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5일 오전 9시30분, 이희문씨(31)가 대표로 있는 주식회사 ‘딥마이닝(전 미래투자파트너스)’ 사무실이 있는 서울 청담동 빌딩에서 ‘부가티 베이론 그랜드 스포츠’ 흰색 차가 카 캐리어에 실렸다. 공식적으로는 대한민국에 한 대뿐인 차가 향한 곳은 경기 성남시에 있는 수입차 전문 매매업체 매장. 약 1시간 뒤인 오전 10시30분, 이씨는 ‘딥마이닝’ 회사 직원 한 명과 함께 매장을 찾아 차를 파는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당시 이씨와 매매 계약을 맺은 ‘도로 오토모티브’의 조일도 대표는 〈시사IN〉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희진·이희문씨 형제가 2017년 가을 무렵부터 변호인을 통해 부가티 판매 의사를 밝혀왔다고 말했다. 이씨 형제는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지 않은 투자매매업체를 설립한 뒤 주가 조작으로 약 130억원 상당의 이익을 챙긴 혐의로 2016년 9월 구속됐다. 지난해 4월, 1심 재판부는 이희진씨에게 자본시장법·유사수신행위법·특정경제범죄법 위반 등으로 징역 5년과 벌금 200억원, 추징금 130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함께 범죄를 저지른 동생 이희문씨에게도 징역 2년6개월과 벌금 100억원 선고유예를 내렸다.


본격적으로 차량 거래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한 것은 구속됐던 이희문씨가 2018년 11월 만기 출소하면서다. 2월25일이 계약일로 잡힌 건 사흘 전인 2월22일 저녁이었다. 이씨는 차량 대금 20억원 중 15억원을 본인 회사 ‘딥마이닝’ 법인 계좌로 넣고 나머지 5억원은 5만원권 현금으로 준비해달라고 요구했다.
계약 당일 이희문씨는 여유로웠다. “급했다면 계약하고 돈만 받고 바로 갔을 텐데, 차도 둘러보고 나중에 형과 함께 보러 오겠다는 말도 하면서 오래 머물렀다.” 이씨의 요구대로 준비된 20억원 중 5억원을 현금 계수기 두 대로 세는 데는 20여 분이 걸렸다. “돈 담을 가방을 안 가져왔다길래 회사에 있던 스포츠 가방에 담아주었다. 이씨와 함께 온 직원이 타고 온 카니발 뒷좌석에 돈 가방을 실었다. 둘은 낮 12시20분쯤 매장을 떠났다.”

이씨는 지인을 통해 부모에게 5억원이 든 가방을 전달했다. 이씨의 부모가 돈 가방을 들고 자택인 경기 안양시의 아파트로 돌아온 시각은 2월25일 오후 4시6분. 부부가 도착하기 15분 전부터 남성 4명이 현관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3월21일 현재 살해 피의자로 구속된 김 아무개씨(34)와 김씨가 지난달 초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경호 목적’으로 고용한 재한 조선족 3명이었다. 그들은 부부를 집안으로 데려가 살해하고 5억원이 든 가방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경찰에 ‘아버지 이씨의 권유로 주식 투자했다가 날린 2000만원이 범행 동기’였지만, ‘죽일 의도는 없었으며 재한 조선족 3명이 우발적으로 피해자들을 죽이고 가방에서 돈을 꺼내갔다’고 주장했다.

ⓒ시사IN 신선영3월20일 피의자 김씨(마스크 쓴 사람)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안양동안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범행 2시간 뒤 재한 조선족 3명은 아파트를 빠져나갔고, 당일 오후 11시51분 모두 중국 칭다오로 출국했다. 김씨는 현장에 남아 뒷정리를 하며 지인 2명을 아파트로 부르기도 했다. 그들은 경찰 조사에서 김씨와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라고 진술했다. ‘김씨의 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지금 싸움이 났는데 본인이 갈 상황이 못 되니 대신 가달라고 해서 갔을 뿐이며, 현장을 보고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고 생각해 김씨에게 신고를 권유하고 20여 분 뒤에 나왔다.’

