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음악 하는 여자는 징그럽다’는 노래가 공공연히 존재하는 세상에서 핫펠트(예은)는 ‘음악 하는 여자’를 택했다. 욕심 같아서는 ‘기꺼이’라는 부사도 넣고 싶다. 그냥 음악 하는 여자도 아닌 ‘음악 하는 여자 아이돌’이니 말이다. ‘음악 하는 예은’의 이름은 핫펠트(HA:TFELT). 원더걸스의 정규 2집 〈원더월드(Wonder World)〉(2011)에서부터 활약하기 시작했다. ‘진심 어린, 마음에서 우러나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Heartfelt’를 변형한 단어가 가진 뜻 그대로 예은은 핫펠트라는 이름 아래 자기 자신을 담아내고 표출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2014년 발표한 첫 솔로 앨범 〈미?(Me?)〉가 대표적이었다. 타이틀 곡 ‘에인트 노바디(Ain’t Nobody)’는 어두운 덥스텝 사운드를 바탕으로 감정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대중가요로서는 다소 낯선 접근방식을 가진 곡이었다. 현대무용을 접목한 퍼포먼스의 부담도 상당했다. 예은은 곡 내내 바닥을 뒹굴고 비를 맞았다. 야심도 있고 고생도 했지만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화장과 인형 같은 옷을 벗고 무대 위에서 날것의 ‘나’를 보여주는 여성 아이돌에게 세상이 건넨 시선은 예상대로 차가웠다. 앨범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걸그룹 멤버의 솔로 데뷔라는 화제성에 비해서는 아쉬운 상업적 결과를 낳았다.

호의적인 반응은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다름 아닌 평단이었다. 록, 덥스텝, 트립합, EDM 등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음악 요소가 마구잡이로 뒤섞인 이 새로운 세계에 적지 않은 전문가가 환영의 손짓을 보냈다. 이듬해 열린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팝 노래 부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핫펠트는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음악인’상을 최종 수상했다. “핫펠트로 활동하고 처음 받는 상이고, 데뷔하고 나서 혼자 상 받는 게 처음”이라는 말로 소감을 시작한 그는 “더 열심히 해서 내년에 또 오도록 하겠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꾸준히 자신만의 목소리를 들려주겠다는 희망 어린 선전포고였다.

이후 핫펠트의 행보는 그 선전포고에 부끄럽지 않은 것이었다. 개코, 베이빌론, 치타 등 다양한 음악가들과 교류를 이어가던 그는 2017년 원더걸스 해산과 함께 10년간 몸담았던 JYP엔터테인먼트를 떠나며 흑인음악 레이블 아메바컬쳐와 새롭게 계약했다. JYP 시절 박진영 대표를 제외하고 소속 가수 가운데 퍼블리싱 팀과 작곡가로 계약한 첫 인물이었던 그는, 아메바에서도 해당 레이블과 계약한 첫 번째 여성 음악가가 되었다.

비로소 완벽한 혼자가 된 후 핫펠트는 자신과 자신의 음악에 더욱 가까이 돋보기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레이블 이적 이후 처음 발표한 ‘새 신발(I Wander)’과 수록곡 ‘나란 책(Read Me)’은 10대 시절부터 몸담았던 첫 둥지를 떠난 허전함과 설렘을 예의 솔직함으로 그려낸 노래들이었다. ‘여섯 살 동생이 태어나던 때와/ 열두 살 분노를 처음 배운 때와/ 열다섯 남겨졌다는 두려움과/ 그리고 열여덟 가슴 벅찼던 꿈’(‘나란 책’)을 담담하게 노래하던 그는 이듬해 발표한 두 번째 싱글 ‘위로가 돼요(Pluhmm)’를 통해 ‘말랑 자두 좋아해요?’라는 은근한 유혹에서 ‘소고기 사주세요’라는 유머러스하고 적극적인 구애도 서슴지 않는 참 솔직하고 참 음악 잘하는 여자가 되었다. 이제 기다릴 건 하나다. 내 이야기를 하는 여자, 음악 잘하는 여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세상이다.

기자명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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