자 생활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기억이 맞다면 100통 넘게 메일을 받았다. 100이면 99가, 낮은 가격의 산부인과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다. 낙태가 불법이라 벌어진 일이었다.

ⓒ시사IN 양한모
이번 독자 역시 산부인과를 알려달라고 했다. 절박한 마음에 옛 기사에서라도 지푸라기를 구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 기사가 나온 뒤에도 낙태 합법화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했고 ‘자연유산 유도약’이 등장했다. 인식이 바뀌었을지는 모르지만 제도가 따라주지 않는 이상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다. 예전 기사를 다시 읽다가 중학교 1학년 때 접한 도덕 시험 문제가 떠올랐다. 배점이 높은 서술형 문제였다. ‘낙태가 허용되는 다섯 가지 경우를 서술하시오.’ 어쩌다 본 책에서 불쌍해야(강간 등으로 임신) 낙태를 할 수 있다는 부분을 읽었던 게 기억났다. 맞힌 사람이 거의 없다며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10대의 성적에 대한 고민을 다룬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Sex Education)〉는 한 에피소드에서 낙태를 다룬다. 생명권이 먼저인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우선인지 하는 해묵은 프레임으로는 현실에 접근하기 불가능하다는 걸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낙태죄가 7년 만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미래의 어느 독자라도 다급한 마음에 검색을 하다 하다 9년 전 기사에까지 가닿지 않기를 바란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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