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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노조법은 ILO와 싸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ILO 핵심협약 비준’이 국회라는 산 앞에서 멈추고 있다. 국내법을 개정하고,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한다. 경총은 ILO 기준에 반하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2019년 03월 20일 수요일 제6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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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ILO 핵심협약 비준’이 진통을 겪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유엔 산하 전문기구다. 현재 187개국이 가입한 상태다.

‘ILO 핵심협약’은 회원국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 의무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결사의 자유(단체를 조직할 자유)’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차별 금지’ 등 4개 부문에서 각 2개씩, 모두 8개 협약으로 구성된다. ILO는 회원국들에게 핵심협약의 비준을 사실상 의무화하고 있다. 비준이란 국가 간에 체결된 조약을 조약 체결권자가 최종 확인하는 절차다. 한국은 대통령이 조약 체결권을 갖는다. 그 조약을 지키기 위해 국내법을 바꿔야 하는 경우에는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한국은 1991년 152번째로 ILO에 가입했지만 핵심협약 가운데 ‘아동노동 금지’ ‘차별 금지’ 부문의 4개 협약만 비준한 상태다. ‘결사의 자유’ 관련 2개 협약, ‘강제노동 금지’ 관련 2개 협약은 비준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당시는 물론 2010년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때도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럼에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ILO 187개 회원국 중 8개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한 나라가 143개국에 이르는데도 그러하다. 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서도 30개국이 핵심협약 전체를 비준했다.
ⓒ시사IN 신선영
3월5일 청와대 앞에서 노동법률단체 주최로 탄력근로제 합의 철회, ILO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 정부가 번번이 약속을 어긴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법을 개정해야 하는 조약에 대해서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결사의 자유’ 및 ‘강제노동 금지’ 관련 4개 협약은 현행 국내법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협약 비준과 국내법 개정 모두 국회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법률 개정을 먼저 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4개 협약의 비준을 미뤄왔다. 국제사회는 지속적으로 한국에 경고를 보냈다. 한국의 노동조합들은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을 준수하라고 권고를 내리는 ILO 산하 기구)에 한국을 15차례나 제소했다. 이를 심의한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한국에 수차례에 걸쳐 강력한 개선 권고를 내렸다. ILO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한 EU는 지난해 12월 한국을 대상으로 공식적 분쟁해결 절차를 개시했다. 한-EU FTA 체결 당시 한국 측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기 위해 노력한다’라고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노동권을 넘어 통상 이슈로 발전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 부문의 4개 협약 비준을 추진해왔다. 올해 6월 ILO 설립 100주년 행사에 기조연설을 하도록 초청받았다. 하지만 여소야대인 현재의 정치지형에서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핵심협약 비준과 법 개정 모두에 부정적이다. 국회의 관련 위원회로는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와 환노위 산하 고용노동소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등이 있는데 모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9월 가이 라이더 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을 만나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대통령이 일단 협약을 비준하고 이후 국내외적으로 야당을 압박해서 법 개정을 추진하거나, 비준과 법 개정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선(先)비준 후(後)입법’이다. 문재인 정부도 집권 초기에는 이런 방식을 고려했으나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았다. 핵심협약을 비준하면 1년 뒤에는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조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기까지 법이 개정된다는 보장이 없다. 만약 개정되지 않을 경우 국내법과 핵심협약 중 어느 쪽을 우선 적용해야 하는지 극심한 사회적·법적 혼란이 불가피하다. 결국 정부는 국내법을 먼저 정비한 뒤 협약을 비준하는 쪽으로 결론지었다(‘선입법 후비준’).

대다수의 ILO 회원국이 이미 받아들인 ‘결사의 자유’ 및 ‘강제노동 금지’ 부문 4개 협약이 유독 한국에서 비준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헌법도 원칙적으로 보장하는 권리다.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 논란


문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일부 조항이다. 노조법 제2조에 따르면, “(노조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 실업자·해고자는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가입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조항은 실업자·해고자뿐 아니라 특수고용 노동자(‘배달앱 라이더’처럼 개인사업자와 임금노동자의 특성을 모두 가진 직종)까지 노동조합에서 배제한다. 노조법에서 규정된 ‘근로자’에 해당되지 않으면 노조를 만들지도 가입하지도 못하게 해놓았기 때문이다.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설립신고를 수차례 반려당한 대리기사 노조가 대표 사례다.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택배기사 등이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결사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 조항이 ILO 핵심협약 제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를 위반한다고,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한국에 수차례 개선을 권고했다. 협약에 따르면, 노동자든 사용자든 어떤 차별도 없이 사전 인가를 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해 단체를 설립하고 가입할 권리를 가지기 때문이다. ‘누가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지(노조 가입 자격)’는 오로지 노조가 결정할 사안이며, 공공기관이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 국제 노동기준이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은 ILO 핵심협약 비준에 부정적이다. 위는 자유한국당 주최 경제 좌담회 모습.

