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년 경력의 전문가가 쓴 실용서이자, 먼저 떠난 이가 남긴 자전적 수필이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였던 고 임세원 교수의 3년 전 저작이다. 지난해 12월31일 임 교수는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살해됐다. 생전 우울증을 연구하던 그는 스스로도 이 병을 앓은 적이 있다.
책을 읽으며 상반된 두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었다는 본능적 기쁨이 먼저다. 무엇이 우울증인지, 우울증이 오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하는 게 도움이 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근거 없는 희망은 상황을 악화한다’는 대목이다. 막연하게 긍정적 태도를 가지다가는 희망이 꺾였을 때 회복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에는 근거가 필요하고, 그 수단으로 임 교수는 ‘신념, 현실 직시, 인내심, 지금 그리고 여기’를 제시한다.
임 교수는 우울증을 설명하기 위해 본인 사례를 적었다. 진통제를 먹고 누워 있는데 거실에서 〈개그콘서트〉를 보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와 화가 났다는 이야기, 잠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다른 아빠들처럼 함께 놀아주지 못해서 괴로웠다는 이야기 등이다. 임 교수는 스스로를 ‘병마를 극복한 초인’처럼 과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일화들은, 그저 “당신이 겪는 증상은 나를 비롯해 많은 환자들이 경험한 바 있고, 이렇게 하면 상황이 호전된다”라는 조언을 뒷받침하는 데에만 쓰인다.
소재나 배경과 별개로, 이 책은 겸허한 저자가 쓴 정직한 글이다. 임세원 교수는 자신을 포장하지 않았다. 전문의가 되고 10여 년간 “선생님은 이 병을 몰라요”라는 환자의 말에 그는 “병에 걸려야 이해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타일렀다. 병에 걸리고 나서야 임 교수는 “환자들이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썼다. ‘나는 모른다’ ‘내가 틀렸다’고 인정할 줄 아는 귀한 전문가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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