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 한 학생이 토론수업 주제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가져왔다. 그는 ‘코드 인사라고 하는데, 권력자면 입맛에 맞는 인사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라는 요지로 강변했다. 수업을 진행하던 심용환 작가는 깜짝 놀랐다. 헌법과 법률에 반하는 위법과 합법적인 권력 행사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블랙리스트 사태가 깊이 있게 다뤄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용환 작가는 최근 영화 〈1급 기밀〉을 봤다. 방산 비리와 관련된 공익제보자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사회적으로 뭔가 ‘해보려는’ 사람들에게 박한 세상이라는 걸 새삼 확인했다. 그도 ‘차디찬’ 시간을 보냈다. 3년 전 국정교과서 논란이 기점이었다. 학원 강사로 일하던 2015년, 기존 역사 교과서를 음해하는 ‘지라시’가 돌자 그는 ‘카톡 유언비어 반박문’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유명해졌고 언론 인터뷰에 나갔다. 학원가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업체와 스카우트 논의가 오갈 때였다. 면담이 무산됐다. 국정교과서 논란에 앞장섰던 게 문제였다.

ⓒ시사IN 신선영

정의로운 척하지 말라는 말을 면전에서 들었다. 어느 교사가 한 말도 상처가 되었다. “나도 학원 강사면 좋겠다. 그럼 할 말 다 할 텐데.” 강사야말로 시장에 의지해 사는 사람이고 보호막이 없다. 강의가 끊겼다. 한때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잘 살고 있다고 그가 말했다. 그는 연극계와의 인연으로 지난 1년여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진상조사위)’의 백서편찬 소위원회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사건의 전모를 깊숙이 들여다보며 블랙리스트 사태는 역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책을 썼다. 현대사가 아니라 ‘현재사’다. 〈우리는 누구도 처벌하지 않았다〉가 출간되었다.

특히 그가 파고든 인물은 김기춘이다. 2014년 5월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은 정무수석실을 중심으로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 배제 방침을 지시했다. 각종 문서에서 드러난 사실은 그가 매우 ‘열정적’이었다는 점이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나쁜 사람이라고 치부하기는 쉽지만 여든 가까운 나이에, 특권층으로 누릴 걸 다 누렸는데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를 추적하면 블랙리스트 조사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인물에 대한 관심은 높았지만 자료가 거의 없었다. 김기춘의 최근 30여 년 행적과 관련된 기사를 모두 찾아봤다.

김기춘은 확신에 찬 지도자였다. 그가 설계한 유신헌법의 시대에 정치의식은 곧 문화의식이었다. 그의 낡은 사고방식은 현재로 이어졌고 각종 시국선언 명단을 블랙리스트로 만들었다. 9473명의 명단 안에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안철수 팬클럽 소속 작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블랙리스트가 문화예술계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그 부분에서 블랙리스트를 재미없어한다. 너무 엉뚱한 데서 끌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광범위하게 끌어모은 자료를 토대로 국가정보원(국정원)과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의 주도하에 산하기관이 사업 지원을 배제했다. 종합적인 실행 메커니즘을 만들어낸 거다. 망상에 가까운 시대착오적 의식을 가진 사람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성실히 집행해나가는 게 충격적이었다.” 그는 책에서 블랙리스트 사태와 세계사 속 사건을 견준다. 김기춘은 ‘침략 행위’를 하면서도 ‘동아시아 해방’을 신념으로 삼았던 도조 히데키와 비교된다.

‘조윤선의 시대’는 사라지지 않는다

김종덕·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은 김기춘과 달랐다. 재임 당시 선진적인 변화를 역설했으면서도 부정부패나 관행 앞에서는 침묵했다. 조윤선의 경우 절대 권력자 앞에 좀 더 적극적이었다. 잘못된 걸 알면서도 지도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한 이유는 잠깐의 가책을 견디면 어마어마한 보상이 오기 때문이었다. 심 작가는 ‘김기춘의 시대’는 사라져도 ‘조윤선의 시대’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승리, 성공, 출세를 지향하는 시대의 욕구는 그대로 있다.

