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박원순 옭아맨 도시재생의 덫

박원순 시장의 도시재생 정책이 일부 성과를 보고 있다. 그러나 도시재생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그의 ‘공’은 덤불 속에 가려지고 ‘과’만 부각된다. 왜 그럴까?

고재열 기자 scoop@sisain.co.kr 2019년 03월 27일 수요일 제601호
댓글 0
축구 경기에서 결정적인 득점 찬스에 골을 넣지 못하면 오히려 역습을 당해 실점하는 경우가 있다. 지금 박원순 서울시장이 그런 상황이다. 도시재생이라는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공격당하고 있다. 손혜원 의원이 야기한 목포발 도시재생 이슈의 유탄을 맞는 형국이다.

도시재생의 대척점에는 전면 재개발이 있다. 전면 재개발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 이명박 시장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추진했던 뉴타운 사업은 대표적인 전면 재개발이다. 뉴타운 사업은 여러 문제점을 노출했다. 박 시장은 이명박 시장이 야기한 뉴타운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으로 도시재생을 내세웠다.

그는 도시재생이라는 대서사의 주인공으로 손색없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 서울시장이 되기 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시절 그가 고민했던 주된 주제가 도시재생이다. 시장이 된 뒤에도 전면 재개발을 지양하고 도시재생을 도시 계획의 중심에 내세웠다. 3선에 성공한 뒤에도 진희선 도시재생본부장을 행정2부시장으로 승진시키며 도시재생에 변함없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연합뉴스
1월28일 세운상가 재생사업 ‘다시·세운 프로젝트’의 1단계 공공선도사업 착수식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앞줄 오른쪽 두 번째).
너무 쉽게 ‘전면 재검토’ 발표해 탈


박 시장은 1기 때 이명박 시장의 ‘공’이 아니라 ‘과’로 판명 난 뉴타운 사업의 뒷마무리에 치중했다. 창신·숭의 지역의 경우 뉴타운 사업을 철회하고 ‘서울형 도시재생 1호’ 지역으로 선정했다. 박원순식 도시재생 모형이 의미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개발 시대의 마지막 주자가 이명박이라면 재생 시대를 새롭게 연 이는 박원순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박 시장이 공격당하는 주된 내용이 바로 도시재생이다. 최근 사례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구역 일부가 재개발을 위해 철거되면서 양미옥, 을지면옥 같은 노포(대대로 물려 내려온 점포)가 사라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여론이 들끓었다. 박 시장은 여론의 반발이 거세지가 이곳의 재개발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합의안을 갑자기 뒤집어 혼란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 논란에서 주목할 대목이 있다. 일단 이 논란은 도시재생이 아니라 재개발 사업에 대한 것이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계획은 전임 오세훈 시장 시절인 2009년 결정되었다. 2014년 박 시장은 이 재정비촉진 계획을 변경해서 확정했다. 이 구역 도시재생의 핵심인 세운상가 건물군을 유지하고 도시재생 방식을 도입한다는 것이었다. 대신 세운상가 건물군 양쪽 8개 구역은 원안대로 재개발 방식을 따르게 했다.

ⓒ시사IN 이명익
1월17일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회원들이 청계천·을지로 일대 재개발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행진하고 있다.
최근 박 시장의 재개발 사업 전면 재검토 지시는 반대 측의 반발을 불러왔다. 재개발 사업 계획은 서울시가 세우지만 사업시행 인가나 관리처분은 자치구가 관할한다. 서울시가 전면 재검토 발표를 하자 ‘지주공동사업추진위원회’ 등 재개발에 찬성하는 토지 소유주들은 서울시가 법적 근거 없이 사업 추진을 방해한다며 크게 반발했다.

