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독립운동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이뤄진다. 독립운동가 이야기는 보통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희생하는 끈질긴 투쟁과 고결한 정신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그분들 또한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잊곤 한다. 독립운동가에게도 일상생활이 있었다.

〈제시 이야기〉는 임시정부에서 일한 독립운동가 부부 이야기를 다룬 그래픽노블이다. 이 책은 ‘육아일기’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이야기는 제시가 태어나면서 시작한다.

〈제시 이야기〉 박건웅 지음, 우리나비 펴냄


남편 양우조는 미국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를 나온 수재로 독립운동을 위해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아내 최선화는 이화여전을 나왔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편지로 인연을 이어갔다. 최선화는 아버지와 함께 양우조를 만나러 중국 상하이로 갔는데, 그가 마음에 들었다. 아버지는 아주 ‘쿨하게’ 혼자 귀국한다.

양우조·최선화 부부는 1937년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에서 김구 선생 주례로 간소한 결혼식을 치렀다. 이듬해 딸 제시가 태어났다. 4㎏으로 태어나 손가락을 빨면서 열심히 생명의 몸짓을 하는 보통 아이였다.

제시는 축복 속에 태어났지만 시대는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당시 중일전쟁이 한창이었다. 전쟁 여파로 상하이를 떠나야 했던 임시정부는 떠도는 신세가 된다. 부부와 제시의 고난도 시작되었다. 제시는 태어난 지 고작 보름 만에 광둥성 광주(광저우)행 열차를 탔다. 흔들리는 기차로 무려 사흘이나 달려야 했다.

폭격으로 무너진 집에서 살기도

어렵게 광주에 도착했지만 일본의 폭격은 끊이지 않았다. 빈궁한 임시정부 살림살이는 겨우 끼니를 굶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바구니 속의 제시는 신기하게도 편안했다. 부실한 엄마 젖을 빨면서 먹고 자고 울었다. 전쟁통에도 아이는 자란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제 몸을 가누게 된다.

 


제시의 방랑은 끝이 없었다. 제시는 기차, 버스, 증기선을 타고 중국 곳곳을 떠돌아야 했다. 부부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언제든 피난갈 수 있게 간소한 살림만 유지했고, 일본군 공습이 있으면 얼른 제시를 데리고 방공호로 달려야 했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는지 셀 수도 없다. 폭격으로 반쯤 무너진 집에서 살아야 할 때도 있었다.

제시는 자신을 둘러싼 고통과 시대의 아픔을 알지 못한다. 제시의 몸과 마음은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며 자랄 뿐이다. 엄마 젖만 빨던 입에서 이가 자라고, 어느새 ‘엄마’를 부르게 된다. 고집을 피우거나 욕심을 부릴 때도 생긴다. 능숙한 중국말로 물지게꾼을 불러 엄마를 놀라게 한다. 부모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아이는 그렇게 훌쩍 자라고 있었다.

〈제시 이야기〉의 고생담을 보노라면 어떻게 저 치열한 시대를 살았을까 놀랍고, 씩씩하게 자라는 아이의 생명력이 신비롭기만 하다. 동포를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개인의 일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제시 아버지 양우조의 유언이 별처럼 빛나는 그래픽노블이다.

기자명 박성표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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