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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가 좌석 1열’ 유튜브 크리에이터

영화정보 콘텐츠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사람들은 점차 기사나 포털사이트 별점 대신 유튜브 채널을 찾는다.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2019년 04월 05일 금요일 제6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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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낮 12시10분. MBC <출발! 비디오 여행>이 시작된다. 2002년부터 ‘영화 대 영화’ 코너를 진행하는 김경식의 ‘변사’형 목소리를 들으며 직장인들은 월요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KBS <영화가 좋다>, SBS <접속! 무비월드>도 비슷한 포맷이라 신작 영화 소개가 겹칠 때도 적지 않다. 과거 EBS <시네마 천국> 같은 비평 중심의 프로그램이 있기는 했지만 오래 살아남은 지상파 영화정보 프로그램은 주로 신작 중심의, 줄거리 요약 콘텐츠로 구성된다.
그 가운데 최근 입소문을 타고 호평받는 영화정보 프로그램이 있다. 지난해 5월 시작한 JTBC <방구석 1열>이다. ‘영화 인문학 토크’를 표방하는 이 프로그램은 영화를 제작했던 감독과 작가 등 제작진이 나와 영화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최근에는 박찬욱 감독이 출연해 <친절한 금자씨>의 캐스팅 비화 등을 전했고, 지난해에는 이경미 감독과 엄지원 배우가 각각 감독하고 출연한 영화에 대해 서로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JTBC <방구석 1열> 화면 갈무리
JTBC의 영화정보 프로그램 <방구석 1열>(위)에서 보여주는 영화의 줄거리 영상은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만든다.
프로그램을 만든 김미연 PD의 전작은  JTBC <전체관람가>다. 유명 영화감독들의 단편영화 제작 과정을 보여주며 화제가 되었다. 그때보다 좀 더 대중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던 김 PD가 프로그램을 구상한 결정적 계기는 영화 <1987>이었다. 영화를 보고 문소리 배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영화가 끝났는데 아무도 일어나지 않아요. 이렇게 좋은 영화를 만들어준 장(준환) 감독님께 꼭 관객으로서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극장을 나서며 누군가와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난 뒤 벅찬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의례적인 신작 홍보 인터뷰가 아니고 방구석 같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지난 영화에 대해 수다를 떠는 방식이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를 비롯해 관객들이 볼 기회조차 없었던 숨은 명작도 소개한다. 과거의 영화를 통해 그 시대의 문화와 지금을 연결해보기도 한다.”

풍부한 해석으로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아주던 변영주 감독이 신작 준비로 올 초 하차한 뒤, 여전히 무게를 잡아주는 건 MC 윤종신이다. 그는 2014년부터 팟캐스트 <월간 윤종신-어수선한 영화이야기>를 통해 영화 콘텐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었다. 김미연 PD는 “윤종신씨는 MC 이전에 한 명의 고정 패널이다.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데 가감이 없고 가끔은 감독들에게 일침을 던지기도 한다. 우리가 알던 (진행만 하는) MC의 모습과는 다르다”라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일동이 입을 다물고 집중하게 되는 시간이 있다. 영화의 줄거리 영상이 나갈 때다. 10여 분 되는 영상 속에 중요한 대사, 주요 사건이 집약적으로 담겨 있다. 이 영상은 제작진이 아니라 영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담당한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구성과 내레이션 모두 직접 한다. 영화의 줄거리를 영상으로 요약하고 내레이션을 섞는 방식이다. 출연진 모두 이 영상을 기반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중요한 소스가 된다. “영화에 대한 정확한 요약과 예리한 의견을 제시하는 유튜버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의미 있다. 아무리 어려운 영화도 유튜버들이 만든 양질의 리뷰를 찾아보면 바로 뚝딱 이해가 가는 것도 그 때문일 거다.”