범행 다음 날인 2월26일, 김씨는 이삿짐센터를 불러 이희문씨 아버지 이 아무개씨의 시신이 든 빨간색 양문형 냉장고를 옮겼다. 어머니 황 아무개씨의 시신은 집안 장롱에서, 아버지 이씨의 시신은 차로 1시간 거리에 떨어진 경기 평택시 진위면 가곡리에 위치한 창고에서 발견된 이유다. 당일 근무했던 아파트 관리인은 “보통 아파트 주민은 이사하거나 물건을 옮기기 하루 전에 관리실에 말해서 협조를 구하는데, 그날은 아침 8시쯤에 갑자기 이삿짐센터 운전기사가 와서 냉장고를 내려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인터폰으로 주민들에게 연락을 돌려 차를 빼줬다”라고 말했다.

관리인은 피해자 부부에 대해 ‘전세로 이사 온 지 1년도 안 돼 자세히 아는 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자전거를 즐겨 탔던 부부로 기억했다. 실제로 아파트 발코니에는 아직 걷지 못한 사이클복이 빨래 건조대에 걸려 있었다. 부부가 타는 차는 흰색 벤츠였는데, 관리인은 “주차장에서 안 보인 지 한참 됐다”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피해자의 벤츠 차량을 훔쳐 검거되기 전까지 타고 다녔다.

김씨가 피해자의 시신을 옮긴 평택 창고는 161.54m²(약 48평) 규모로, 2018년 11월 말에 지어졌다. 김씨는 시신을 옮긴 2월26일 당일에 보증금 1500만원에 월세 150만원을 내는 조건으로 창고를 임대했다. 창고 뒤편은 모두 밭이고, 주변에 똑같은 외관의 창고 2채가 더 있다. 시신이 유기된 창고 옆 건물에 거주하는 남성은 “창고 주인은 각자 다르고, 모두 외지인이다. (해당 창고가) 제일 마지막까지 안 나갔다. 임대를 한 사람이 여기서 나쁜 짓을 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3월20일 이희진·이희문씨 등 피해자 유가족들이 운구에 나서고 있다.
이희진씨, 한마디 말없이 빈소 지켜

그는 김씨가 시신을 옮긴 날 ‘익스프레스’라고 적힌 탑차가 와서 냉장고 한 대를 내린 것을 기억했다. 마스크를 쓴 남자가 창고 뒤편에서 무언가를 태웠다고도 말했다. “자기는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까 몰랐겠지만, 냄새가 고약했다. 내가 태우지 말라고 항의했다.” 당시 김씨는 훔친 벤츠 차량에 피해자의 피가 묻은 이불 등을 싣고 와 태운 것으로 확인됐다.

작은아들 이희문씨는 사건이 발생하고 19일이 지난 3월16일 ‘부모님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이씨는 경찰에 늦게 신고한 이유를 피의자 김씨가 어머니인 척 자신을 속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숨진 어머니 황씨의 휴대전화로 이씨와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김씨는 심지어 이번 달 초 ‘○○○씨라는 (내가) 잘 아는 사업가가 있으니 만나보라’는 메시지를 보낸 뒤, 본인이 그 사업가인 척하며 식당에서 이씨를 만나기도 했다.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은 자택에서 이씨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하고, 다음 날인 3월17일 경기 수원시 연무동의 한 편의점에서 김씨를 붙잡았다. 검거 당시 경찰은 김씨로부터 1800만원을 회수했다. 이후 김씨의 어머니가 아들이 집으로 가져왔던 돈이라며 2억5000만원을 경찰에 제출했다.
이희진씨는 부모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했다. 그는 3월19일 오전부터 경기 안양시의 한 종합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에서 동생과 함께 자리를 지켰다. 빈소에는 조화 20여 개가 놓여 있었다. 간간이 조문객이 방문했다. 이희진씨는 다음 날 운구차를 탈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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