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중에 태양계에는 숨겨진 행성이 있다고 굳게 믿는 녀석이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3억8000만 년도 더 전에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의 후손일 리 없다. 진화론은 완벽한 사기다. 우리는 12번째 행성에 사는 거인, 즉 신의 직계다.

그가 나를 붙들고 이런 얘기를 너무나 진지하게 할 때면 당혹스럽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친구가 아니어서 더욱 놀랍다. 알고 보니 그의 생각은 러시아에서 태어나 팔레스타인에서 자란 유대계 미국인 제카리아 시친이란 사람의 주장과 같았다. 그는 검증할 수 없는 주장을 일삼아 주류 과학계에서 의사 과학자로 낙인찍힌 인물이었다. 전 세계에서 그를 추종하는 사람이 수백만명에 달한다.

리처드 도킨스와 함께 과학의 최전선에서 사이비와 싸워온 과학저널 〈스켑틱〉 발행인 마이클 셔머는 평범한 사람들마저 미신에 현혹되는 게 안타까워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라는 책을 썼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기 위해 무려 25가지 오류를 범한다. 과학은 실험, 확증, 반증을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지식을 축적해가지만 사이비 과학은 그런 메커니즘을 갖고 있지 않다. 잘못을 수정하기는커녕 반복해서 확대 재생산하는 데만 능할 뿐이다. UFO 납치설, 텔레파시, 임사체험, 악마나 외계인이 이 세상을 실질적으로 지배한다는 음모론 등이 대표적이다. 그에 따르면 유대 기독교적 세계관에 많이 노출된 사람일수록 이런 신비주의에 끌리는 경향이 짙다.

ⓒ한성원

우리의 머리 위, 저 광활한 우주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이 세상에는 인류의 이런 궁극의 의문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도 많고 그들에게 속아 미몽에서 헤매는 이도 적지 않지만 과학은 아랑곳없이 착실히 해야 할 일을 해왔다. 때로 사람들은 알래스카 동토에서 목숨을 걸고 수십만 년 전의 화석을 찾거나 까마득한 태양계 밖을 탐색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런 물음에 가장 현명한 대답을 내놓은 이는 작고한 저명한 과학자이자 과학 저술가인 칼 세이건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사람을 들여다보는 것은 별을 들여다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제대로 볼 줄 아는 이에게 인체는 타임캡슐이나 마찬가지다. 캡슐을 열면 지구 역사의 결정적 순간들에 관한 이야기, 고대 바다와 개울과 숲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의 말을 뒤집으면 화석을 찾아 헤매거나 별을 헤아리는 일은 곧 인간이란 비밀의 상자를 여는 일이다. 생각만큼 따분하지도 않다. 어떤 음모론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장대한 서사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다.

2009년 지구 궤도 위로 쏘아올린 천체망원경 케플러가 지난해 10월 탑재한 연료를 모두 소진하고 퇴역했다. 이 망원경의 임무는 하늘의 한 귀퉁이에 있는 1만5000여 개 별 주변에 과연 행성이 몇 개나 있는지 찾아내는 것이었다. 목적은 외계에 진화한 생명체가 존재할 부동산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조건을 가르쳐준 곳은 물론 지구다. 일단 수성, 금성, 지구, 화성처럼 암석질 행성이어야만 한다. 금성보다 추워야 하고, 화성보다 더워야 한다. 지구에 대해 달이 그러는 것처럼 별에게 한 면만 보여주며 공전하면 생명체가 살 확률은 떨어진다. 딱 지구 정도의 크기여야 대기가 우주로 날아가지 않고 머물 수 있다.

케플러가 10년 동안 외롭게 일하며 우리에게 던져준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행성은 별보다 많았으며 그중 4분의 1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주거가 가능한’ 궤도 위에 있었다. 은하계에 1000억 개가 넘는 별이 있으니 최소한 250억 개가 넘는 행성에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였다. 이 우주에는 수조 개의 은하계가 있으니 도대체 계산이 어찌 되는 건가. 우주는 생각 외로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곳임에 틀림없다. 오늘날 우리는 약 4000개에 이르는 태양계 밖 외계 행성의 존재를 확인했는데 그 대부분은 케플러 망원경이 찾아냈다.

1960년 미국 코넬 대학의 프랭크 드레이크가 미국 국립전파천문대의 망원경을 이용해 외계 문명이 지구에 보내는 전파 신호를 잡으려고 시도하면서 외계의 지적 존재를 찾는 과학자 집단(The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SETI·세티)이 생겨났다. 이 움직임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참여함으로써 아연 활기를 띠었다. 또한 작고한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폴 앨런이 막대한 자금을 대면서 힘을 받았다. 하지만 세티에 참가한 그 어떤 과학자나 천문대도 지난 60년간 ET가 보낸 전문을 받아보지 못했다. 그들이 우주로 띄웠던 숱한 메시지에 대한 대답도 듣지 못했다. 1993년 인내심이 바닥난 미국 의회가 지원금을 끊자 학계는 연구를 중단할 위기를 맞았다. 이 우주에는 지적 존재가 지구에만 있는 게 아니냐는 회의론이 거세졌다.

