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Richard(리처드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영화가 끝난 뒤 스크린에 새겨지는 이 한마디가 이 글의 첫마디여야 한다. 〈콜레트〉를 소개하기 전에 리처드를 먼저 소개해야 한다. 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영화감독 리처드 글래처의 마지막으로 돌아가야 한다.  

1999년의 어느 날, 리처드가 콜레트의 전기를 읽었다. 100년 뒤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현대적인 삶을 살다간 그에게 금세 매료되었다. 그때부터 콜레트의 소설을 차례로 찾아 읽고는, 언젠가 책을 손에 들고 말했다. “이 안에 이미 영화가 있다”라고. 리처드의 작업 파트너이자 인생의 단짝, 워시 웨스트모얼랜드가 곁에서 그 얘기를 들었다.


2001년의 어느 날, 두 사람이 열흘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콜레트의 삶과 소설 안에 ‘이미 영화가 있’었으므로, 영화 만드는 일은 어려울 게 없어 보였다. 투자자들이 보기엔 달랐다. 100년도 전에 태어난 인물의 삶이 ‘시대를 너무 앞서간다’며 지갑을 닫았다. 시기상조라는 말만 하면서, 그놈의 적절한 시기란 게 대체 언제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리처드에게 일명 루게릭병이 찾아왔다. “스스로 먹거나 옷을 입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태”로 악화된 2014년 초, 영화 〈스틸 앨리스〉의 촬영을 시작했다. 글을 말로 바꿔주는 애플리케이션과 공동 연출자 워시의 조력으로 현장을 지휘했다. 아름답고 가슴 벅찬 영화 〈스틸 앨리스〉의 주인공 줄리앤 무어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고 보름 뒤, 리처드는 세상을 떠났다.

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서 빠졌지?

마지막 순간, 워시가 물었다. “다음 영화는 뭘 만들면 좋을까?” 리처드는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던 발가락 하나를 꼼지락거리며 간신히 쓰기 시작했다. C-O-L-E-T-T-E. 그렇게 시작된 영화다. 어느 영화감독이 꼭 만들고 싶었지만 끝내 자기 손으로 만들지 못한 영화. 늘 함께 일하던 파트너가 혼자 힘으로, 하지만 둘의 마음으로 완성한 영화. 〈콜레트〉에는 ‘강인한 여성’이면서 ‘당당한 LGBT(성소수자)’로 살다 간 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키라 나이틀리)의 선택과 결단의 순간들이 담겨 있다. 고 리처드 글래처가 바로 지금, 바로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의 모든 관객에게 널리 알리고 싶어 한, 정말 끝내주게 멋진 사람의 전기 영화다.

C-O-L-E-T-T-E. 삶의 마지막 순간, 한 글자 한 글자 유언처럼 새겨넣은 리처드의 간절함을 이제 나는 이해한다. 콜레트는 혼자 알기 아까운 사람이다. 〈콜레트〉는 혼자만 보기 아까운 영화다. 시기상조를 들먹이는 사람들이 말해주지 않는 적절한 시기란 언제나 바로 지금이라고, 멋진 연기와 촘촘한 만듦새로 입증해 보이는 영화다. 왜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서 빠졌는지, 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는지, 나는 그저 의아할 따름이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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