<방구석 1열>과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협업은 현재 영화정보 콘텐츠의 트렌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방송은 여전히 힘이 세지만, 사람들은 영화를 선택할 때 점차 기사나 포털사이트 별점 대신 유튜브 채널을 찾는다. 평론가가 해석해놓은 글보다 내레이션과 줄거리에 자신의 생각이나 위트를 섞어서 만든 주요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시선을 신뢰하는 것이다. 영화 유튜브 채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영화사·배급사 등에서는 언론 시사회 이전에 영화를 미리 주요 유튜브 크리에이터에게 보내기도 한다. 홍보에 도움이 되는 영상을 일찌감치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영화 편집 인력을 따로 두고 있다.
지난해 영화 유튜브 채널의 영향력을 보여준 사례가 <박화영>이다. 약 77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크리에이터 ‘고몽’이 <박화영>의 리뷰 영상을 올린 것이 계기였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직접 SNS를 통해 연락했다. 힘들게 만들었으니 봐달라는 내용이었다.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 제작사인 명필름랩의 지원 아래 영상을 만들었다. 15분짜리 영상을 올리자 이틀 만에 300만명, 일주일에 500만명 넘게 보았다. <박화영>의 홍보 관계자는 “개봉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이고 마무리되어가는 중이었는데 영상이 만들어지면서 관객이 두 배 정도 더 들었다”라고 말했다. 전체 관객 수는 5700여 명에 그쳤지만 VOD 판매 등에 영향을 끼쳤다. 

‘망작’ 리뷰 전문 유튜브 채널 큰 화제

한국의 영화 유튜브 채널은 대부분 줄거리 요약으로 이루어진다. 목소리 톤과 관점, 콘셉트는 제각각이지만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보던 영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고편의 확장판’ 정도로 치부되던 10여 분짜리 짧은 요약 영상이 유튜브 시대에는 주효했던 셈이다. 1989년생인 ‘고몽’은 가끔 ‘제2의 김경식’이라는 말을 듣는다(<출발! 비디오 여행>은 1993년부터 시작했다). 그는 “한국의 영화 유튜브 채널에선 큐레이션 스타일의 콘텐츠가 인기 있다. 외국은 스포일러 때문에 즐기지 않는데 우린 그걸 보고 취향에 맞게 영화를 선택한다. 어릴 때부터 그런 방식의 영화정보 프로그램을 접한 한국인의 DNA 때문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영화 유튜브 채널은 신작 소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을 주로 다루는 곳도 있고 흥행에 실패한 영화(망작)만 소개하는 곳도 있다. 초창기 <방구석 1열>과 작업했던 유튜브 크리에이터 ‘거의 없다’는 ‘망작’ 리뷰 전문이다. 영화가 잘된 이유는 일일이 나열할 수 없지만 안된 영화에는 이유가 있다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안된 영화에 어떤 문제가 있었고 개선할 점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로 했다. 특히 <리얼>이 개봉했을 당시 논리적이고 신랄한 비평으로 화제가 되었다. 이렇듯 각자의 장기가 다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무기, 마블코믹스와 DC코믹스의 특징(유튜브 크리에이터 ‘빨강도깨비’)을 비교하거나, 영화의 첫인상, 감독 스타일(유튜브 크리에이터 ‘김시선’) 등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등 내용이 세분화되고 있다. ‘고몽’과 ‘김시선’은 <미래의 미라이>를 연출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을 인터뷰했고, 영화진흥위원회 등과 함께 브랜드를 만들어 독립영화 리뷰도 한다. ‘거의 없다’는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퍼미션> GV(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영화평론가, 기자 등의 영역을 넘나드는 것이다.


유튜브의 영향력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봐야 할 영화’와 ‘보지 말아야 할 영화’가 극단적으로 갈릴 때도 있다. 홍보용 콘텐츠가 많이 생기면서 선정적인 사진과 문구로 ‘낚시질’을 하기도 한다. 동영상 조회 수가 높다고 해당 영화의 흥행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영화가 개봉할 때 유튜브 하나 끼고 광고하는 건 쉽겠지만 제작사도 조회 수에 집착하기보다 만듦새를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고몽’은 “영화를 유튜브 채널에서 보고 끝이면 곤란하고 영화사나 제작자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에 신경 쓰고 영상 중간중간 구매할 수 있는 링크나 개봉관을 강조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영화 담론의 시대는 갔지만 영화 정보 콘텐츠의 명맥은 방식을 달리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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