책에는 모든 이름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역사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 실행 과정은 매우 정력적으로 이루어지는데 한데 모아놓으니 그 방대함을 실감할 수 있다. 연극 분야에서는 국립극단에서 상연된 〈개구리〉의 예술감독 교체가 추진되었고 지원사업 배제 대상에는 15분 안팎의 짧은 공연도 포함되었다. 영화계는 모태펀드를 통해 ‘화이트리스트’ 영화를 지원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영화 〈변호인〉 배급사 ‘뉴(NEW)’는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다. 영향력은 구석구석, 치밀하게 미쳤다.

ⓒ시사IN 조남진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가운데)은 각종 시국선언 명단을 가지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김기춘 같은 기획자가 주도했지만 블랙리스트를 완성한 건 그 과정에 적극 가담한 공무원들이다. 작가는 그 기원을 한국형 관료제에서 찾는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자의 의지를 구현하는 한국형 관료들이 너무 손쉽고 무력하게 수족이 되었다. 이들은 거의 처벌받지 않았다. 심용환 작가가 진상조사위에 들어갔을 때 공무원들은 모두 책임을 ‘위’로 미루었다. 지도자에게 순응하는 문화가 너무 오래되었다. 공무원 개혁을 논할 때도 서비스, 행정 효율성만 강조되었지 공무원의 자율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는 적극 응한다.

처벌 없는 정의가 가능한가? 그의 핵심적인 질문이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취임 초 인터뷰에서 블랙리스트 실행 공무원들이 예술가들 처지에서는 가해자가 맞지만 본인 처지에서는 피해자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진상조사위는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해 책임규명 권고 대상 130명을 특정한다. 이후 문체부가 절반 수준인 68명에 대한 이행계획을 발표하며 문화예술계의 반발을 샀다. 심 작가는 “1947년 남조선 과도입법의원에서 친일파를 처단할 때 민족반역자, 부역자, 간상배 등으로 등급을 나누었다. 친일 정도에 따라 수위를 정한 것이다. 문체부 사무관은 부서 안에서 하급직이지만 산하기관에 지시를 내리는 위치이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블랙리스트 사업을 공모했던 기관장들은 공직만 맡지 못할 뿐 각자 대학으로 돌아가거나 현장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심 작가는 우리가 거꾸로 싸웠으면 한다고 말했다. 친일파 처단을 제대로 못했다면서 분통을 터뜨리기보다 ‘현재 살아 숨 쉬는 명백한 죄상’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작은 지점부터라도 승리해봤으면 좋겠다. 당장 김기춘에게 30년형을 내리지 못하더라도 공무원들이 법에 반하는 지시를 맹종할 경우 공소시효가 없도록 한다든지 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나가면 좋겠는데 그런 상상력이 없다.” 진상조사위에 있는 동안 대통령 기록물이나 국정원 자료 등 핵심 자료에는 접근할 수 없었다. 열람은 가능해도 문서화하는 데에 또 다른 절차가 필요하기도 했다. 그런 측면이 아쉬웠다.

“미래에 맞이할 악은 버닝썬인 것 같다”

그가 희망을 발견한 건 문화예술인, 특히 연극인을 보면서였다. 이들은 블랙리스트 사태 1년 전부터 ‘검열 반대’를 외치며 스스로 저항 단위를 만들어 투쟁의 정점에 섰다. 진상조사위에도 적극 참여해 성과를 냈다. “국정교과서와 블랙리스트의 공통점은 정권이 우습게 본 사건에 발목이 잡혔다는 것이다. 다른 것에 비해 쉬운 주제지만 국정교과서는 교사와 학부모가 엮여 있었고 문화예술은 생계가 얽혀 있었다. 연극계는 각광받는 장르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시장 자본의 영향을 덜 받으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국정교과서 논란 당시 인생의 행로가 바뀌었지만 심용환 작가는 ‘정의를 선택해 성공한 사례’라고 자평했다. 한국 사회는 축적된 민주주의의 힘이 생각보다 센 나라다. 사람은 충분히 자기 위치에서 적극적으로 정의로울 수 있다는 걸 경험하는 중이다. 대중의 관심과 개인의 관심사를 적절하게 병행해나가고 있다. 앞으로 전두환 시대를 낱낱이 분석해볼까 생각한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도 관심을 가지고 교류 중이다. 세월호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고통에 주목한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버닝썬’ 사건에 대해 몇 차례 언급했다. 과거의 악이 김기춘이라면 미래에 맞이할 악은 버닝썬인 것 같다고 예견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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