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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사전에 사과와 진실은 없다

3월11일 전두환씨가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법정에 섰다. 그와 변호인은 공소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긴장과 분노가 뒤엉켰던 ‘전두환의 광주 법정 출두’ 밀착 취재기.

광주·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2019년 03월 25일 월요일 제6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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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1일 오후 12시34분, 검은색 에쿠스 리무진 차량이 광주지방법원 법정동 후문에 도착했다. 차문을 열고 나온 전두환씨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발포 명령 부인하십니까?” “혐의를 인정합니까?” 질문하던 기자에게 전씨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이거) 왜 이래!”라고 외쳤다. 32년 만에 찾은 광주에서 그가 언론과 광주시민에게 공개적으로 남긴 말은 사과가 아닌 이 한마디가 전부였다.

전두환씨는 이날 고 조비오(본명 조철현) 신부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법정에 섰다. 2017년 4월3일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조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했다. 조비오 신부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와 5월 단체는 2017년 4월27일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전씨를 형사 고발했고, 검찰은 지난해 5월3일 전씨를 기소했다(<시사IN> 제575호 ‘꼼수 쓰는 전두환씨가 법정에 서야 하는 까닭’ 기사 참조).

첫 공판이 열리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초 지난해 5월 열렸어야 할 재판은 네 차례 미뤄졌다. 그중 두 번은 전씨가 일방적으로 불참해 재판이 진행되지 못했다. 부인 이순자씨는 지난해 8월26일 전씨가 알츠하이머 투병 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겨레>가 ‘이 무렵 전씨가 지인들과 골프를 쳤다’는 증언을 보도하면서 ‘알츠하이머 투병 주장’은 신뢰를 잃었다. 결국 법원은 전씨가 재판에 재차 불참한 지난 1월7일, 전씨에게 구인영장을 발부했다.
ⓒ사진공동취재단
3월11일 광주지방법원에 출두한 전두환씨(가운데)가 기자들의 질문에 “왜 이래”라고 소리치고 있다.

전씨가 도착하기 전 광주지방법원 일대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법원 인근 도로마다 경찰이 1~2m 간격을 두고 도열했다. 인도와 차도 사이를 막기 위해서였다. 방송사 중계 차량도 아침부터 현장 생중계를 준비했다. 전씨를 맞는 광주시민들 사이에도 긴장이 흘렀다. 전씨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한편, 일부 시민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며 전씨의 동선을 확인했다.

도착은 예상보다 빨랐다. 오전 8시32분 서울 연희동 집을 출발한 전씨는 경유지 없이 곧바로 광주지법으로 향했다. 전씨는 충남 공주 탄천휴게소에 잠시 들렀지만 뒤따르던 취재진과 마주치자 곧바로 다시 차에 올랐다.

전씨가 법원 건물로 들어간 이후 시민들은 한데 모여 구호를 외치며 재판 결과를 기다렸다. 그사이 광주지법 법정동 건물 인근 광주동산초등학교 학생들은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마다 창가에 모여 “전두환 물러가라” 하고 소리쳤다. 법원 인근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이놈들아, 어른들은 어서 오라고 하는데 너희가 물러가라고 하면 되겠냐”라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잠시 여유를 찾았던 시민들은 재판이 시작되는 오후 2시30분 무렵부터 다시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마침 전씨가 타고 온 에쿠스 리무진 차량도 전씨가 법원에 입장했던 법정동 후문 앞에서 시동을 걸고 대기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전씨가 이곳에서 다시 승용차에 올라탈 것이라 예상하고 전씨를 기다렸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를 맞으며 기다리던 시민들은 “이따 나오더라도 너무 흥분하진 말자” “오히려 여론에 안 좋으니 돌발행동은 하지 말자”라는 말을 나누기도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광주지방법원을 빠져나오는 전두환씨의 차량과 경호차를 광주시민들이 막아서고 있다.

