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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틀렸다’라고 말하는 전문가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2019년 04월 03일 수요일 제6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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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원 지음, 알키 펴냄
이 책은 20년 경력의 전문가가 쓴 실용서이자, 먼저 떠난 이가 남긴 자전적 수필이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였던 고 임세원 교수의 3년 전 저작이다. 지난해 12월31일 임 교수는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살해됐다. 생전 우울증을 연구하던 그는 스스로도 이 병을 앓은 적이 있다.

책을 읽으며 상반된 두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었다는 본능적 기쁨이 먼저다. 무엇이 우울증인지, 우울증이 오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하는 게 도움이 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근거 없는 희망은 상황을 악화한다’는 대목이다. 막연하게 긍정적 태도를 가지다가는 희망이 꺾였을 때 회복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에는 근거가 필요하고, 그 수단으로 임 교수는 ‘신념, 현실 직시, 인내심, 지금 그리고 여기’를 제시한다.

임 교수는 우울증을 설명하기 위해 본인 사례를 적었다. 진통제를 먹고 누워 있는데 거실에서 <개그콘서트>를 보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와 화가 났다는 이야기, 잠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다른 아빠들처럼 함께 놀아주지 못해서 괴로웠다는 이야기 등이다. 임 교수는 스스로를 ‘병마를 극복한 초인’처럼 과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일화들은, 그저 “당신이 겪는 증상은 나를 비롯해 많은 환자들이 경험한 바 있고, 이렇게 하면 상황이 호전된다”라는 조언을 뒷받침하는 데에만 쓰인다.

소재나 배경과 별개로, 이 책은 겸허한 저자가 쓴 정직한 글이다. 임세원 교수는 자신을 포장하지 않았다. 전문의가 되고 10여 년간 “선생님은 이 병을 몰라요”라는 환자의 말에 그는 “병에 걸려야 이해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타일렀다. 병에 걸리고 나서야 임 교수는 “환자들이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썼다. ‘나는 모른다’ ‘내가 틀렸다’고 인정할 줄 아는 귀한 전문가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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