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미술
김용철 외 지음, 현실문화A 펴냄

“전쟁의 종결에는 시각 이미지가 필수다.”

일본 사회에서 이 전쟁의 이름은 계속 바뀌었다. 그러다 지금은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정착하는 분위기다.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미술가들로 구성된 ‘일본 미술 및 공예 통제협회’와 전시 최고사령부인 대본영의 보도부가 긴밀히 협조해서 전쟁화 좌담회를 열었다. 이후 미술을 전쟁의 선전 선동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  
우리는 일본의 전쟁 포스터나 전쟁화를 본 적이 없다. 아니 있다. 광복 후 우리가 지겹도록 본 반공 포스터, 북한 주민들이 지겹도록 본 ‘미제를 때려잡자’는 포스터의 원형이 바로 일본의 전쟁화 그리고 전쟁 포스터이기 때문이다. 김기창 같은 화가는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그렸던 ‘적진육박’의 도상을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적영’에서 자기 표절을 하기도 했다.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신현호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부자가 지지하는 정책의 실현율이 2배 높다.”

아내의 월급이 남편의 그것을 뛰어넘을 때, 부부의 이혼 확률은 얼마나 증가할까? 이사를 앞두고 아이들 책을 처분하려 할 때, 몇 권을 남겨두는 게 아이 교육에 효과적일까? 보수 성향의 남성 판사가 딸을 갖게 된다면, 그가 맡은 여성 관련 판결은 어떻게 변화할까? 저자는 이토록 알쏭달쏭한 질문에 대해 이념이나 상식, 짐작이 아니라 데이터 분석을 통해 답한다. 그 답변 가운데는 굉장히 의외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서, 데이터가 아니라 어림짐작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역설적으로 깨닫게 해준다.
요즘 ‘핫’하지만 비전문가가 접근하기는 어려운 데이터 과학의 전문적 내용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는 저자의 실력이 인상적이다. 데이터 해석과 활용에 관한 최고의 입문서다.

자연의 패턴
필립 볼 지음, 조민웅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자연의 패턴은 무언가 심오한 비밀을 가리키고 있다.”

자연에 설계자는 없다. 자연은 마치 고도의 지능을 가진 설계자가 하듯 절묘한 패턴을 짠다. 자연은 가장 단순한 원리와 규칙과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놀랍도록 풍부하고 아름다운 패턴을 만들어낸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은 “자연은 가장 아름다운 온갖 형태를 스스로 만든다”라고 말했다.
영국의 과학 저술가인 저자는 이 책에서, 달팽이부터 은하까지 자연이 만들어낸 패턴의 경이로움을 탐색한다. 여러 패턴을 외양과 원리에 따라 대칭, 프랙털, 나선, 혼돈, 파동, 거품, 타일, 점과 줄 등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독자에게 장엄한 경이를 전달할 수 있도록, 300컷에 이르는 화려한 사진에 간결한 설명을 곁들이는 형식을 택했다. 자연이 전시회를 연다면 이 책을 브로슈어로 쓸 것 같다.

너의 뒤에서
노하라 쿠로 지음, 김우영 옮김, 6699프레스 펴냄

“소중한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그곳이 네가 있을 곳이 될 거야.”

자극적인 사건이나 악역이 등장하지 않아도 깊이 있는 서사가 완성된다. 평범한 이들이 보내는 일상의 섬세한 묘사가 이야기를 이끈다. 그래픽노블 〈너의 뒤에서〉의 주인공은 남자 고등학생 두 명이다. 서로를 향한 마음을 살짝 내보이면서 두 사람은 느리고, 또 신중하게 가까워진다.
저자의 그림은 따뜻하다. 그가 그린 주인공들이 서로를 마주 보는 표정에는 사랑과 애잔함이 동시에 담겨 있다.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며 각자의 감정에 스스로 책임을 지려는, 조금 부드럽고 단단한 태도마저 느껴진다. 작가는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두 친구와 함께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기분으로 그리려 노력했다’고 썼다. 저자의 바람대로, 책을 덮으면 세상이 좀 더 밝게 보인다.



땀 흘리는 소설
김혜진 외 지음, 창비교육 펴냄

“우리는 왜 이것을 가르치지 않았을까.”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전어가 통통하게 살을 찌우던 어느 가을밤’에 만났다. 세상에 대해, 그들이 가르치는 ‘통통거리는 젊은 삶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질문이 나왔다. 이 시대 사람들은 노동을 공부하고 있을까? 문학 수업을 통해 노동을 공부할 방법은 없을까?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겪게 되는 일과 직업을 화두로 보충 수업을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현직 교사들이 ‘노동의 세계’를 보여주는 단편소설 8편을 선정했다. 김혜진, 김애란, 김세희, 서유미, 구병모, 김재영, 윤고은, 장강명 작가의 작품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 콜센터 직원, 인터넷 방송 BJ 등이 등장한다. 사회생활을 앞둔 이들에게만 와닿는 건 아니다. ‘땀 흘리는’ 현재를 사는 모두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북한 여행
뤼디거 프랑크 지음, 안인희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

“상대방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오해와 잘못된 기대를 피하기가 더욱 쉽다.”

동독 출신인 저자는 분단과 통일 이후를 경험했으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양 체제를 모두 겪어봤다. 1991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한 이후 30년에 걸쳐 북한에서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기존 북한 관련 책이 주로 평양에 머물렀다면, 〈북한 여행〉은 개성을 넘어 중국 국경지대의 백두산과 러시아 국경에 면한 나선 경제특구까지 톺아본다. 한편으로는 북한에 대한 훌륭한 가이드북 구실도 한다. 가져가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필수로 관광해야 하는 지역 등 실용 정보가 담겨 있다.
저자의 확신처럼 “어떤 한국인도 자기 나라를 더 잘 알기 위해 외국인이 쓴 책을 붙잡을 필요가 없어지는” 날이 올까. 그랬으면 좋겠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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