재판이 시작된 지 1시간13분이 지난 오후 3시43분. 법정동 후문 출입구에 방청객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추첨을 통해 재판을 방청한 시민들은 “안에서 (전두환씨가) 존다, 졸아”라며 법정 분위기를 전했다. 재판을 지켜본 추혜성 오월어머니집 이사는 “법정에서 전두환씨는 가만히 있고, 변호사가 검찰의 주요 기소 내용에 대해 일절 부정했다”라며 재판 분위기를 시민들에게 전했다. 다른 방청객들도 “전두환이 헬기 사격을 부인했다”라고 전하자 모여든 시민들 사이에서 탄식이 나왔다.

“사과 없이 이대로 보낼 수 없다”


공판에서 전두환씨 측은 일관되게 검찰의 공소 사실을 부인했다. 전씨 변호를 맡은 정주교 변호사는 “(전두환씨는) 본인 기억과 국가기관 기록, 검찰 수사 기록을 토대로 확인된 내용을 회고록에 기술했다”라며 고의성을 가지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명예훼손이 적용되려면 고의성 유무가 중요한데, 검찰이 전두환씨가 이미 헬기 사격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과 고인의 명예를 실추시키려는 의도가 명확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논리다.

명예훼손 적용 여부와 별개로, 전씨 측은 이날 재판에서 여전히 헬기 사격 사실을 부인하기도 했다. 특히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해 “목격자 진술에는 여러 가지 불확실한 사유가 존재한다. 적대적 감정으로 과장하거나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다”라며 조 신부의 증언을 폄훼하는 주장을 펼쳤다. 조 신부가 증언한 헬기 사격은 지난해 2월7일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해당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지난해 9월 전두환씨 회고록 관련 민사소송 1심에서도 법원은 전씨가 회고록에 허위 사실을 썼다며 전씨가 유족 등에게 배상하고 회고록의 출판과 배포를 금지하라고 판결했다. 이 손해배상·출판금지 민사소송은 전씨 측의 항소로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날 재판이 끝난 뒤 시동을 걸고 대기하던 에쿠스 차량이 갑자기 법원 본관 정문 방향으로 이동했다. 차분했던 분위기가 격앙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전씨 차량을 따라 광주지법 본관 정문으로 향했다. 전두환씨는 재판이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법원에 머물러 있었다. 전씨가 건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재판이 끝난 지 30분이 지난 오후 4시21분. 이미 법정 분위기를 전해 들은 시민들은 전씨를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일부 시민은 “사과 없이 이대로 보낼 수 없다”며 전씨 차량 앞으로 다가가려 했다. 차량이 이동할 동선을 확보하려는 경찰과 차량을 막으려는 시민들 사이에서 잠시 몸싸움이 일었다. 결국 차에 탄 지 18분이 지난 4시39분에야 전씨는 법원 일대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전씨가 탄 차량과 경호 차량, 이를 뒤따르는 취재 차량이 줄지어 법원 앞 지산사거리에서 서울 방향으로 차머리를 돌렸다. 지산사거리는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공간인 구 전남도청과 전일빌딩에서 고작 1㎞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전씨는 이날 저녁 8시16분경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들른 뒤, 밤 9시 무렵 서울 연희동 자택에 도착했다.

전씨의 광주 방문이 이번 한 차례로 끝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전씨 측은 광주까지 오가기 어렵다며 법원 관할 이전을 신청했지만, 지난해 11월29일 대법원은 이전 신청을 최종 기각했다. 이번 형사재판의 다음 일정은 4월8일이다. 이날은 공판준비기일이라 전씨가 반드시 참석할 필요는 없지만 선고 때는 출석해야 한다. 한편 전두환씨는 추징금 2205억원 가운데 재산이 없다며 아직도 1055억원을 내지 않고 있다. 추징금 환수를 위해 검찰이 연희동 집에 대한 공매절차(강제집행을 통한 재산처분)에 들어가자, 이순자씨 등이 이의신청을 내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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