케플러 망원경이 우리 은하계가 생명이 있을 만한 행성으로 붐빈다는 소식을 전하자 과학자들은 환호했다. 나사가 천문생물학 연구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민간 부문에서 후원금도 답지했다. 특히 러시아 출신 벤처사업가 유리 밀너가 세티에 2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해 과학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우주에서 오는 메시지를 포착하는 데 집착했던 과거와는 달라졌다. 천체망원경을 만드는 기술의 발달과 컴퓨터의 무한 진화는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을 가능하게 했다.

‘생명의 지문’을 확인하고 전율하는 날이 올까

나사는 지난해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이 주도해 만든 천체망원경 ‘테스(TESS)’를 쏘아올렸다. 좁은 구역만 탐사했던 케플러와 달리 테스는 거의 하늘 전체를 뒤진다. 행성이 별의 앞을 지날 때 별이 내는 후광 속에서 행성이 발하는 어두운 흔적을 스캔한다. 지구처럼 표면이 암석질인 것으로 추정되는 50개 행성에 집중할 예정이다. 이 작업은 나사가 2021년 쏘아올릴 예정인 제임스 웹 천체망원경과 연동하면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정작 과학자들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다.

과학자들은 행성의 대기가 별빛을 받아 빛날 때를 포착해 성분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일이다. 행성이 보내는 빛을 분광계를 통해 분류할 수 있다면 바이오 시그너처라고 불리는 생명의 지문을 찾아낼 수 있다. 지구에서는 식물과 특정 박테리아가 산소를 배출한다. 산소가 대기상에 축적돼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면 희망은 커진다. 산소와 메탄이 결합했다면 더욱 믿을 만하다. 살아 있는 조직에서 배출된 두 가스는 서로를 파괴한다. 그들이 발견됐다는 건 두 가스가 끊임없이 보충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식물과 기술문명이 내뿜었을지도 모를 오염물질까지 빛을 분석해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지금의 망원경으로는 불가능하다. 차세대 망원경을 기다려야만 한다. 우주 망원경이 아닌 강력한 지상 망원경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지름 8m가 넘는 거울을 우주로 날려 보낼 방법을 누구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상 망원경에는 심각한 단점이 있다. 두꺼운 대기 아래 있으므로 뒤틀린 빛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빛을 다림질하고 행성에서 오는 빛만 가려내려면 무수히 많은 정교한 장비가 필요하다.

첫 번째 차세대 지상 망원경은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지을 예정이며 2025년 작동에 들어간다. 유럽남부천문대가 만든 이름 그대로 초대형 망원경(European Extreamly Large Telescope, E-ELT)이다. 현존하는 어떤 망원경도 견줄 수 없는, 지름 30m의 거울을 장착했다. 이 E-ELT는 은하계에서 가장 흔한 별인 적색 왜성 내부의 거주 가능 궤도에 있는 모든 행성을 이미지화한다. 외계의 행성 중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프록시마 센타우리 항성을 도는 ‘프록시마  b’라는 행성이 흥미로운 타깃이다. 지구에서 약 4.2광년, 40조2366㎞ 떨어져 있다.

유리 밀너의 지원 사업 중 하나인 ‘브레이크스루 스타샷’ 프로젝트는 바로 이 프록시마 b에 자갈 정도 크기의 우주선 선단을 보낼 계획이다. 1977년 우주선 보이저호가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 우주로 진입하는 데만 35년이 걸렸다. 이 속도로 간다면 프록시마 b의 영역으로 가는 데 7만5000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브레이크스루 스타샷 프로젝트로 보내지는 우주선 선단은 고작 20년 만에 도착할 수 있다. 그곳에 직접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하는 밀너에게 캘리포니아 대학 샌타바버라 캠퍼스의 과학자들이 제안한 방식이다.

먼저 지구의 낮은 궤도에 모선을 쏘아올린다. 모선에는 작은 우주선 수천 개가 실려 있다. 그곳에는 5g 미만, 우표보다 작은 크기의 칩이 장착돼 있는데 카메라, 컴퓨터, 통신기기, 내비게이션 구실을 한다. 모선이 이 우주선을 풀어놓으면 지상에서 100기가와트의 힘을 가하기 위해 10억 줄기의 레이저를 수 분간 집중한다. 이 몇 분만으로 우주선이 광속의 5분의 1 속도로 우주 공간을 건너 프록시마 b로 향하기에 충분하다. 수천 개 가운데 여행이 순조로운 우주선은 프록시마 b에 도착하면 도중에 수집한 이미지와 데이터를 지구로 보낼 것이다. 그것이 지구에 도착하는 데 또 4년이 걸린다. 스스로 UFO를 만들겠다는 계획인 셈이다.

우리가 과연 생명의 지문을 확인하고 전율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4.2광년이나 떨어진 외계에서 날아온 이미지와 정보를 읽는 순간을 맞을 수 있을까. 우리는 1990년대 중반까지도 태양계 밖에 과연 지구만 한 행성이 있을지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공전주기가 단 하루이거나, 혹은 백만 년이나 되는 행성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외로운 늑대처럼 어느 별의 궤도도 마다하고 홀로 떠도는 행성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우리는 어느 사이에 신화의 영역에 깊숙이 발을 들였다.

참고한 활자:〈DNA에서 우주를 만나다〉(위즈덤하우스), 〈범퍼스티커로 철학하기〉 (민음인),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바다출판사),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자명 문정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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