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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 무시한 국제사회의 권고

우지연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3월 22일 금요일 제6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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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촛불 정부’가 들어서면 노동 변호사들은 일거리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있었다. 물론 지난 10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동·시국 사건 구속자, 집회 연행자, 노동조합 활동 형사사건,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이나 가압류가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로워졌는가. 지금도 형법상 업무방해죄, 각종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상 제한, 노조 설립 신고 제도가 존재하고, 노동사건에 손해배상이나 가압류를 적용한다. 또한 경영권을 이유로 단체교섭·쟁의 대상을 제한하는 대법원 판례를 비롯해 공무원과 교원, 해고자, 실업자, 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제한하는 협소한 정의, 소수 노조의 교섭권과 쟁의권을 박탈하는 교섭창구 단일화, 필수공익사업장의 과도한 파업권 제한 등을 담은 각종 법 조항과 제도가 살아 있고, 언제든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적용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정말 자유로워졌을까.

사회는 더 나아진 걸까. 최저임금 인상은 그에 이은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로 무력화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주 52시간제 도입(정확하게는 한국은 오래전부터 주 52시간제였고, 1주는 5일이라는 고용노동부의 해석으로 달리 운영되어오던 것을 정상화한 것에 불과하지만)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확대하는 노사정 합의(아직 법 개정이 아니다)로 무력화될 위기에 처해 있다. 불안정 노동을 줄이겠다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은 실제로는 자회사 전환이나 무기계약직 전환에 그쳤다. 공공기관이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를 선호하는 이유로 ‘정권이 바뀌면 정부 정책 방향이 언제 바뀔지 모르니, 매각 등 구조조정이 상대적으로 쉬운 자회사 형태가 안전하다’는 점을 꼽았다. 정부의 노동정책이 표방한 가치들은 공직사회나 공공기관, 우리 사회에 스며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윤현지

‘기준’을 바꾼다는 것은 관점을, 가치판단을 바꾼다는 의미다.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하는 것이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중요한지 가치판단을 세워가는 것이다. 그에 따라 개인들의 삶을, 사회의 질서를 재조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권력의 자의에 따라 휘둘리게 우리 삶을 내버려두지 않고, 그로부터 확실하게 보호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목적에 관한 필라델피아 선언(1944)은 이 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자유와 존엄, 경제적 안전 및 평등한 기회 속에서 자신의 물질적 복지와 정신적 발전 둘 다를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 그뿐 아니라 ‘모든 국내 및 국제적 정책과 조치들, 특히 경제·금융 영역에서의 그것들은 이런 관점에서 판단돼야만 하며, 이 근본 목적을 달성하는 데 방해가 아니라 도움이 되는지의 여부에 따라서만 채택되어야 한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기준’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한국 정부는 1991년 ILO에 가입했지만 노동보호 핵심협약인 ‘결사의 자유’(제87호, 제98호)와 ‘강제노동 철폐’(제29호, 제105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때도 ILO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기구 가입에만 관심이 있었고, 기준을 바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속은 20여 년간 유예되었고, 국제 노동 기준을 준수하라는 국제사회의 오랜 권고는 무시되어왔다. 그리고 2019년, 다시 노동의 ‘기준’이 문제다. 언제든 마음먹기에 따라 허락될 수도 박탈될 수도 있는 자유가 아니라, 당국의 방침이나 윗선의 코드에 따라 추진될 수도 폐기될 수도 있는 정의가 아니라, 어떤 조건을 내걸거나 반대급부를 내놓아야만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온전한 자유와 정의로서 노동기본권을 회복하는 일이 한국 사회에 너무나도 절실하다. 노동법률가들이 거리에서 사상 초유의 단식 농성을 한 것은 아직도 노동의 기준이 제대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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