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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참담한 ‘인공지진’ 그 후

정부는 2017년 발생한 포항 지진이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포항 시민 대부분이 존재조차 몰랐던 지열발전소 탓에 생긴 일이다. 1년4개월째 체육관 텐트에서 지내는 이재민들도 있다. ‘피해자들의 현재’를 취재했다.

포항/글 김영화 기자·사진 신선영 기자 young@sisain.co.kr 2019년 04월 09일 화요일 제6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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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번호표 배부가 다 끝났습니다. 내일 다시 오이소.” 오후 1시가 되기도 전에 미리 만들어둔 번호표 120개가 동이 났다. “일찍 온다고 왔는데 우짜꼬….”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깊은 숨을 몰아쉬며 들어온 한 어르신은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사무실 문이 열리기 전인 오전 8시부터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도 간신히 80번대를 받았다. 대부분 머리가 희끗한 노인들이었다. 한 손에는 주민등록등본을, 다른 한 손에는 5만원권 지폐 두 장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소송에 필요한 수임료와 인지대였다. 3월25일 포항시 북구 신흥동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시민대책본부)’ 사무실은 지진 피해 손해배상 소송을 신청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접수원 6명은 점심식사도 걸러야 했다.

ⓒ시사IN 신선영
지진 피해 손해배상 소송을 신청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포항 지진 범시민대책본부’ 사무실.

2017년 11월15일 포항은 규모 5.4의 강진을 겪었다. 135명의 인명 피해와 850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났다. 사상 초유의 ‘수능 연기’ 사태를 만든 대형 재난이었다. 정부는 포항 지진과 지열발전 간의 연관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지난해 3월 공동연구조사단을 구성해 1년간 진상조사를 진행했다. 지난 3월20일 정부조사연구단은 포항 지진이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열발전을 위해 땅속으로 주입한 물이 단층대를 활성화해 지진을 촉발했다는 내용이었다.

어르신들 ‘피사의 아파트’ 보며 한숨

‘지진 도시’라는 오명을 벗자 책임을 묻는 목소리에 더욱 속도가 붙었다. 지난해 10월부터 정부와 지열발전소 운영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해온 시민대책본부 사무실로 수백명이 몰린 이유다. 사무실을 찾은 안충기씨(82)는 “정부가 책임이 있다고 하는데 지금 접수를 안 해놓으면 나중에 피해보상을 받지 못할까 봐 왔다. 2년 가까이 책임자들이 제대로 대응을 안 하니 이렇게 혼란이 가중되는 게 아니냐”라며 언성을 높였다. 시끌벅적한 인파 사이로 ‘인공지진 정부 책임’ ‘관계자를 수사하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시사IN 신선영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에 있는 포항지열발전소(사진)는 지진 발생 후 가동이 중단되었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 인적이 드문 도로 가에 위치한 지열발전소에는 철탑처럼 생긴 시추 장비만 덩그러니 솟아 있었다. 2012년 9월25일 첫 삽을 뜬 지열발전 사업은 ‘메가와트(MW)급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을 목표로 2010년부터 추진됐다. 주관사 넥스지오와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포스코, 지질자원연구원 등이 참여한 민관 합동사업이다. 2017년 11월 지진이 발생한 후 발전소 가동은 전면 중단됐다. 굳게 닫힌 출입문 앞에는 ‘과제수행 중지 명령에 따라 모든 연구 활동이 중지됐으며, 무단출입 및 무단 촬영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때마침 KT 통신사 차량 한 대가 빠져나왔다. 차에서 내린 그는 “회선을 해지하러 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도착한 승합차에서 작업복을 입은 남성 세 명이 내렸다. 그들은 “시공한 제반 설비를 철거하기 위해 견적을 내러 왔다”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닫힌 출입구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자 사무실에서 직원 한 명이 나왔다. 직원 뒤로 강아지 다섯 마리가 졸졸 따라왔다. 넥스지오 직원이라고 밝힌 그는 “지진이 난 후로 현장은 곧바로 폐쇄됐다. 전기도 끊기고 사람들도 다 철수했다. 관리를 안 할 수는 없으니까 가끔씩 기계를 점검하고 강아지들 밥 주러 방문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3월20일 산업통상자원부는 “포항시와 협조하여 관련 사업을 영구 중단하고 해당 부지를 원상 복구하겠다”라고 밝혔다.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흥해읍은 지열발전소로부터 5㎞도 떨어져 있지 않다. 대부분 70대 이상 노인들이 살고 있다. ‘전파(주택 사용 불가)’ 판정을 받은 아파트 대부분이 흥해읍에 몰려 있다. 2017년 11월 당시의 흔적이 여전했다. 아파트 출입구마다 ‘긴급 위험도 평가 결과 위험 건물로 지정되어 출입을 통제한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가로막고 있었다. ‘피사의 아파트’라고 불리는 대성아파트 E동은 한눈에 봐도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그 후로 여진이 계속 발생해 기울기가 더 커졌다”라고 말했다. 전선은 끊겨 있고, 냉장고·소파 등 가구와 깨어진 벽돌조각이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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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4개월째 흥해실내체육관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이재민(위).