원래 박 시장이 주목하고 공을 들인 곳은 논란이 된 재개발 구역이 아니라 세운상가 건물군의 도시재생 구역이다. 이곳에 도시재생을 위한 중간 지원기관을 두고 세운상가 건물군에 있는 소상공인들을 심층 면접했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 역사성을 살린 ‘다시 세운’ 프로젝트는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의 노포 철거 논란으로 박 시장은 세 가지 손해를 보았다. 첫째, 무분별한 재건축을 도모하는 시장으로 낙인찍혔다. 둘째, 세운상가 건물군의 도시재생 성과가 묻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기존 정책을 너무 쉽게 뒤집는다는 이미지를 남겼다. 지난해 여의도와 용산 재개발 계획을 발표했을 때도 국토교통부와 갈등을 빚고 재검토를 발표한 바 있다. 광화문광장 설계안을 발표할 때도 비슷한 양상으로 논란이 일었다. 차도로 둘러싸여 광장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광화문광장을 새롭게 바꾸기 위해 설계안을 공모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선정된 공모안은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 위치를 옮기는 것이어서 문제가 되었다. 행정안전부(행안부) 안마당을 공원화한다는 설계안 내용이 알려지면서 행안부와도 갈등을 빚었는데 이는 차기 대권주자들끼리의 힘겨루기로 비쳤다(<시사IN> 제596호 ‘광화문광장을 어찌 하오리까’ 기사 참조). 박 시장이 도모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들이 가치나 의미로 전달되는 게 아니라 논란 위주로 전파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시사IN 고재열
을지로 상업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박원순 개인전’에 출품된 일상의 실천팀의 작품.
비슷한 논란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이제 이슈가 생기면 ‘박원순 시장이 또?’라는 식의 언론 보도도 나온다. 기자들이 박 시장의 ‘사고 사례’에 주목하면서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있다. 3월8일 최황, 오세린, 차지량 등의 젊은 작가로 구성된 프로젝트팀 ‘서울-사람’이 을지로 상업화랑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임기 중 벌어진 도시재생 사업과 재개발 사업의 문제들을 토대로 한국 사회와 서울의 현주소를 조명하는 기획전을 열었다. 개막 하루 전 언론에 소개하는 오픈 행사를 했는데 오세린 작가는 “기자들이 예닐곱 명 왔는데 전부 사회부와 정치부 기자여서 놀랐다. 문화부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기자들도 우리 전시를 보고 놀랐다. 우리 전시회가 대놓고 비판적인 전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금 실망하는 눈치였다”라고 말했다.

서울혁신파크 지켜낸 박원순의 뚝심


스스로를 ‘박원순 작가의 어시스턴트’로 규정한 작가들은 60대 중반의 ‘박원순 작가’가 인사동에서 전시를 하는 것으로 상황을 설정하고 각자 어시스턴트 시각에서 서울시의 도시재생과 재개발에 대한 생각을 표현했다. 이 전시회를 처음 제안한 최황 작가는 “박원순 시장의 대책에는 본질이 사라졌다. 양미옥이나 을지면옥이 문제가 아니라 영세 상공업자들이 무너진다. 이 지역의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데 처방전은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라고 지적했다.

분노나 조롱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기에 작가들은 박 시장의 얼굴을 직접 사용하지 않았다. 질문을 던졌다. 박 시장에게 소통하자는 제스처를 보낸 셈이다. 작가들은 전시회 마지막 날인 3월23일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두고 박 시장을 초대했다.

도시재생이 전면 재개발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해외에서는 도시재생을 도시 계획의 중심에 두고 있다. 건축가들도 이제 도시에 랜드마크 건물을 설계하기보다 건물의 역사성을 어떻게 살려 재생시키느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도시재생에 방점을 찍고 ‘도시재생 뉴딜정책’을 발표했다. 5년 동안 50조원을 투입해 전국 500여 곳의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를 개선하겠다는 정책이다(<시사IN> 제539호 ‘한국판 말뫼는 어디가 될까?’ 기사 참조).

그런데 손혜원 의원의 목포 원도심 건물 매입 논란으로 도시재생에 의혹이 제기되었다. 도시재생은 그동안 전면 재개발에 대한 대안으로, 현장의 활동가들은 도시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찾는 운동가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손 의원 논란 이후 도시재생을 보는 시선이 냉정해졌다. 도시재생은 전면 재개발과 차별화되지 못하고 변주된 형태로 받아들여지며 다양한 비판을 듣고 있다. 도시재생 활동가들에 대한 시선도 이제 운동가로 봐주는 게 아니라 개발 정보를 가진 사람들로 의심 어린 눈초리로 보게 되었다.

서울의 도시재생은 지방보다 더 어렵다. 서울과 지방 도시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지방의 도시재생은 대부분 원도심 활성화와 재래시장 활성화 두 축으로 구성된다. 지방의 도시재생은 단순히 활성화만 해도 성과로 인정받지만 서울에서는 그것에 더해 결과물의 세련미까지 요구된다. 골목을 살린다며 안이하게 벽화 사업을 하면 비판받기 일쑤다. 게다가 박원순 시장은 시민사회와의 협치, 거버넌스를 중요시하기에 서울시 도시재생에는 관련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느라 시간도 오래 걸린다. ‘옥인동 역사문화마을’의 경우 사업을 결정하기까지 주민들과 협의하는 데만 7년이 소요되었다. 전면 재개발을 원하는 주민과 역사문화마을로 재생하자는 갈등이 컸는데 이를 조율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이해 당사자와 40여 회의 심층 면담과 15차례 갈등조정 간담회를 통해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이렇게 도시재생은 전면 재개발에 비해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오래 걸린다. 도시재생의 핵심은 새로운 사회 생태계의 구축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 부작용은 빠르고 선명하게 나타난다. 눈높이는 한껏 높여놓았는데 결과가 나오기 전에 부작용이 먼저 부각되어 문제 있는 사업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다. 도시재생의 성과가 나올 무렵 젠트리피케이션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주민이 한꺼번에 쫓겨나면 재개발, 한 명씩 쫓겨나면 도시재생이냐’는 불만이 나온다. 한 서울시 간부는 “요즘은 ‘관트리피케이션’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냥 두었어도 도시재생이 자연스럽게 될 곳이었는데 서울시가 나서 지원하면서 오히려 젠트리피케이션만 부추겼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제대로 된 도시재생 성과가 나타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 전에는 플랫폼을 구축해주고 생태계가 활성화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어야 한다. 박원순 시장은 무던하게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서울 은평구 녹번동의 서울혁신파크다. 국립보건원 질병관리본부가 이전하고 남은 부지에 서울시는 청년허브와 청년청,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등 혁신 그룹을 배치했다.