공무원과 교사의 결사의 자유에 관한 국내법 역시 ILO 핵심협약과 충돌한다. 국내 관련 법률에 따르면, 면직·파면·해고된 공무원과 교사는 노조 가입이 금지된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이에 대해서도 수차례 개선을 권고했다. 공무원노조법은 5급 이상 공무원 또는 인사 담당 공무원, 소방관·교도관·근로감독관의 노조 가입을 제한하는데 이 역시 지나치게 일률적이고 광범위하다. ILO 핵심협약은 군인·경찰을 제외한 모든 공무원의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이 밖에도 노조법의 여러 조항이 핵심협약과 상충된다. ‘노동조합 임원은 조합원 중에서 선출’ ‘기업의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을 원칙적으로 금지’ 등이 그러하다. ILO는 이런 사항을 노사 자율에 맡기라고 권고한다. “노조 설립 뒤 결격사유가 있으면 시정을 요구하고, 따르지 않을 경우 ‘노조 아님’을 통보”할 수 있는 노조법 시행령 역시 핵심협약 위반이다. 핵심협약에 따르면 “노동자 단체와 사용자 단체는 행정당국에 의해 해산되거나 활동이 정지되어선 안 된다.”

위 내용은 노동자·기업·정부 대표가 모인 사회적 대화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공익위원들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려면 반드시 개정해야 할 국내 노동법규로 꼽은 사안들이다. 대다수가 국회에서 법률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협약 비준 문제가 더욱 꼬이게 된다.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거치면 비교적 법 통과가 용이하리라고 기대한다.

‘강제노동 금지’ 관련 협약들에 대해서는 아직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는데, 국내법이 규정하는 대체복무나 징역형 일부가 ‘강제노동’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핵심협약은 순수하게 군사적 성격의 복무가 아니면 강제노동으로 보며,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는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또한 정치·사상을 표현했거나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강제노동을 수반한 징역형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핵심협약 비준에 따른 변화들

ILO 핵심협약이 비준되고 관련 법률까지 개정되면, 실업자와 해고자 나아가서는 개인사업자 성격을 띤 특수고용 노동자도 자유롭게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할 수 있게 된다. 면직·파면·해고된 교원과 공무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노조 설립신고 제도도 더는 허가제처럼 운영되지 못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해고자 9명을 조합원으로 두었다는 이유로 2013년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조 아님’ 통보를 받아 현재 법외노조 상태다. 만약 ‘노조 아님’ 통보를 규정한 시행령을 정부가 삭제하고 교원노조법과 노조법이 개정될 경우 전교조는 합법 노조가 될 수 있다.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공무원 범위도 지금보다 넓어진다. 다만 소방관 등 공무원이 노조를 만들고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는 있어도 파업권은 여전히 제한될 전망이다.

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해 ‘조건부 반대’를 내걸고 있다. 단결권(누구나 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결사의 자유’)에 대한 보장을 강화하는 대신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파업)에 대해서는 경영계의 요구를 들어달라는 것이다. 단결권만 우선 보장한 뒤 경영계 요구를 나중에 논의하는 것은 “현찰 주고서 어음 받는 상황”이라는 주장이다.

경총이 내놓은 요구사항은 이렇다. 파업 시 대체근로를 전면 허용하라(지금은 원칙적으로 불법이고 제한적인 경우에만 허용된다). 부당노동행위, 곧 노동 3권을 방해하는 기업 측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을 폐지하라. 파업할 때 노조가 직장을 점거하는 행위를 금지하라(지금은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단체협약 최장 유효기간을 현행의 2년보다 확대하라. 파업 등 쟁의행위에 들어갈 때 노동조합이 거쳐야 하는 찬반투표의 유효기간에 제한을 두라. 노동자들의 단결권이 이전보다 보장되는 만큼 기업에도 대항할 무기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파업 시 대체근로 전면 허용은 국제 노동기준에 반한다. 엄격한 의미의 필수 서비스라고 간주할 수 없는 부문에서 대체인력을 고용하는 것은 파업을 무력화해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 ILO 측의 일관된 견해다. 특히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폐지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파괴 등 부당노동행위가 만연한데도 규율이 어려운 한국 현실과는 동떨어진 주장이다. 노동계는 ‘핵심협약 비준은 정부의 의무이지 거래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공익위원은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 쪽은 오히려 ILO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못 채우는 것들이 많다. 그걸 채우는 게 급선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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