ⓒ시사IN 신선영
‘전파 판정’을 받은 흥해읍의 아파트들(아래)은 모두 철거 대상이다.

박연남씨(가명·74)의 시간도 그날에 멈춰 있다. 그는 대피소 중 한 곳이던 흥해실내체육관 텐트에서 1년4개월째 지내고 있다. 텐트는 다리를 간신히 뻗을 수는 있지만 일어설 때면 허리를 구부려야 하는 정도의 크기다. 머리맡에는 성경책이 놓여 있다. 그 위로 덜 마른 빨래들이 널려 있다. 세탁기가 없어 이틀에 한 번씩 손빨래를 해야 한다. 이불을 걷으니 핫팩 두 개가 나왔다. 박씨는 핫팩에 의지해 벌써 두 번째 겨울을 났다. 핫팩은 대피소에서 방한을 위해 1인당 2개씩 지급하고 있다.

지진이 일어날 당시만 해도 사람이 너무 많아 텐트 한 개당 2명이 써야 했지만 이재민 구호대책이 실시되며 대부분 떠났다. 텐트 2개를 꿰매어 공간을 넓히거나 달력·거울·식물 같은 생활 물건을 자리마다 가져다 두었다. 혈압약, 신경안정제라고 쓰인 약봉지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텐트 위로는 젖은 수건이 덮여 있었다. 신순옥씨(69)는 이를 “겨울에 찬 공기를 막고, 실내의 건조함을 없애는 방법”이라고 했다.

조용했던 체육관은 3월20일 정부조사연구단의 발표로 다시 시끄러워졌다. 3월24일에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다음 날에는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흥해실내체육관을 다녀갔다. 신순옥씨는 당시 장관의 옷깃을 잡으며 “이렇게 오신 김에 하루만 여기서 자고 가보시라”고 말했다. 포항 시민 대부분이 지진이 나기 전까지 지열발전소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2017년 11월 이재민 1300여 명이 대피했던 흥해실내체육관에는 현재 91가구 208명만이 남아 있다. ‘등록’된 이재민과 실제 체육관에 거주하는 이재민 수는 다르다. 체육관에 상주하는 포항시청 직원은 “하루 평균 30~40명이 체육관에서 숙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직 체육관에 남아 있는 이재민들의 집은 대개가 ‘소파’ 판정을 받았다. 전파·반파·소파는 ‘자연재난조사 및 복구계획 수립 지침’에 따라 지진으로 인한 포항시 주택 피해 정도를 분류한 것이다. 기둥·벽체·지붕 등 주요 구조부가 50% 이상 파손되어 개축해야 한다면 ‘전파’, 50% 이상 파손되어 수리해야 한다면 ‘반파’, 같은 파손이지만 50% 미만으로 파손됐다면 ‘소파’로 판정을 받는다. 이 기준에 따라 피해 지원금 및 이재민 주거대책이 달리 지원된다. 전파 판정을 받은 주민은 복구비 900만원 외에 긴급주거지원 대상이 되지만, 반파와 소파는 복구비만 각각 450만원, 100만원이 지급된다.

주택 조사 과정이 육안으로만 진행된 데다 1차 조사를 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4일이었다. 당시 피해 접수는 5만 건이 넘었다. 2018년 4월 기준 전파 주택은 671가구, 반파 주택 285가구, 소파는 5만4139가구로 집계됐다. 포항시청 주거안정과의 한 관계자는 “현재 기준으로 소파 판정을 받은 사람은 이주 지원 대상자가 아니다. (체육관에) 남아 있는 이재민들만 혜택을 주게 되면 형평에 어긋난다”라고 말했다.

박연남씨가 살던 만서세화타운도 소파 판정을 받았다. 박씨는 그곳에서 23년간 살았다.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자식을 키우며 수차례 이사를 다녔다. 나이 쉰이 되어서 아파트를 얻고 뛸 듯이 기뻤다. “그때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있겠나. 그랬던 그 집이….”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대피소에 온 첫해는 눈물로 지냈다. 박씨는 복구 지원금 및 의연금을 합쳐 200만원 남짓한 돈을 받았다. 수리를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금도 벽 한쪽이 다 뻐졌거든. 문이 틀려서 닫히지도 않고, 수도를 틀면 뿌연 구정물이 나온다.” 갈라진 벽을 보며 ‘또다시 지진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손과 발이 떨렸다.