외부에서 보면 단체의 성격도 모호하고 활동도 그렇고 성과도 불분명하다. 스타성이 있는 몇몇 단체를 부각해 혁신파크를 알릴 수도 있겠지만 묵묵히 기다린다. 이렇게 박 시장이 신념을 가지고 몇 년 동안 버텨준 덕에 서울혁신파크가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어렵게 구축된 생태계는 시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시민사회 활동가들에게만 공유된다. 시민들은 오히려 대형 재개발 계획에 솔깃해한다. 이명박·오세훈 시장 시절에는 이 부지에 초고층 빌딩을 지어 강북의 코엑스로 만들고 마이스 산업(MICE, 회의·전시·컨벤션 등 행사 관련 산업)의 성지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여전히 선거 때마다 다른 후보들은 이곳을 이런 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혁신파크는 시장이 바뀌면 언제든지 허물어질 수 있는 허약한 생태계인 셈이다.

‘재개발의 아이콘’으로 비판받는 아이러니

세운상가도 마찬가지다. 서울시의 적극적인 도시재생 사업은 예술가와 디자이너 그리고 청년 기술자들이 이곳에 입주하도록 이끌었다. ‘을지로 하와이’ 같은 예술가 작업실이 등장했고 ‘청계 체육대회’ 같은 자발적 전시회도 열렸다. 세운상가 건물군을 중심으로 을지로 일대에는 예술가들이 차린 카페나 바가 많아 ‘인스타그램 성지’로 불리기도 한다. 이렇게 예술가들의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는 곳에서 박 시장이 ‘재개발의 아이콘’이 되어 비판받는 현실은 아이러니다.

도시재생에 대한 박원순 시장의 비전은 선명해 보인다. 3기 시정에서도 ‘지속 가능한 미래도시’와 ‘기억과 역사를 담은 도시’라는 구호를 내걸고 도시재생을 시정의 중심에 두었다. 문제는 이 비전이 서울혁신파크 사례처럼 서울시민과 공유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리더의 비전이 공유되지 못했기 때문에 리더의 행위도 맥락을 형성하지 못한다. 구도심 활성화와 골목시장 활성화를 거쳐 도시재생은 주거재생에서 마무리된다. 이 일환으로 지난해 여름 박 시장은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에서 한 달 살기를 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사실 박 시장의 현장 행정은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맥락이 있다. 시민단체에 있을 때도 그는 이런 현장 답사를 중시했다. 박 시장의 현장 답사를 따라가본 기자들은 대부분 손사래를 친다. 일정이 너무나 빽빽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전시성 행정으로 비칠 수 있다. 부정적인 여론 때문인지 겨울에 금천구의 옥탑방에서 한 달 살기를 하겠다던 계획은 연기했다.

도시재생 전문가들은 도시재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사업과 함께 주민 참여형 소규모 사업도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시재생에는 이런 섬세함이 요구되는데, 박 시장은 마을 만들기 사업을 통해 이런 소통을 꾸준히 해왔다. 도시재생을 위한 하드웨어 사업과 함께 소프트웨어 사업도 진행한 셈이다. 도시재생의 중간 지원기관인 도시재생센터를 곳곳에 만들어 서울형 도시재생의 매뉴얼도 정립하고 문화적 도시재생 등 새로운 도시재생 방식도 개선하고 있다.

서울역 고가를 보행로로 바꾼 서울로7017이나 석유 비축기지 탱크를 문화 시설로 바꾼 마포의 문화비축기지 등에서 박 시장의 도시재생 정책의 일부 성과를 볼 수 있다. 이 시설을 바꾸는 과정과 이후 운영하는 방식에서 도시재생의 전범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도시재생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공’은 깊은 덤불 속에 가려져 있고 ‘과’만 부각된다. ‘박원순식 도시재생’은 오직 오류를 통해 시민들에게 알려질 뿐이다. 정치는 사실의 게임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인식의 게임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 인식의 게임에서 박 시장은 연전연패하고 있다. 시민들과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해서 도시재생의 비전을 나누고 지지를 이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