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진로 교육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와 같은 철학적 차원이 아니라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가?’를 다룬다. 예를 들면 학생 수요 희망을 받아 방과후학교 강좌를 열거나, 직업인(부모, 선배)을 초청해 이야기를 들어보는 식이다. 직업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진로와 직업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으나 아이들이 선호하는 진로의 범위가 너무 협소하다는 것이 문제다. 백종원씨가 유명해지면 요리반으로, 페이커 선수가 활약하면 게임 코딩반으로, 도티와 잠뜰이 텔레비전에 뜨면 유튜브 콘텐츠 제작반이 붐빈다.
진로 교육의 범위가 좁은 건 역설적이게도 아이들의 적성과 흥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건 아이들이 희망하는 직업 순위와는 별개다. 교사, 운동선수, 의사, 경찰 같은 직업은 전통적으로 인기가 높고, 사회구조가 급변하지 않는 한 크게 바뀌지 않는다. 대신 변하는 건 진로 교육 항목이다. 진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학생과 학부모 수요조사를 실시한다. 이때 제과 제빵, 댄스, 축구, 통기타, 소프트웨어 코딩처럼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거나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의견이 다수 나온다.
모든 사람이 취미나 여가 생활 분야에서 생계를 꾸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경우는 ‘덕업일치(덕질과 직업 일치)’라 하여 드문 사례로 치부된다. 그런데 정작 학생의 장래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학교에서는 진로 교육을 꿈과 끼로 한정시켜 좁은 세계만을 경험하게 한다.
초등학생은 언론에서 주목하는 스타가 등장하면 막연히 동경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면에 숨어 있는 각종 어려움과 노력, 여러 조건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는다. 직업 세계를 노동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피상적인 소개나 즐길 거리, 체험 거리로 다루니 진로 교육은 반쪽짜리가 되고 만다.
직업 세계를 즐길 거리로 다루는, 반쪽자리 진로 교육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 중 하나로 노동을 꼽았다. 노동은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아무리 창조적인 일을 한다고 해도 일정량의 노동을 피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대개 일자리는 구직자의 흥미가 아니라 사회적 수요에 의해 창출된다. 하고 싶은 일만 해서는 입에 풀칠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의미다.
제자 중 상당수는 생산직 노동자나 기술자, 자영업자로 살아가야 한다. 내가 앞길 창창한 제자들을 저주하는 못된 교사라서가 아니라 한국에는 아이들이 희망하는 만큼의 프로게이머나 파티셰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 커서 지금 싫어하는 일을 하게 될 확률이 높으며, 그것은 특별한 개인적 불행이 아니라 사회적 수요에 따른 필연적 결과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결코 학생들을 수동적이고 순종적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진정 학생들의 미래를 풍요롭게 해주고 싶다면, 노동은 고되지만 참고 견뎌낼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더불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을 때 대응하는 방법까지 상세히 다루어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나의 바람은 이럴진대, 진로 수업 시간에 노동자의 자녀들을 앞에 두고도 ‘노동’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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