주민 2만여 명 심리상담 받아


소파 판정을 받은 또 다른 아파트인 한미장관맨션 역시 한눈에 봐도 금이 간 부분이 군데군데 보였다. 낙석 위험에 대비해 지진 이후 각 동마다 철근 구조물이 설치돼 있었다. 이곳에서 18년을 산 박옥순씨(86)는 지난 8월까지 대피소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파트는 아수라장이었다. 장마로 비가 새는 집이 있는가 하면, 천장이 내려앉은 집도 있었다. “우리 집은 전기랑 가스도 다 끊기고 마 난리도 아니었어.” 이후 한미장관맨션 거주민은 다수가 거처를 옮겨 지금은 곳곳에 빈집이 많다. 박옥순씨는 “형편이 안 돼서 갈 곳이 없어 남아 있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시사IN 신선영
지진 피해를 가장 크게 당한 흥해읍 흥해시장(아래)에는 퇴근 시간에도 인적이 드물었다.
인구도 줄고 상권도 무너졌다.

전파 판정을 받은 가구는 대부분 흥해를 떠났다. LH 전세임대 및 임시 이주단지로 입주하거나 전세 보증금을 지원받았다. 포항시에 따르면 총 793가구가 긴급주거지원을 받았다. 오랫동안 살아온 흥해를 떠나지 못하는 어르신들은 흥해초등학교 옆 임시 이주단지인 ‘희망보금자리’에 기거하고 있다.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32동에 현재 29가구가 살고 있다.

30년 살았던 아파트가 위험 건물로 지정된 후 박덕용씨(84)도 희망보금자리에 입주했다. LH 전세임대를 알아봤지만 대부분 포항 시내에 있었다. “친구들도 다 여기 있는데 먼 데까지 가서 어떻게 다니나. 외로워서 안 된다.” 대피소보다는 여건이 낫지만 “여름에는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것 같고, 겨울에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자도 추운 곳”이었다. 얇은 콘크리트 벽은 길 건너 차량이 지나가는 소음과 진동도 그대로 전달했다. 그럴 때마다 박덕용씨는 또 지진인가 싶어 바로 문을 열어본다고 했다. 희망보금자리도 임시 거처일 뿐이다. 최대 2년까지만 거주가 보장된다. 현재 박덕용씨가 살던 대웅파크맨션은 ‘긴급대피명령’ 이후 건물 출입이 통제돼 돌아갈 수 없는 상태다.

인구가 급속도로 빠져나가자 상권도 힘없이 스러져갔다. 흥해읍 인구는 2018년 3월 기준 3만3358명으로 2017년 11월 이후 통계상으로는 800명가량이 줄었다. 긴급주거지원을 받은 793가구까지 함께 고려하면 실제 전출 인구는 1000명이 넘는다. 흥해시장 상인들이 타격을 받았다. 문을 닫은 가게가 많았고, 왕래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매출이 예전의 3분의 1로 떨어졌다고 했다. “저녁 되면 차도 안 다닌다. 여기 시장 사람들 힘든 건 누가 책임지나.” 라디오에서 지열발전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한 상인이 한숨을 내쉬며 채널을 돌렸다. 3월23일 이강덕 포항시장, 시의회 의장 등으로 구성된 60여 명은 ‘포항 11·15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대책위)’를 발족했다. 대책위는 지열발전에 의한 ‘촉발지진’이라는 사실이 발표된 이후 피해자 배상 및 보상 문제 해결과 지역 재건을 위한 ‘포항지진 특별법’ 제정을 정부에 촉구했다.

박연남씨는 매일 20분을 걸어 만서세화타운으로 간다. 집 근처 텃밭에서 조그맣게 밭농사를 짓고 있다. “대피소는 답답해서 온종일 못 있는다. 어디라도 가야 숨통이 트인다.” 수리가 덜 된 집 안 곳곳에 지진 흔적이 남아 있다. 작은 소음에도 그날이 생생하게 떠올라 몸이 부르르 떨린다고 했다. 흥해읍의 재난심리지원센터에 따르면 지진 이후 상담을 받은 주민은 2만여 명이다. 대부분 불안 증세, 불면증, 섭식장애 등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나.” 박씨가 옷가지 몇 개를 챙겨 다시 체육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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